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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한 초월자의 모습으로 서서 축적된 허무를 노래하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9. 26. 11:08

허무한 초월자의 모습으로 서서 축적된 허무를 노래하다

유희주 (시인․ 소설가)

가끔은 가장 빛나는 나이에 듣던 음악으로 돌아가 본다. 공중에 발을 띄워 놓고 걸어도 무방한 때였으니 그 때의 정열은 땅 위에 있지 않고 공중을 떠돌았다. 서서히 땅에 붙들리고 땅 속에 땀과 사랑과 상념 그리고 빛나던 시절에 듣던 음악을 함께 묻고 우리 모두는 저 먼 곳 “노을을 가득 지고 가는 생이 된다—소실점 속으로 아득히” (꽃짐). 그 때의 음악을 틀어 놓으면 젊은 감정들의 그림자들이 우루루 몰려나온다. 가끔 돌아가 본들 안 될 것은 없다. 자주 돌아가도 안 될 것은 없다. 그러나 나호열 시인은 그곳에 상주하고자 한다. 맨 처음 시가 발현하던 그 감정의 지표에서 오롯이 서서 소실점을 향하고 있다. 그 지표는 시간에서 벗어난 곳, 그 지표는 이념에서 벗어난 곳, 그 지표는 냉철한 판단에서 벗어 난 곳이다. 한 지표에 가만히 서서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듣으며 그 말의 기록자로 남는다.

 

허무한 초월자의 모습으로 서서 축적된 허무를 노래한다. 허무가 황사 바람처럼 시집 속에 가득 채워져 있다.

 

[거문고의 노래 1]

백년 후면 넉넉하게 사막에 닿겠다.

망각보다 는게 당도한 세월이

수축과 팽창을 거듭한 끝에

빅뱅 이전으로 돌아간 심장을 애도하는 동안

수화로 들어야 하는 노래가 있다.

떨쳐내지 못하는 전생의 피

증발되지 않는 살의 향기로

꽃핀 악보

사막이란 말은 그렇게 태어났던 것이다.

 

 

(중략)

 

 

짧은 생은 촘촘한 기억의 나이테로 현을 묶고 백년쯤 지난

발자국으로 술대를 젓는 늦가을을 기다리는가

 

(중략)

 

수화로 그 노래를 들을 수 있을 뿐

 

나호열 시인은 그 지표를 벗어나 얼마나 오래 먼 곳을 달렸을 것인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시를 쓴 이래 단 한 번도 그 지표를 벗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시가 발현 되는 그 지점,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사라지는 그 관념의 부우연 덩어리를 우리는 어쩌면 슬픔이라 말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는 그 덩어리를 품고 있다가 그 자신이 슬픔이 되었을 것이라는 것을 시로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다. 그곳에 서서 끝내 사랑을 버리지 않고 아름다움을 배우는 자로 남았다.

 

[돌아오지 않는 것들]

 

마냥 서 있을 뿐인데

누구를 기다리느냐고 묻는다.

상행은 어제로 뻗어 있고

하행은 내일로 열려져 있는데

(중략)

 

굳은을 구둔으로 읽는

정지해버린 추억을 읽는

영혼이 잠시 머물다 가는 곳

어떤 약속도 이루어질 수 없어

아름다움을 배우는 곳

 

그 한 지점에 서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그의 시가 발현되는 그 지표에서 오래도록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무엇을 하거나, 그 무엇이 오거나 사실은 별로 의미없다. 그는 그 곳에서 오동나무로 서 있다가 거문고가 되어 시를 읽는 누군가가 그 현을 건드렸을 때의 울림만 있으면 되는 모양새로 웃고 있다. 절망이 너무 깊으면 다시 솟아오늘 에너지로 뜨겁게 읽히듯 허무가 깊으면 그 허무에서는 빛이 난다. “거문고의 노래2”를 읽다가 숨이 멎는듯 했다. –당신이라는 사람이 있다면- 이 가정은 없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는 이미 없다고 단정지어 놓고 시를 쓰고 있다. 그 무엇이 사상이든, 사랑이든 상관없이 그는 그저 그 모든 감정의 울림만을 시로 남겨 놓는다.

 

[거문고의 노래 2]

 

당신이라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든 찾아가서 울 밖에 서 있겠네

내밀한 그 마음이 궁금하여

키를 세우고 또 세우고

당신이라는 사람이 열하고도 여덟이다 아홉이 되었을 때

나는 인생을 다 살아버려

당신이라는 사람을 안을 수가 없었네.

 

(중략)

 

누구는 산이 울었다 하고

누구는 강이 흘러가다 걸음을 멈추었다 하였네

 

누군들 열망이 없겠나. 시인은 처음부터 생의 허무한 초월자가 아니었다. 난 그가 원했던 붉은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항복하므로 행복한 이 생의 도덕군자로 너무 일찍 돌아선 것, 아니면 처음부터 붉은 행복은 그의 것이 아니었던 것으로 상정해 놓고 시를 쓴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하므로 허무, 그러하므로 행복, 이제와서 사실은 없는 붉은 행복을 찾으라 말할 수는 없다. 그가 과정이 없이 한 가지 지표에 머물렀었는지도 알 수 없다. 나호열 시인의 시집을 다 읽어보지 않은 이상 삶의 궤적, 시의 궤적은 접어두고 현재 서 있는 지표만 읽기로 한다.

 

-가끔 나는 행복을 항복으로 쓴다 (중략) 나는 행복하게 항복하고/항복하니 행복하다- [행복과 항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