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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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진화론을 읽는 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0. 9. 29. 23:48

진화론을 읽는 밤

 

 

 

냉장고에서 꺼낸 달걀은

진화론의 지루한 서문이다

무정란의 하루가 거듭될수록

저 커다란 눈물 한 덩이의 기나긴 내력을

통째로 삶거나 짓이기고 싶은

약탈의 가여움을 용서하고 싶지 않다

비상을 포기한 삶은 안락을 열망한 실수

사막으로 쫓겨온 낙타 아버지와

초원을 무작정 달리는 어머니 말

그렇게 믿어왔던 맹목의 날들이

닭대가리의 조롱으로 메아리 친다

다시 나를 저 야생의 숲으로 보내다오

삵에게 쫒기며 도망치다 보면

날개에 힘이 붙고

휘리릭 창공을 박차 올라

매의 발톱에 잡히지 않으려는 수 만년이 지나면

쓸데없는 군살과 벼슬을 버린

새가 되리라

진화론의 서문이 너무 길어

달걀을 깨버리는

이 무심한 밤

 

 

두레문학 2020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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