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의 문화경제시대]
새 정부 문화 정책, ‘팔길이 원칙’ 넘어서야 한다
“지원하되 간섭 말라”는 ‘팔길이 원칙’이 ‘無정책’ 핑계여선 안 돼
문화를 정치에 이용하는 ‘손바닥 원칙’ 경계하되 적극적 정책 펴야
새로운 정부가 들어온다. 아직은 어떤 정책을 펼치게 될지 오리무중이다. 이번 대선은 무엇을 할 것인가, 그걸 놓고 논쟁을 한 미래적 선거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지난 정부의 실정을 평가하는 회고적 선거였다. 그렇다면 문화예술 분야는? 사법적 의미의 공정, 경제적 의미의 집값과 같은 큰 논의에 밀려서 제대로 의제로 형성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때 ‘문화융성’이라는 키워드가 전면에 나섰던 것과 비교하면 정말 별거 없던 대선이었다.
이전 정권을 살펴보면, 문화 쪽에서 그래도 뭔가 한 흔적이 남는 것은 DJ(김대중) 정부 정도다. 정부가 직접 한 것도 많고, 제도 개선도 많이 이루어졌다. 창투사를 통해서 영화에 투자하도록 제도 정비를 했고, 그때의 영화 투자가 결국 한국 영화의 붐을 만든 시드머니 같은 게 되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노무현 정부 때도 문화 정책은 별게 없었고, 문재인 정부도 그 이전부터 논의되던 예술인 고용보험 정도 빼면 큰 건 없었다.
MB(이명박) 정부 때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남긴 블랙 리스트와 관련해 문화계에서 크게 내세우는 것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에서 형상화된 ‘팔 길이 원칙’이다. 정부가 팔 길이만큼 거리를 두면서 도와야 한다는 것인데,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말라”, 이런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반대는 ‘손바닥 원칙’인데, 워낙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문화예술을 자기 손바닥 안에 놓고 사용하고 싶다는 충동을 이겨내기 쉽지 않다. 한류 스타를 비롯해서 문화예술 분야의 셀럽을 정치에 사용하고, 그들의 입에서 자신들이 하고 싶은 얘기가 나오게 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좀 멀리하고, 지원도 끊고 싶고….그러면서 나온 게 블랙 리스트의 반대인 ‘화이트 리스트’다. 내가 도와주고 싶은 사람에게 잔뜩.
윤석열의 대선은 문화예술로만 국한해서 보면 무관심 대선이었다. “블랙 리스트는 안 한다”, 이 정도는 선언할 만도 한데, 그것도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맞는다 틀리다, 이런 논쟁 자체가 없었다. 지방 문화 촉진, 공정 계약 관행, 장애인 문화 접근권 등 문화 공약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대를 관통할 ‘메가 이슈’는 없었다. 그렇다 보니 국정 과제에서도 문화 분야에 대한 논의는 뒤로 밀리는 형국이다. 대선 때 관심 없던 이슈는 집권 후에도 관심이 없게 된다.
내가 만약 윤석열 캠프에 있었다면 어떠한 정책을 디자인했을까? 나라면 오래된 ‘팔 길이 원칙’을 폐기할 것 같다. 자기 맘대로 하지 않겠다는 것은 긍정적인 것이지만, 좀 더 적극적인 정책을 펴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경제 자체에 부가가치를 높이는 문화 경제를 기치로, 문화와 관광을 분리시키고, 문화부를 부총리급으로 격상시킬 것이다. 영화를 제외한 나머지 분야를 한데 묶어 놓은 문화예술위원회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분야별 별도 위원회로 독립시킬 것이다. 묶어 놓으면 관리는 쉽지만, 창의적인 개별 발전은 어려워진다. 행정편의주의다.
그리고 예산과 기금을 분야별로 투명하게 하고, 분야별 발전 전략을 관심 있는 국민들이 공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나갈 것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문화예술 기본소득을 분야별, 그리고 지역별로 만들어나가는 방법을 설계할 것이다. 비수도권 지역이 먼저 시작하고, 어려운 분야의 창작자들에게 먼저 시행하는 것이 정책 효과가 클 것이다. 문화예술 분야에는 새로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에 대한 지원 효과와 지역 경제 활성 효과가 존재한다.
선진국이 되면 문화 경제가 강화된다는 게 상식이지만, 이런 일이 그냥 일어나지는 않는다. 문화 다양성은 시장의 경쟁만으로는 만들어지기 어렵고, 지역 재분배 효과는 정책적 노력이 지속되어야 발생한다. 이를 통해 글로벌 트렌드가 만들어진다. 적당한 무관심과 적당한 지원, 이걸 뛰어넘는 또 다른 적극적 계기가 선진국다운 문화 경제를 위해 필요하다. 이 정도는 보수 정부도 할 수 있다. 그리고 5년 뒤 경제적 성과가 현저히 개선되는 문화 경제의 기적을 목격할 것이다. 영국이든 프랑스든, 2차 세계대전 이후 문화 경제의 기틀을 만든 건 보수 정부 시절의 일이다. 다만 그들은 그걸 ‘경제’라고 부르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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