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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의 ‘그러나’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8. 27. 09:20

 

[이달의 예술 - 문학] 미당의 ‘그러나’

서정주 전집 20권 완간
황현산 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황현산 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은행나무 출판사가 최근 『미당 서정주 전집』 전 20권(사진)을 완간했다. 스무 권이나 되는 그 분량에 놀라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미당(未堂)은 2000년 말 86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여러 장르에 걸쳐 거의 거르는 날이 없이 글을 썼다. 양이 방대하고 좋은 글도 그만큼 많다.
 
전집은 시가 다섯 권이고, 자서전이 두 권이고, 이런저런 산문이 네 권이며, 시론도 있고 희곡도 있고 번역도 있다. 물론 쓰지 않았어야 할 글도 있다. 미당은 어떤 방식으로 서두를 끌어내어 이야기를 엮어도 중간에 ‘그러나’를 넣지 않고는 말하기 어려운 시인이다.
 
미당은 명백하게 친일시를 썼고 광복 이후에도 몇 차례에 걸친 정치적 과오를 저질렀다. 그러나 이 ‘그러나’ 이후의 말은 복잡하고 섬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시 명백한 것은 한국어를 아름답게 일으켜 세운 그의 공로를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미당은 한국어가 말살될 위기에 처했던 1930년대와 40년대에 한국어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고 새로운 깊이를 만들었다.
 
책 '미당 서정주 전집', 서정주 지음.

책 '미당 서정주 전집', 서정주 지음.

 

그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그가 한국 근대시의 기초를 닦았던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고, 그 영향이 우리의 거의 모든 시에 여전히 그리고 깊이 남아 있다는 점도 우리가 위선적이 아니려면 반드시 말해두어야 한다.
 
‘시의 정부’로 불린 미당 서정주(1915~2000). 그의 공과는 한국 문학의 공과와 같다. [중앙포토]

‘시의 정부’로 불린 미당 서정주(1915~2000). 그의 공과는 한국 문학의 공과와 같다. [중앙포토]

 

미당의 문학적 공로와 정치적 행적을 구분하자는 말도 있지만 그 구분은 불가능한 일이다. 비중이 크건 작건 그의 정치는 그의 문학적 영광을 등에 업은 것이어서 그에게서 그 경계가 뚜렷하지 않을뿐더러 자신의 문학을 자신의 정치에 이용한 사람은, 아니 최소한 그렇게 이용당하도록 협조한 사람은 바로 미당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미당을 옹호하기 위해서도, 비판하기 위해서도 그의 전모를 알고 그를 하나로 묶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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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의 정치적 과오는 하나같이 우리의 역사적 비극과 연결돼 있다. 그 접점에서 미당은 옹호되고 비판돼야 한다. 미당의 과오를 그의 문학과 연결시켜 비판하고, 그 결과를 역사적으로 정리하자는 것은 그의 업적을 폄하하자거나, 그의 명예에 먹칠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고뇌의, 혹은 그 비겁함의 짐을 역사의 이름으로 함께 나누어 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근대문학이 그렇듯이 미당은 안타깝게도 흠집 많고 일그러진 진주지만 또한 안타깝게 여전히 빛나는 진주다.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