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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10주년 '이응노의 집'....앞으로도 잘 살아있으라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4. 22. 16:29

개관 10주년 '이응노의 집'....앞으로도 잘 살아있으라

중앙일보

입력 2022.04.06 16:46

업데이트 2022.04.06 18:55

이진경 글씨. 윤남영 촬영. [사진 이진경스튜디오]

 

이진경, 달. [사진 이진경스튜디오]

 

이진경, '집 나무 네그루], 2018, 윤남영 촬영 [사진 이진경스튜디오]

충남 홍성의 용봉산과 월산 사이에 자리 잡은 낮은 들판. 이 한적한 곳에 '홍성의 명소'가 있다. 고암(顧菴) 이응노(1904~89) 생가기념관 '이응노의 집'이다. 지난 주말 서울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거리 남짓한 이곳이 유난히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이진경(54) 작가의 '먼 먼 산 - 헤치고 흐르고' 전시 연계행사를 보기 위해 각 도시에서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이응노생가기념관인 이응노의 집은 2011년 개관한 이래 작가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고암미술상을 제정하고 격년으로 시상해왔다. 제5회 수상자인 이진경 전시는 지난해 12월 개막했으나, 코로나 확산으로 작가와의 대화·천도재 등의 행사가 미뤄지다 지난 2~3일 이틀에 걸쳐 열렸다. 이 자리가 특별한 이유는 더 있었다. 수상자가 자신의 전시를 이응노와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위로하는 자리로 펼친 것. 뒤늦게나마 '이응노의 집' 1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도 더해진 이 자리에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조성룡(성균관대 석좌교수·조성룡도시건축 대표)도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살아있는 전시장으로"

충남 홍성 이응노의 집. [사진 건축사진가 김재경]

 

충남 홍성 이응노의 집. [사진 건축사진가 김재경]

조 석좌교수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고암은 프랑스에 살면서도 늘 고향의 용봉산과 월산 얘기를 많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고국을 그리워했지만 결국 못 돌아오고 파리에 묻혔다. 이 아름다운 땅에 고암을 모신다는 뜻으로 생각하고 작업했다"고 말했다. 경사진 지형을 그대로 살려 지은 건물은 내부가 낮은 언덕길처럼 지그재그로 펼쳐진다.

그는 "이 건물의 가운데 홀이 굉장히 중요했다. 저는 이곳을 사당이라고 생각했다"며 "이 안을 걸어 들어가며 관람객이 고암의 삶을 통해 우리 역사를 돌아보고, 또 고암의 뜻을 잇는 작가들에 의해 살아있는 전시장으로 이어지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미술은 고급? 그것은 고정관념" 

고암미술상 제5회 수상자인 이진경 작가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이응노의 집 전시실. [사진 이은주]

 

이진경의 그림과 글씨. 윤남영 촬영. [사진 이진경스튜디오]

이진경의 전시는 여러모로 파격 그 자체다. 3개 전시실을 자연, 역사, 전통 등 소주제로 나눠 그림부터 글씨, 오브제 등 무려 400여 점을 내놨다.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도 매끈하게 정돈하고, 우아하게 연출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벽 바닥부터 위까지 빈틈없이 작품을 다닥다닥 걸거나 붙였다. 한 벽엔 '추어탕'이라는 대형 글자가 그의 독특한 서체로 쓰여 걸렸는가 하면, 이름 모를 식당의 메뉴판도 작품으로 등장했다. 모두 친근한 손글씨 같은 '이진경체'다. 버들강아지와 달, 밥과 국수 그림이 유난히 많다.

 

전 쌈지 아트디렉터로도 유명한 이진경은 이른바 '쌈지체'라 불리는 자신의 글자체를 만든 주인공. 무엇보다 그는 '미술=고급'이라는 개념에 저항하며 일상적이고, 쉽고, 젠 체하지 않는 방식으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형성해 왔다. 글씨와 그림을 넘나드는 작업은 환경, 생태, 문화, 정치 등 삶을 둘러싼 다양한 얘기를 다룬다. 이 작가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있는 미술을 상류 문화로 여기는 것이야말로 '연출된 집', 즉 '마당 없는 집'과 같은 것"이라며 "내가 하고 싶은 미술은 꽃도 피고 연탄재도 있는 마당처럼, 우리가 경험한 역사와 삶을 연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성 강화가 관건  

홍성군이 운영하는 이응노의 집은 10년간 잘 자라왔다. 2013년 고암미술상을 제정했고, 창작 스튜디오도 만들어 운영 중이다. 2019년부터 고암학술연구사업도 추진해오고 있다. 그러나 개관 10년이 되도록 여전히 군청 산하 '시설 사업소' 관할로 운영되는 것은 가장 아쉬운 점으로 지적된다. 조 석좌교수는 "이응노의 집은 상징성, 장소성, 공간 등 국내에 선도적인 인물기념관이 될 만한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음에도 독립 기관으로 차별화된 운영을 하지 못하고 있어 아쉽다"며 "앞으로 혁신적인 시스템과 운영이 더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응노는 누구?=충남 홍성 태생의 미술가다. 서화가인 김규진 화백으로부터 수묵화 등을 배우고, 스무 살 때인 1924년 조선미술전람회 입선하고 도쿄 유학을 다녀온 뒤 홍익대·서라벌예대 교수로 일했다. 55세 때인 58년 서독에서 개인전을 열고 이후 파리에 정착했다. 60년대 후반 반정부 간첩단사건인 동베를린 사건으로 2년 반 동안 옥살이하는 등 정치사건에 휘말려 고초를 겪었다. 결국 그리워하던 고국 땅을 다시 밟지 못하고 89년 국내 첫 대규모 회고전(호암갤러리) 개막 직전 파리에서 눈을 감았다.

충남 홍성=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