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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조선팝 창시자’ 서도밴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2. 7. 16:46

멋·흥 품은 조선팝, 반짝 유행 아닌 마스터피스 될 것

중앙선데이

입력 2022.01.15 00:20

업데이트 2022.01.15 01:24

 

[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조선팝 창시자’ 서도밴드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박진병(퍼커션), 김성현(건반), 이환(드럼), 연태희(기타), 서도(보컬), 김태주(베이스). 전민규 기자

 

2022년 새해,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한 대중음악 아티스트를 꼽으라면 서도밴드다. 지난 연말 막내린 JTBC ‘풍류대장’ 우승과 동시에 전국 투어 콘서트를 시작하며 새해를 맞았기 때문이다. 당돌하게 ‘조선팝의 창시자’를 자칭하며 등장한 서도밴드의 음악은 국악 대중화를 위해 애쓰는 여느 아티스트들과 달리 국악을 주재료로 만든 대중음악 그 자체로 들린다. 5월까지 거의 매주말 전국을 도는 사이 ‘조선팝’이 정말 한 장르로 자리 잡아 우리 음악시장의 다양성에 기여하게 될까.

 

보컬 서도(26)부터 건반 김성현(27), 퍼커션 박진병(26), 기타 연태희(27), 베이스 김태주(32), 드럼 이환(25)까지, 멤버 6명은 모두 동아방송예술대학 실용음악과 동문이다. 2018년 국악방송의 ‘21세기 한국음악 프로젝트’ 출전을 계기로 결성됐다는데, 국악과 아무 상관없던 연주자들이 하필 국악보컬을 중심으로 모였을까. “이성적 판단보다 처음 서도의 음악을 듣고 대중들이 받는 느낌을 저희도 똑같이 받았어요. ‘풍류대장’ 파이널곡인 ‘바다’에 대한 심사평들이 두루뭉술했던 것처럼, 저도 처음 그 곡을 듣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있었거든요. 제가 느낀 그 무언가를 더 많은 대중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태주)

“국악은 지독하고 찐득찐득한 음악”  

 

‘조선팝’은 인디씬에서 만난 그룹 루시의 최상엽이 “너희 음악은 뭔가 다르다”며 던진 말이지만, 어느새 일반명사처럼 쓰게 됐다. ‘창시자’가 생각하는 조선팝의 조건은 뭘까. “친근하게 다가가려 붙인 이름이라서요. 대중적으로 들리는데 국악적인 색깔이 있다면 가볍게 조선팝이라고 부르면 좋겠어요. 어느 팀이 ‘우리도 조선팝을 한다’고 해도 자유입니다.(웃음)”(성현) “처음 들었을 땐 그저 재밌었는데, 아티스트가 하나의 장르를 만들 수 있다는 건 큰 일이라 생각해 밀게 됐어요. 제가 판소리를 했었고 소리의 황금시대가 조선후기인데, 저희 방향성이 대중적이고 싶은 음악이 아니라 아예 대중음악이 되고 싶은 거라서 적절하다 판단했죠. ‘풍류대장’만 해도 엄청난 실력자들이 많았는데, 그게 ‘조선팝’이라는 단어로 묶인다면 너무 영광스러울 것 같네요.”(서도)

거대한 파도를 헤치고 나가는 선장과 뱃사람들. 무대에 선 서도밴드의 이미지다. 그런데 일상에서는 여느 청년들처럼 왁자지껄했고, 서도는 마치 소년같았다. 방송에 비친 ‘제사장급 카리스마’와는 사뭇 달랐지만, 사진 촬영 땐 어딘지 이세상 사람 같지 않은 아우라를 바로 장착했다. “그런 이미지를 의도한 건 아닌데, 어쨌든 저는 사람들을 몰입시켜야 하니까요. 굳이 뭘 표현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제가 그냥 몰입해 있으니까 그렇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주변에서도 퍼포먼스를 연출하냐고 묻는데, 연습 땐 전혀 다르거든요. 저희도 방송을 보고 뭘 했는지 알았을 정도로 노래할 땐 무아지경이 되죠.”(서도)

 

밴드명에 ‘서도’를 내세웠지만, 독재자는 아니다. 취향이 다른 각자의 아이디어가 부딪치는 공동창작 과정에 새로움의 비결이 있다. “다 같이 합주하면서 만들어요. 제 뮤즈는 에이미 와인하우스이고, 휘트니 휴스턴이나 퀸 같은 슈퍼스타를 정말 좋아하지만, 우린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밴드니까요.”(서도) “저는 콜드플레이나 브릿팝 쪽 U2같은 밴드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뱃노래’ 경우도 기타 리프로 시작하는데, 제가 좋아하는 브릿팝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오죠. 거기에 다른 멤버가 좋아하는 장르의 특징이 믹스되면서 새로운 것이 나오는 것 같아요.”(태희)

흥미로운 건 이들의 음악이 세련되면서도 중독성 있는 멜로디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국악이 화성과 멜로디를 경계하고, ‘범내려온다’의 이날치만 해도 리듬으로 중독성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유니크한 지점이다. “저도 사실 멜로디보다 리듬을 많이 고민해요. 4박이라면 서양음악은 2,4박에, 우리 음악은 1,3박에 강세가 들어가는 완전히 반대의 리듬구조인데, 이날치의 경우는 서양음악 리듬 안에 전통음악의 가락이 얹혀지거든요. 저희는 뱃노래나 강강술래의 경우 정반대로 전통 리듬 안에 멜로디를 얹었고, 사랑가는 R&B 리듬에 전통 가락을 얹는 식으로 여러 시도를 하고 있죠. 사실 전통음악 자체의 그루브나 흥을 대중이 타기는 쉽지 않은데, 저는 제가 알고 있는 그 멋과 흥을 가지고 새로운 멜로디를 만드니까 사람들이 좀더 쉽게 받아들이는 것 아닐까요.”(서도)

다섯 살 때 판소리에 입문한 서도는 국립국악중학교에 다닐 때까지 소리꾼이 될거라 믿었다. 오늘날 ‘조선팝’의 탄생에 국립국악고등학교가 큰 일을 한 셈이다. “판소리를 포기한 계기는 국악고에 떨어진 것이죠. 만일 붙었다면 계속 국악인의 길을 걸었을 걸요. 브레이크가 걸리니 음악적 방향성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다양한 음악을 해보자는 판단으로 검정고시를 봐서 실용음악을 전공하게 됐어요. 하지만 다섯 살 때부터 놀이터 가듯 선생님 무르팍에서 장구치고 노래하며 재밌게 익힌 국악이 몸에서 나가지 않더라구요. 국악이란 게 워낙 지독하고 찐득찐득한 음악이거든요.”(서도)

멤버들도 어느새 그 찐득찐득한 국악의 호흡을 체득했다. 모든 무대에서 밴드가 뱃사람들처럼 하나의 호흡으로 노를 젓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그래서다. 퍼커션을 맡고 있는 진병이 브릿지 역할을 했다. “서도를 스승삼아 사사받았죠.(웃음) 풀밴드를 갖추기 전 1~2년간 어쿠스틱셋으로 활동할 때 산공부까지 따라다니며 입시생처럼 전통을 익혔어요.”(진병) “그때 진병이가 리듬꼴이나 몸으로 익혀야 되는 호흡을 많이 잡아놨어요. 전통음악에서 요구하는 호흡이 있거든요. 서양악기는 타법부터 배우지만 전통은 몸으로 호흡이 된 다음 악기를 쥐어주니까요.”(서도) “호흡을 설명할 때 서도 형은 시 짓듯 얘기를 하니 단 한마디도 못알아듣거든요. 파도처럼 둥글게 둥글게 치라는데, 멘붕이었죠.(웃음) 처음엔 무시하고 악보대로 연주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아니더라구요. 진병이 형이 타악의 관점에서 잘 설명해줘서 조금씩 연주에 반영되는 것 같아요.”(환) “같은 연주를 해도 서도의 반응이 올 때가 있어요. 서도가 그루브를 타면 이런 느낌인가 싶고, 밋밋하게 있으면 이게 아닌가 싶고. 눈치로 체득했달까요.(웃음)”(성현) “곡을 만들 때도 기타부터 나오는 곡은 제게 엄청난 호흡이 요구되거든요. 악센트의 변화나 셈여림을 잘 살려서 뭔가 울렁울렁한 느낌을 만들면 서도가 좋아하더군요.”(태희)

전통의 호흡을 품은 ‘조선팝’이 갑자기 나타난 건 아니다. 그 전주곡이라 할 BTS 슈가의 ‘대취타’와 이날치 ‘범내려온다’ 신드롬도, 다양성이 부족했던 K팝과 제도권에 갇혀있던 국악이 서로 크로스오버를 통해 활력을 모색한 결과였다. “앞길을 멋있게 닦아주셔서 저희도 이만큼 온 것 같아요. 저희는 3년 동안 그냥 쌓아왔을 뿐인데 갑자기 전통음악에 대한 관심을 높여주시니 앗, 우리도 잘 될 수 있겠다 싶었죠.”(진병) “우리 음악시장에 다양성이 없었던 건 당연해요. 급하게 경제성장하면서 음악이 발전하기 어려웠던 거죠. 서양에서는 90년대 초반부터 재즈라는 범주 안에서 다양한 음악들이 섞이면서 우리보다 빨리 일어났다면, 우리도 이제 자연스럽게 때를 만난 것이죠. 저희가 지금 이런 음악을 할 수 있는 것도 이전의 퓨전국악이나 크로스오버 선배들의 음악을 들으며 자라왔기에 가능한 것이구요.”(서도)

1년 뒤엔 해외 공연 하고 있을 것

5월까지 전국 투어중인 ‘풍류대장 콘서트’. [사진 어트랙트M]

‘풍류대장’은 이들에게도 신세계였다. 인디씬에서 활동하면서 여타 참가자들과 접점이 없었던 터라, 새삼 국악 아티스트들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됐다. “다른 경연 프로와 풍류대장 참가자들은 클래스가 달랐어요. 딱 들어도 후덜덜한 사람들이 주변에 한가득 있더군요. 국악계서 되게 유명한 김준수씨를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이런 분을 모를 정도로 국악에 무관심했구나 싶었어요.”(태희) “되게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억스나 김주리씨나, 정말 말도 안되게 높은 음을 너무도 편안하게 부르시는 걸 보고 괜히 국악인들을 문화재로 지정하는 게 아니구나 실감하게 됐죠.”(환)

지난해 11월에 열었던 단독콘서트가 3분 만에 매진되는 등 방송을 타며 달라진 인기를 실감하지만, 음원차트 정상을 찍는 식의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갑작스런 변화는 위험할 수도 있다”고 했다. “붐이 되면 순간의 유행에 그칠 수 있잖아요. 사람들의 관심이 태동하는 움직임으로 자연스럽게 커져가면 좋겠어요. 우리도 반짝 유행이 아니라 단단하게 쌓아올려서 마스터피스가 되고 싶거든요.”(서도) “주제넘지만 국악적인 걸 비장하게 바라보기보다 가볍게 바라봤으면 좋겠어요. 저도 어려서 국악이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편하게 바라본 다음부터 재미가 보이더군요.”(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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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르네상스도 ‘올 것이 온 것일 뿐’이라는 이들은 그 속에서 서도밴드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1년 후 오늘, 팬데믹이 끝나고 해외 공연을 하고 있을 꺼란다. “전통음악이 세계적 장르가 된 해외 사례를 보면 당시 그 나라들은 서로 교류가 활발했는데, 이제 우리 차례가 온 것 같아요. 판이 열리고 흐름이 모아졌으니, ‘조선팝’도 세계 음악시장에서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는게 목표죠. 유명 페스티벌에서 우리 음악을 들려줬을 때, 외국인들이 왠지 좋아서 몸으로 반응하며 울렁울렁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서도)

이들의 당돌한 청사진을 여러모로 응원하고 싶었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