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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뻘낙지 잡이, 무형문화재 되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10. 28. 13:51

[김성윤의 맛 세상]

가을 뻘낙지 잡이, 무형문화재 되다

뻘낙지 잡는 기술 ‘손낙지’ 등 갯벌어로, 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
갯벌은 ‘갯밭’… 괭이로 바지락 갯밭 갈고, 미역 갯바위엔 물 주기도
어촌 공동체 문화 전승 북돋고, 우리 먹거리 지속성 높일 반가운 일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입력 2021.10.28 03:00

여름 더위가 수그러들고 바람이 선선해지면 낙지 생각에 입맛 다시는 이들이 많다. 가을을 대표하는 별미 낙지를 잡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 배를 타고 수심 깊은 바다로 나가 통발이나 낚시를 이용해 잡거나, 갯벌에서 손으로 잡는다.

식도락가들이 최고로 치는 건 전통 방식대로 손으로 갯벌에서 잡는 ‘뻘낙지’다. 다리가 가늘고 얇아 ‘세발낙지’라 부르기도 한다. 통발이나 낚시로 잡는 낙지는 깊은 바다 돌 틈에 서식하기 때문에 다리가 상대적으로 짧고 육질이 단단하다. 갯벌을 파고들어야 하는 뻘낙지는 다리가 가늘고 길면서 부드러워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뻘낙지를 잡는 방식 내지는 기술을 ‘손낙지’라고 한다. 손낙지는 상당한 경력과 노하우를 필요로 한다. 일단 ‘부럿’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 부럿은 갯벌 속에 숨은 낙지가 숨 쉬면서 내뿜은 물 때문에 생긴 구멍을 말한다. 어설프게 부럿을 건드렸다간 낙지가 다른 구멍으로 도망친다. 낙지가 눈치채지 못하게 부럿 주변을 어느 정도 깊이로 파낸 뒤 얕은 둔덕을 만들어둔다. 잠시 뒤 낙지가 안심하고 밖으로 나올 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낚아채야 한다.

이러한 전통 손낙지가 무형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이 지난 20일 서해안과 남해안에서 낙지·문어 등 연체류와 바지락·백합·꼬막·굴 등 어패류를 맨손과 도구를 활용해 잡는 ‘갯벌어로’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겠다고 예고했다. 물속에 나무 기둥을 세워 고기를 잡는 ‘어살’에 이어 어로 방식으로는 두 번째다. 지정 대상에는 갯벌어로 기술과 전통 지식, 관련 공동체 조직 문화(어촌계)와 의례·의식이 모두 포함된다.

미역, 다시마, 김 등 해조류는 포함되지 않았다. 우리나라 어촌 공동체를 연구하는 사회학자이자 ‘바닷마을 인문학’(따비)을 쓴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섬발전지원연구센터장은 “넓은 의미로 갯벌을 연안 습지로 볼 때 갯바위에 붙은 해조류를 포함할 수 있지만, 현대적 김·미역·다시마 양식은 웬만한 중소기업 수준으로 자본과 노동을 투자해 이뤄지는 데다 갯벌에서 떨어진 깊은 바다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갯벌어로에 포함시키기 어렵다”고 했다.

어민들에게 갯벌은 밭이었다. 갯밭이라 불렀다. 모르고 보면 다 같은 갯벌 같지만, 지역 어민 눈에는 서로 다른 갯밭이다. 농촌에 고추·상추·배추·마늘·감자밭이 따로 있듯, 갯바위·혼합갯벌·모래갯벌 등 갯벌 종류에 따라 채취하거나 잡을 수 있는 해산물이 다르다. 바지락이 나는 갯벌은 바지락밭, 굴이 자라는 곳은 굴밭, 미역이 붙어 자라는 갯바위는 미역밭이라 한다.

 

갯밭도 농촌의 논밭처럼 가꿔야 한다. 김 책임연구위원은 “전남 고흥 남성리 바지락밭에 갔다가 생경한 모습을 목격했다”고 했다. “어민들이 괭이를 들고 갯밭을 평평하게 고르고 있었어요. 물어보니 물 빠짐이 좋게 골을 치고 모래나 흙을 집어넣어야 어린 바지락이 잘 자란다는 거에요. 또 하나, 썰물에 물이 빠질 때 갯벌이 평평하지 않으면 물웅덩이가 생겨요. 웅덩이에 고인 물은 봄이나 여름에 햇빛 아래 뜨거운 물로 변해요. 어린 바지락은 그대로 익어버리며 비명횡사를 면치 못하죠.”

현대적 양식장이 아닌 전통 미역밭은 김을 매줘야 한다. 전남 진도군 조도면에 속한 맹골도·관매도·독거도·곽도 등 작은 섬들은 돌미역으로 이름 높다. 이 지역 어민들은 ‘갯닦이’라는 걸 한다. 늦가을이나 겨울에 미역이 자리 잡기 알맞은 갯바위를 깨끗하게 닦아준다. 해초·따개비·담치 따위를 떼어내야 미역 포자가 잘 자리 잡고 자란다. 갯닦이를 한 갯바위와 그렇지 않은 갯바위의 돌미역 생산량이 10배까지도 차이 나기에 반드시 해야 하는 작업이다.

심지어 미역밭에 물도 준다. 바다에 잠겨 있는 갯바위에 물을 준다니,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다. 물이 많이 빠진 사리 때 갯바위가 따가운 여름 햇볕에 장시간 노출되면 미역이 마르거나 죽는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어민들은 미역밭을 돌아다니며 바닷물이 들어올 때까지 긴 자루에 매단 바가지로 갯바위에 물을 끼얹어준다. 김 책임연구위원은 “여름철 해 뜰 무렵이나 해 질 녘 고추밭에 물 주는 풍경과 닮았다”고 했다.

갯벌어로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 뻘낙지 등 전통 먹거리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어촌 공동체와 이들이 품고 있는 문화가 전승되리라는 희망도 커진다. 무형문화재로 지정해 보호해야 할 만큼 소멸될 위험에 처한 듯해 안타깝긴 하지만, 그래도 반가운 일이다.

음식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