[양해원의 말글 탐험]
3個國, 4個社?… 이러다 사람도 한 개 두 개 센다
껌으로 크기 시작한 어느 대기업집단이 바로 그 신세가 됐다. 국내에 거느린 회사만 열 손가락을 아홉 번 넘게 꼽아야 한다는데, 그 위세와는 딴판으로 남우세스러운 속살을 거듭 드러냈다. 기어이 창업주 맏딸인 그룹 장학재단 이사장이 구속됐다. 그는 '4개 계열사 사내이사와 ~ 3개사 기타 비상무이사를 맡고 있다.'
여기서 뭔가 걸리는 말, 4개 계열사, 3개사, 어색하다. 왜 그럴까. 국립국어원 사전은 예시문의 '개(個)'에 해당하는 풀이를 '낱으로 된 물건을 세는 단위'라고 했다. 물건은 '일정한 형태를 갖춘 모든 물질적 대상'이다. 하지만 기업이 물건은 아니다. 말이나 글을 늘 축자(逐字)적으로만 따질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계열사를 학생으로 바꿔 쓴다면 '네 학생'을 '네 명 학생'이라고 한 꼴이다. 입으로는 하지 않는 표현이다. 글이라고 다를 바 없다.
기업을 세는 단위명사가 마땅히 없지 않으냐고? '곳'으로 바꾸거나 '개'를 빼 보자. 계열사 네 곳, 3사, 훨씬 자연스럽다. 곳 대신 '계열사 네 군데'라고 써도 느낌이 비슷하다. 물론 그냥 관형사(冠形詞)만 써서 네 계열사, 세 회사 해도 상관없다.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개'를 붙인 보기는 기업만이 아니다.
'미 프로야구 오승환(34·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3일 메이저리그 데뷔 첫 세이브를 따내자 (중략) 그는 동시에 한·미·일 3개국 리그에서 모두 세이브를 올린 첫 한국인이 됐다.'
뿌듯한 일이다. 그런데 나라를 한 개, 두 개 세는 바람에 표현은 역시 거북스럽다. 그냥 '한, 두, 세'로 세면 그만이다. 아라비아숫자를 써서 3국(國), 4국 해도 괜찮다. '과일 3종 세트'라 하지 '과일 3개종 세트'라고는 하지 않으면서, 나라에 '개'를 붙일 이유가 없다. 법안 40개, 콘텐츠 8개, 학교 36개, 쌀알 100개, 4개 제품…. 다 '40건, 여덟(8) 가지, 36곳, 100톨' 하거나, 그냥 관형사만 써서 '네 제품' 하면 된다.
하기는 전에 없이 '개국(個國)'을 '나라를 세는 단위'라고 표제어(標題語)로 올린 사전도 있기는 하다. 흐름일 수도 있겠으나, 자연스럽지 않은 물길이라면 미리 바로잡는 게 좋겠다. 이러다 사람도 한 개, 두 개 세는 날이 올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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