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회담하다'와 '회담을 가지다'
여럿이 먹는 음식 너무 열심히 자기 입으로 가져가면 밉살스럽다. 공짜랍시고 뭐든 잔뜩 가져가도 그렇다. 보통 사람의 이깟 욕심도 눈총받는데, 국민을 상대로 칼집 휘두르던 사람들이 그랬다면 오죽할까. 그런 두 사람이 요즘 지나치게 가지려 한 일로 호되게 유명세(有名稅)를 치른다.
정작 한 사람은 마땅히 가졌어야 할 의심을 갖지 않아 의심받고 있다.
'검사장 승진 대상자가 특정 기업의 비상장 주식을 88억원어치나 갖고 있다면 (중략) 그 규모가 워낙 큰 만큼 누가 봐도 자금 출처 등에 대해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의심을 꼭 '가져야' 하는지 의심스럽다. 공직자의 의무, 도덕성 같은 걸 말하려는 게 아니다. 신문이든 방송이든 '가진다'는 표현을 참 좋아해서 하는 말이다. 보기 몇 가지 들어보자.
'전화 회담을 갖다, 접촉을 가지다, 긴급회의를 갖다.' 영어로는 have a telephone talk, make contact with, have an urgent meeting 정도가 되겠다. 우리말로 다시 바꿔보자. 전화로 회담하다, 접촉하다(만나다), 긴급히 회의하다.
이렇게 서술어만 써야 자연스러운데 왜 거추장스러운 목적어를 붙였을까. 명사나 명사구(名詞句)로 이뤄진 목적어가 서술어와 결합하는 구조가 같아 영어 영향을 의심할 만한 표현이 많아도 너무 많다.
광범위한 조사를 진행했다(광범위하게 조사했다), 과학적인 분석을 했는데(과학적으로 분석했는데), 깊이 있는 공부를 하기 위해(깊이 있게 공부하려고), 예상 밖의 압승을 거뒀다(예상 밖으로 압승했다), 기술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기술적으로 조치하지 않으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별달리 반응하지 않고)….
멀쩡한 '아내'가 '와이프'한테 쫓겨나다시피 한 세상에 웬 국수주의(國粹主義) 같은 소리냐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단지 낱말 문제가 아닌 문장 구조 변형은 '언어 주권(主權)'이 위협받는다는 신호 아닐까.
우리는 독도(獨島) 소리만 들어도 목에 핏줄이 돋는다. 사드 딴죽 거는 중국 때문에 부아가 치민다. 이렇게 영토 주권, 군사 주권만 애지중지(愛之重之)하지 말고, 우리 정신의 거울도 뽀득뽀득 닦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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