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내 시와 시집에 대한 평론

부재의 탄주와 타자의 울음소리/ 이현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12. 5. 10:54

수평선에 대한 생각

 

그리워서 멀다

외로워서 멀다

눈길이 먼저 달려가도 닿을 수 없는 너를 향하여

나는 생각한다

 

 

목을 매달까

저 아슬한 줄 위에 서서 한바탕 뛰어볼까

이도저도 말고 훌쩍 넘어가 버릴까

 

 

매일이라는 절벽을 힘들게 끌어당기며

나는 다시 생각한다

 

 

아직도 내게는 수평선이 있다!

 

 

부재의 탄주와 타자의 울음소리

 

이현서

 

인간은 불완전한 세계에 홀로 던져진 존재로 세계와의 갈등과 불화 속에 살고 있다. 그러한 세계와 대립과 화해를 거듭하면서 삶은 연속되는 것이다. 그래서 삶은 늘 불안하고 불확실하며 허무와 고통이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존재방식인 삶은 매혹적인 것이다. 매혹적인 것은 항상 욕망을 동반하고 욕망은 늘 금기를 동반한다.

 

나호열 시인의 열여섯 번째 시집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에서는 몰락과 소멸의 이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많은 시편들이 쓸쓸함과 외로움의 정서를 담고 있으며 삶에 대한 성찰과 진한 페이소스를 느끼게 해주고 있다.

 

한 편의 시가 감동으로 다가오는 순간은 어느 때일까? 그것은 시적 상상력과 오브제가 주는 매혹과 탄탄한 시적 구성력을 갖추었을 때만 가능할 것이다. 나호열 시인의 시집에서 그러한 한 편의 시 수평선에 대한 생각을 소개한다.

 

수평선은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이룬 경계선이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곳, 다가가면 멀어지는 그곳에 닿거나 가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끝내 이르지 못하는 아득한 곳이다. 하지만 우리는 늘 수평선을 동경하고 그리워한다. 시인은 수평선을 그리워하지만 어찌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이 수평선뿐일까? 닿을 수도 없는 너를 향하여 멀리 있는 너를 위하여 시인은 수평선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너는 그리움의 대상이고, 이루지 못한 꿈이고, 숙명처럼 안고 가야 할 시인의 분신인 시일 수도 있으며 언제가 닿아야 할 미지의 세계일수도 있다. 시인은 자신이 만든 시의 공간에서 부재의 슬픔과 미지의 타자를 노래한다. 시인이 내면의 감정으로 타자의 무늬를 풀어놓는 무정형의 공간에서는 타자의 울음소리와 외로운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따라서 시적 화자에게 닥친 현실은 어둡기만 하다. 천길 벼랑처럼 불안과 공포가 엄습한다. 매혹적인 얼굴로 끊임없이 유혹한다. 그래서 시인은 유혹에 흔들리기도 하지만 끝내 미지의 타자와 자신의 사이에서 자아의 존재론적인 변용을 꿈꾸기를 희망한다. 시 「수평선에 대한 생각」에서의 수평선, 저 아슬아슬한 줄 위에서 우리 인간들은 오늘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슬아슬한 줄과 절벽에서 바둥거리는 모습이, 어쩌면 우리 삶의 총체저인 모습이 아닐까? 더구나 물의 이미지는 정화, 투영, 나르시즘 narcissism 이다. 그러한 물이 만든 수평선에 자신의 삶을 투명하며 화자는 기꺼이 가슴에 품는다. 또한 수평선이라는 절벽의 큰 장애물 앞에서도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부재의 슬픔과 고독, 고통과 절망을 노래하는 자기 고백을 담담이 풀어내고 있다. 바슐라르는 인간에게 있어 일체의 인간적인 것은 로고스 logos (말)이라고 한다. 말 즉 대화는 욕망과 선과 악의 이중성을 가진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시인은 그러한 로고스를 통하여 끊임없이 타자에게 말을 거는 존재이다. 자기인식과 성찰로 나아가는 시인의 시편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로 이어자고 있다.

 

- 「시집 속의 시 읽기」,계간 『미네르바 』2017년 겨울호수평선에 대한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