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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지역문화예술의 역할과 과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0. 8. 24. 11:32

지역문화예술의 역할과 과제

나호열 (시인· 문화평론가)

 

해방 이후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지형도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 계기는 정부 관할기구였던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되었을 때이다. 1973년 설립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2015826일 운영의 주체가 예술인, 문화정책 연구자, 지역문화 활동가 등 민간으로 이양됨으로써 보다 역동적이고 유연한 정책수립과 예술인에 대한 지원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 arm's lengh principle’의 정착이 과연 오늘날에 얼만큼 이루어졌는지는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평가의 편차가 있을 것이므로 논외로 한다고 하더라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출범 이후 문화예술계에 진취적인 변화가 있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국민의 정부(1998 - 2003)에서 촉발된 몇 가지 논쟁은- 예를 들면 지역문화진흥법개정과 같은- 한국예총(한국예술단체총연합회:1962년 설립), 민예총(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1988년 설립), 문화원(전국문화원엽합회:1961년 설립)을 축으로 하는 문화예술단체 간의 여러 번의 공청회와 세미나는 그동안 애매모호하게 통용되었던 문화와 예술에 관련된 키워드들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 간의 상이한 의견에 따르는 충돌과 절충, 수렴과정을 거치면서 시대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개념 정리의 필요성이 보다 생산적인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서울을 중심으로 한 중앙과 그만큼 소외된 지방의 물적, 인적, 재정적 격차를 수평적 관계로 위치시키는 일, 급변하는 시대적 변화에 따라가는 문화와 예술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분석이 자연스럽게 소통되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와 같은 논의는 오히려 늦은 감이 있는 것이, 1995년 우리나라에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된 그 때부터 자연스럽게 제기된 문제이기도 하다. 각 지자체는 지역주민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고, 국민소득의 증대와 맞물려 참여정부(2003 2008)를 정점으로 문화와 예술에 관련된 인프라 구축이 가시화되었다. 과하다 싶을 만큼 시, , 구 단위에서 문화예술회관, 도서관, 공연장, 미술관, 문학관 등과 같은 시설들이 수요를 감안하지 않은 채 경쟁적으로 건립되었으며. 이는 역설적으로 각종 문화예술활동의 중심이 서울로 대표되는 중앙으로부터 수평적으로 지방으로 이동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된 시발점이 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기반시설의 확충은 창작 활동과 향수享受가 동시에 한 지역에서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자연스럽게 문화와 예술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으로부터 탈피하는 계기가 되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중앙 / 지방이라는, 분배의 불균형을 의미하는 공간이 지역이라는 보다 큰 개념으로 확장되는 변화를 맞이하게 되기도 한 것이다. 중앙과 지방이라는 이분적 사고를 벗어나는 지역의 개념은 모든 지역의 문화가 개별성과 독창성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되었고, 이에 따라 문화의 개념 또한 역동적으로 변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 것이다. 필자는 현대문화와 전통문화라는 글에서 문화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친숙하게 쓰이고 있는 단어가 있다. ‘문화라는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막상 문화 文化란 무엇인가?’라고 되묻게 된다면 그 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소박하게 정의를 내린다면 질박한 것에서 장식적으로의 전환, 야만으로부터 진화하는 인간다움의 느낌을 누구나 자족한다는 것이다. 실례를 든다면 인간의 모든 활동 영역에 문화를 덧붙이는 우리의 오래된 습관을 보면 알 수 있다. , , 음식, 정치, 주거, 청소년. 군대 등등의 낱말 뒤에 우리는 얼마든지 문화를 붙여서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단독적이고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보다 집단적이고 가시적인 행동의 양식이 문화라고 정의될 수 있으며. 따라서 문화는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무형의 가치 즉 정신적 가치를 생산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축적화 개념의 영역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문화의 개념이 본질상 축적을 넘어서서 기획하고 만들어지는(作爲)의 개념으로 확대되는 경향이 있는데 문화산업이나 문화 콘텐츠 같은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문화를 경제적 측면에서 생산성과 이윤을 창출하는 도구로서의 성격을 강조하는 것으로서 문명 文明의 요소가 지배적임을 뜻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예술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논의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출범 시의 슬로건이 문화의 중심에 예술이 있다고 한 것을 상기해보면 여전히 예술이 문화의 중심 기반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동시에 전통적인 예술의 영역이 협동corporation 과 협업 collaboration을 거쳐 융합fusion 의 단계로 확장되어가는 것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보자. 전통적인 오페라는 뮤지컬로 진화하면서 연극, 음악, 의상, 미술적 요소가 결합된 종합 장르로, 모나리자와 같은 고정된 그림이 디지털 기술에 의해 움직이는 동영상으로 만들어지는가 하면, 사진 또한 합성에 의해 전혀 다른 추상적 작품으로 재탄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술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은 필연적으로 창작자와 향수자의 구분을 무력화 하는 이른바 생활문화, 또는 생활예술이라는 새로운 영역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노래를 잘 부른다고 모두 가수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며, 국전에 당선되지 않았다고 그림 전시회를 하지 못 한다는 법은 없다. 굳이 전문 예술가와 아마튜어를 구분한다면 예술 활동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경제적 기반이냐 아니냐로 가늠할 수 있는 정도로 예술의 대중화는 이미 우리의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는 걸림돌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같은 지원 기구의 시스템과 전문예술가들과의 소통, 전문예술가들과 일반대중과의 작품활동을 매개로 하는 소통이 여전히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언급한 지역문화진흥법이외에도 많은 법들이 문화예술활동의 진작을 위해 만들어져 있다. 문화예술교육지원법, 문화예술진흥법, 지방문화원진흥법, 문화기본법, 문화예술후원 활성화에 관한 법률, 예술인 복지법,문화산업진흥 기본법,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등등 문화예술에 관련된 법들이 그물처럼 얽혀져 있음에도 예술현장에서의 체감도는 기대 이하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부연하자면 아무리 좋은 취지의 법도 현실과 유리되어 있다면 충분히 그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취지를 강조하는 것으로 소통의 문제를 다루어보았다. 한 예로 예술인 복지법에 의거하여 2012년에 설립된 예술인복지재단이 얼만큼의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전문 예술가들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에 충분히 기여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는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맡기기로 하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출범이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의 지형을 바꾸는 첫 번째 변화였다면 두 번째로 눈여겨보아야 할 변화는 각 지역에 설립되고 있는 문화재단이다. 광역단위의 문화재단은 1997년 경기문화재단을 시작으로 2020년 경북문화재단 설립을 끝으로 16개 광역단위 지자체는 모두 문화재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 , 구 단위의 많은 지자체에서도 문화재단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이 글에서 이와 같은 광역 단위, , , 구 단위의 문화재단의 효용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다만, 예총과 같은 지역예술단체들은 지역의 문화재단과의 소통이 매우 중요한 일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자체는 지방문화원진흥법3(지방문화원의 육성 등)에 의거하여 지방문화원을 지원해야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

 

3(지방문화원의 육성 등)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지방문화원을 지원·육성하여야 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지방문화원을 육성·지원하기 위하여 필요한 다음 각 호의 시책을 수립·추진하여야 한다.

 

1. 지방문화원 육성·발전을 위한 기본계획에 관한 사항

2. 지방문화원의 활동에 필요한 전문인력·프로그램·시설·재원 확충 등에 관한 사항

3. 지방문화원과 지역 내 문화예술 기관·단체 간의 협력에 관한 사항

4. 그 밖에 지방문화원 진흥 및 활성화에 필요한 사항

지방문화원은 제8조에 따른 지역문화사업을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또 시, , 구 에 설립된 문화재단은 기금조성이나 운용에 있어 각 지자체의 직, 간접적인 지원을 받게 되어 있다. 문화재단은 콘텐츠 개발이나 공모사업, 또는 문화유산의 보존과 시설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예총과 같은 지역 단위 예술단체는 예술활동에 필요한 재원을 지자체로부터 직접적으로 원활히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고 문화원이나 문화재단을 경유하는 다소 불편한 지원 형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돌아보면 한국예총은 해방과 전란 戰亂의 와중에서 우리의 문화와 예술을 지키고 발전시키는데 힘을 기울인 10개의 회원협회와 137개의 연합회/지회를 둔 우리나라 최초, 최대의 문화예술단체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규모에 따른 사회적 영향력이나 회원의 권익보호와 같은 측면에서의 활동 영역은 시대적 변화에 도전을 받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지역의 의미는 IT를 기반으로 한 정보통신의 발전으로 단일성으로 보편화되는 추세에 있다. 즉 한 지방이 지니고 있는 특수성은 보다 큰 단위의 개별성으로 포섭되어 가고 있다. 이에 따라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나 단체도 향토성 鄕土性을 벗어나 전국 단위에서 통용되는 창작의 수월성秀越性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엄중한 현실에 처해 있는 것이다, 안양예총과 같은 지역의 예술단체 또한 지차체, 문화원, 문화재단과의 협동과 협업을 통해 새롭게 확산되고 있는 지역학에 입각한 문화콘텐츠 개발에 관심을 돌려야 할 것이며, 더 나아가 지역주민과의 예술을 매개로 한 소통에도 힘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학은 과거의 지역 단위의 향토사적 차원에서 시행되었던 문화유산의 보존과 전승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 지역의 특성과 미래를 예측하고 실용화하는 융합 학문이다. 문학과 철학과 역사학, 도시학 등등의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생성하고, 궁극적으로는 도시재생사업과 같은 브랜드 창출을 목표로 하기도 하는, 모든 주민이 창작과 향수를 함께 하는 생활문화사 라고 말할 수 있다.

 

눈 앞에 다가온 위기가 도전을 불러일으키고 보다 큰 꿈이 이루어지는 첫 걸음이라는 말을 기억한다. 우리는 급변하는 시대의 변화에 대해 즉응력을 갖추지 않으면 도태되어버리는 상황을 냉철히 바라보아야 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는 좁은 국토 속에서 일일생활권화 되어 있고, 정보통신의 발전으로 정보의 공유가 용이한 환경 속에 살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는 고향을 잊어버린, 아예 고향의식이 부재한 노마드 유목민 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때를 맞이하여 지역의 예술가나 단체가 선도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일은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마침 이 글과 부합되는 오래 전 소고小考(2012)가 있어 그 글의 일부분을 안양예총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면서 하나의 제언으로 드리고자 한다.

 

한국예총은 신진예술가의 배출과 양성이라는 과제에 대해 - 양적인 측면이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내어야 하는 - 즉시 응답해야 한다. 아무리 한국예총의 정강政綱이 회원의 권익 보호에 있다 하더라도 문화예술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청을 무시할 수는 없다. 2030으로 대변되는 청년 예술가들에게 예총의 필요성과 예총에 소속되므로서 얻어질 수 있는 이익을 납득시킬 수 없다면 그들은 굳이 예총의 일원으로 남아있을 의미를 찾지 못할 것이다. 한 집단의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추세라 할지라도 신진예술가의 영입은 향후 예총의 역량 강화에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이에 덧붙여 예술정책을 입안하고 기획하며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문화행정 전문가 양성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한국예총과 대립하거나 경쟁하는 타 단체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문화행정 담당자들을 전문직화 하는 연수를 시행하고 있다. 몇 년 전 한국예총에서도 행정 연수를 시행한 바 있으나 행정 연수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납득시키는데 실패하므로서 지속되지 못한 바 있다. 어느 분야이든 오늘의 양상은 전문화와 특수화가 기본이다. 선거에 의해 수장을 뽑는 방식을 바꿀 수는 없으나 사무국의 행정요원들을 전문직화 하는 방안은 앞으로 한국예총의 지반을 튼튼히 하는 관건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 지역예술활동의 역할과 과제나호열,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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