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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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와 시집에 대한 평론

가을을 지나는 법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10. 30. 23:27

가을을 지나는 법

 

가을은 느린 호흡으로

멀리서 걸어오는 도보여행자

 

점자를 더듬듯

손길이 닿는 곳마다

오래 마음 물들이다가

투우욱 떨어지는 눈물같이

곁을 스치며 지나간다

 

망설이며 기다렸던 해후의

목 매인 짧은 문장은

그새 잊어버리고

내 몸에 던져진 자음 몇 개를

또 어디에 숨겨야 하나

 

야윈 외투 같은 그림자를 앞세우고

길 없는 길을 걸어가는

가을

도보여행자

 

이제 남은 것은

채 한 토막이 남지 않은

생의 촛불

바람이라는 모음

 

맑다

지난 여름 7월 18일, 고 이재호 시인 추모 5주기 회합이 우동가게에서 있었다. 그것이 발단이 되어 지나 10일, 시인이 가르치던 후학들로 구성된 <뉘들동인>과 시인 화가들의 전시모임인 <차차동인회>, 시인이 속했던 <충주문인협회>가 모여 시인의 시문학비를 세우기로 했다. 시에 대한 열정을 3인 시집으로 출간했다는 나호열 시인이 서울에서, 최준 시인이 증평에서, 절친한 문우로서 서로 시백으로 청했다는 오만환 시인이 진천에서 달려왔다. 추진위를 맡은 임연규 시인과 열 명 안팍의 문인들이 회의를 하여, 시비 세울 자리와 시비에 담길 시를 정했다. 그런 인연들과, “느린 호흡으로, 멀리서 오는 도보 여행자” 가을이 만났다. 머리가 희어진 나이에 서로가 “망설이며 기다렸던 해후의 / 목맨 짧은 문장은 / 그새 잊어버리고” 서로가 “ 내 몸에 던져진 자음 몇 개를 / 또 어디에 숨겨야 하나” 망설이는 동안에도, “야윈 외투 같은 그림자를 앞세우고” 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가고 있는 가을이다. 생전에 맑은 시심을 베풀던 고인을 생각하는 이들 때문에, 2017년 추심 秋心, 그 “바람이란 모음이 맑다.”

*2017년 10월 20일(금) 충주신문, 박상옥 (충주문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