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詩作은 시작 始作이다.
나호열 시인· 문화평론가
우리는 노인입니까?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하였으니 변화 없는 세상이 있겠느냐마는. 그 변화의 너비를 상상할 수 없는 세계가 우리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산업사회에서 이제는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이른바 디지털 문화의 시대로 진입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인공지능 (AI)과 자동화 기술의 확산은 과도한 단순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가져오는 동시에 이와 같이 고도화되어가는 기술의 편리함으로부터 소외되는 계층을 만들어내고 있다. 세계에서 유래 없는 경제적 발전을 이루어 내면서 우리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되었지만 정신적 궁핍을 느끼는 세대가 늘어나게 된 것이다.
어림잡아 해방 이후에서 6.25 전란 전후에 태어난 세대들은 당면한 여러 상황들에 적절하게 대응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과거의 농경 農耕과 대가족 사회를 기반으로 한 충효 忠孝의 전통적 유교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까닭에 탈이성적脫理性的 가치관, 카톡이나 메신저와 같은 SNS, 더 나아가 그들의 세대와의 생활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젊은 세대와의 갈등과 불통, 소비의 욕망을 충족할 수 없는 경제적 박탈감으로 말미암은 문화적 삶으로부터의 소외되고 있다. 말하자면 낀 세대가 되어 본연적 삶의 즐거움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지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생애주기 상 노년기가 가장 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60대 이상의 세대는 자신의 삶을 여유롭게 반추하고 자아실현의 기쁨을 누리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전통적인 농경사회와 유교문화에 익숙한 상태로 살아오다가 급격하게 변화한 삶의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노년을 맞이한 까닭이다. 가부장의 관습 속에서 가난의 극복과 가족의 영달 榮達을 위해 헌신하다가 정작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지 못하는 난관에 부딪치게 되는 현상이 보편화되고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의 통계를 보아도 65세 이상의 노인 빈곤률이 43%에 이르고, 경제적으로 노후 준비가 된 사람들이 절반이 되지 않으며 그런 까닭에 2019년 기준 10만 명 당 평균 27명이 자살을 택하게 되는데 유독 65세 이상에서는 47명이 자살의 비운을 맞이하게 된다는 우울한 소식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다.
노인의 성격 유형별 특징
심리학자 레이처 Reicher는 노인의 성격을 5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성숙형은 자신의 현재 상황에 만족하고 일상적인 활동을 지속하면서 대인관계 또한 원활한 사람들이다. 은둔형은 번잡한 사회활동, 대인관계에서 벗어나 조용히 여생을 즐기는 자족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무장형은 늙음을 거부하면서 신체활동의 노화를 막으려 하고 대외적인 활동을 펼치기를 원한다. 이에 반해 분노형과 자학형은 자신의 늙음에 대해 능동적 사고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국면에 처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분노형은 삶의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이 시대적 상황, 경제적 여건, 기족의 문제 등에 기인하는 것으로 여기고 타인과의 원만한 사교나 타협을 이루지 못하는 유형이다. 자학형은 분노형과 달리 자신의 삶을 실패로 받아들이고 그 실패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단정함으로써 우울증과 자실의 유혹에 취약한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이와 같은 분류는 명확하게 유형별 경계를 나눌 수는 없겠으나 보다 나은 노년을 설계하기 위한 진단으로서는 유용할 것이다. 매슬로우Maslow가 욕구하는 존재로서 인간의 최종목표가 자아실현에 있다고 주장할 때, 우리의 노년은 적어도 분노와 자학의 유형에서 벗어나는 일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째든 멀리는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고 가까이는 가족애 家族愛 로 헌신해 온 오늘날의 노년 세대에게 가장 필요한 일은 자아 존중감을 상기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점이다. 자신만의 이익을 고집하는 이기심이 아닌,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매사에 긍정적인 사고思考로 대하는 이러한 자존감을 일깨움으로써 단조롭고 무미한 일상에서 탈피하는 삶으로 바꾸는 것이 건강한 고령화시대를 맞이하는 준비가 될 것이다.
시시한 일상이 작품이 될꺼에요.
도봉문화원은 지역문화의 숨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문화文化’가 뜻하는 바, 보다 세련되고 가치 있는 삶을 향하여 가는 그 길에 서 있는 지역주민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삶이 어떻게 하면 빛날 수 있을까?”를 탐색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도봉문화원의 중요한 과제이기도 한 것이다. 그 사업의 첫 걸음으로 『시작 詩作: 시시한 일상이 작품이 될꺼에요』는 문화 향수의 취약세대인 노년의 자존감 회복과 건강한 일상을 진작 振作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기획되었다. 60세 이상의 지역주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주관한 『2021어르신문화프로그램』공모에 선정되어 2021년 5월 31일부터 2021년 9월 16일까지 매주 월요일, 목요일에 강의(대면강의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팬데믹 상황으로 비대면 줌 강의로 대체)를 진행하고 2021년 10월 21일부터 일주일간 작품 전시회를 개최하였으며, 총 135쪽의 작품집 『詩作: 시시한 일상이 작품이 될꺼에요』를 발간하였다. 평범한 생활인으로서 예술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이 프로그램은 열 여섯 분의 신청을 받아 최종 열 두 분이 네 편의 시와 사진 작품을 제출함으로서 종료되었다.
이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는 평범한 노년 세대에게 자존감을 상기시키고 그 자존감을 드러낼 수 있는 성과물을 생산함으로써 활기찬 일상을 일구어 나갈 수 있는 힘을 불어놓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 매개체로서 ‘시詩’와 ‘사진’을 선정하였는바, ‘시詩’는 자신의 감정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표현할 수 있는 도구로서 생활화 할 수 있으며 ‘사진’ 또한 카메라를 능가하는 스마트 폰에 별도의 기술이 없어도 자신의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풍경을 담을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언제든 시와 사진을 통해 자존감을 배양할 수 있다는 판단이 적중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 세세한 교육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단계는 인문학적 지식을 터득하는 단계로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남은 인생의 후반기를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실천 사례와 방안을 탐색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급격히 변화하는 세태에 능동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자신감을 키우고, 가치관이 다른 젊은 세대들과의 소통 능력을 배양하는 프로그램으로 진행한다.
두 번째 단계는 자신의 존재를 자신 있게 표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단계로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시 창작의 기본 토대를 배우는 과정으로 구성되었다.
세 번째 단계는 이미 우리 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휴대전화기를 활용하여 사진 촬영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사진 촬영의 구도를 배우는 과정이다.
마지막 단계는 위의 세 단계의 학습을 통하여 주어진 주제에 따라 시를 창작하고, 그 시에 알맞은 사진을 덧붙여 자신의 의도를 작품으로 표출하는 작업이다.
생활 속에서 시 쓰기
21 세기 우리의 문화의 특징을 꼭 집어 이야기 한다면 ‘경계의 사라짐’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평등의 개념으로 남과 여의 구분이 사라지고 있듯이, 프로와 아마튜어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아니라도 어느 분야에서든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작품을 만들고 전파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글쓰기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펜과 종이만 있으면, 더 나아가 스마트 폰의 메모 기능을 활용하여 사진과 함께 자신의 글을 삽입할 수도 있으며, 그 작품들을 가까운 이웃에게 전송함으로써 삶의 여러 감정들을 공유할 수도 있다.
『시작 詩作: 시시한 일상이 작품이 될꺼에요』에 출품된 열 두 분의 작품은 ‘고향’,‘기쁨’, ‘치유’, ‘계절’의 네 개의 주제로 총 48편이 시와 사진이 수록 되었다. 첫 번째 ‘고향’은 점점 멀어져 가는 고향을 추억에서 소환하는 일이다. 우리는 노마드(유목)의 시대에 살고 있다. 몇 대에 걸쳐 정주 定住하는 삶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까닭에 두고 온 고향, 더 이상 갈 수 없는 고향을 불러보는 일은 언제나 가슴이 벅차다. 두 번째 ‘기쁨’은 우리의 생애에서 가장 기뻤던 일을 불러내어 다시 그 감회를 오늘의 삶에 화관花冠으로 얹는 일이다. 세 번째 ‘치유’는 알게 모르게 상처받고 어두워진 몸과 마음을 스스로 정화하는 활동이다. 그 치유 활동에 의지처가 되고, 자극을 주며, 끝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그 무엇을 버킷 리스트로 간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마지막 네 번째 주제는 ‘계절’이다. 지구의 온난화로 말미암아 봄과 가을이 사라지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던 때가 여름이어서 그런지 여름을 회상하고 여름의 활기와 생명의 역동성을 그린 작품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실제 문단 내에서 발표된 많은 시들은 감성을 자극 할 수 있는 봄, 가을, 겨울을 주제나 소재로 삼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의 작품들은 매우 소중한 수확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중 한 작품을 소개해 본다.
더운 줄만 알았는데
올해는 어찌 그렇게 예쁘기만 하더냐
점점 더워지는 날씨를
원망할까 걱정이냐
그렇게 예쁜 초록색으로
온천지에 가득 채웠더구나
장맛비와 태풍이
지나간 뒤에
그렇게 예쁜 노을은
영화의 한 장면 같구나
비온 뒤 무지개는
어쩜 그리 지주 나오는지
여름을 이제는
더욱 기다리게 되었구나
이제야 나도 모르게
여름 너에게
홀딱 반했나 보다
- 「여름」 전문
이 시는 우리 도봉구에 살고 있는 예쁜 손자들을 돌보며 일상의 기쁨을 누리고 사는 최영자 씨의 작품이다. 단순하고 시적인 기교도 보이지 않는 이 시에서 나는 때 묻지 않은 동심 童心을 보고, 상식적 현상 속에서 경이驚異 -놀라움-을 느끼는 발견의 기쁨을 느낀다. 이렇게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 속에서 자신만의 놀이의 영토를 갖는 것이 시의 힘이라고 믿는 까닭에 다음에 준비할 새로운 프로그램에 찾아올 손님들을 마음 속에 가득 품어보는 것이다.
2021년 도봉문화 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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