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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 생각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6. 4. 22:53

 

     
 
 

문학상 생각



 

이명원

문학평론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한 시인의 5·18 문학상 수상 사양 이후 논란이 더욱 거세지는 양상이다. 불똥이 친일문학상 문제로 튀어 시인이 받은 ‘미당문학상’을 둘러싸고도 문인들 사이에 여러 논전이 오가고 있는 실정이다. 생각해볼 문제인 건 분명해 보인다.


나는 이 시인이 5·18 문학상 수상을 사양한 것은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첫째, 수상작으로 거론된 작품에서의 “돼지” 은유가 시 자체로서는 나무랄 데가 없지만, 현실의 맥락과 뒤섞인 여러 간섭효과 때문에 흔쾌하게 수용되기는 어려웠다고 본다. 어느 교육부 관료가 영화 <내부자들>의 대사를 빌려 “민중은 개돼지다”라고 극언을 했던 기억이 여전히 선명한 상황에서, 구제역 탓에 살처분당하는 돼지의 비참을 그린 이 시가 수용의 지평에서 의도치 않은 오독으로 귀결될 수도 있었다고 본다.


둘째, 5·18과 전두환, 그리고 미당 서정주의 관계 때문이다. 5·18광주민중항쟁 추모일 직전에 전두환은 3권짜리 자서전을 출간했다. 이 어처구니없는 저작에서 그는 5·18 당시 행해진 광주시민들에 대한 학살과 자신은 무관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물론 그것은 명백한 거짓이다. 미당은 생전에 그런 전두환의 생일을 맞아 낯뜨거운 송덕시를 바쳤던 시인이다. 5·18과 전두환은 화해 불가능한 관계이며, 그런 전두환을 뻔뻔스럽게 미화했던 미당 서정주와 5·18도 화해 불가능하다. 5·18 문학상의 심사위원들은 아마도 이런 점을 의식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한편, 이른바 ‘친일문학상’을 둘러싼 논란은 상당히 오랜 기간 한국 문단에서 논의되어온 의제임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독립된 주권국가에서 과거 식민주의 종주국에 적극 협력하고, 동포들을 파시즘적 담론을 통해 사지로 몰아넣었던 문인들을 기리는 문학상을 시행한다는 것은 사실 우스꽝스런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기념’할 대상이 아니라 ‘기억’할 대상이다. 물론 만약 조선이 해방되지 않고, 가령 현재의 일본 오키나와현처럼 완전히 일본의 한 지방으로 잔존했다면, 오키나와에서 일류동조론을 외쳤던 학자를 기념하는 ‘이하 후유 학술상’이 매우 명예로운 상으로 인식되는 것 같은 일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오랫동안 논란이 된 ‘미당문학상’이나 ‘동인문학상’, 그리고 ‘팔봉비평상’ 등을 받은 문인들이나 심사위원들을 개인적으로 초점화해 비판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이른바 친일문학상의 온존을 가능케 하는 구조의 완강함을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으로만 환원시킬 위험이 있다. 다시 그렇다고 해서, 이 문학상의 수상을 ‘인간의 불완전성’이나 ‘문인과 문학의 분리’ 등의 관점으로 합리화하는 시각 역시 동의하기 힘들다. 사람과 작품은 스밈과 짜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작품만을 분리해서 문학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분리주의 미학’은 합리화의 방편으로 기능할 뿐이다.


문학상은 인정제도다. 첫째, 그것은 문학적 성취에 대한 동시대 문단은 물론 문학사적 인정 모두를 포함한다. 둘째, 크고 작은 경제적 보상도 뒤따른다. 셋째, 인정을 통한 작가적 긍지와 글쓰기에 대한 추동력을 고양시킨다. 문제는 인정제도의 왜곡이다. 어쩌면 한국문학은 문학상의 최적화된 모델을 아직까지 만들어내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문인들 역시 흔쾌하게 명예로운 문학상을 수상하고 싶을 텐데, 여러 형태의 수렁 앞에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출처 : 한겨레] 2017.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