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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창으로 터지는 꽃망울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4. 2. 16:45

2월의 창으로 터지는 꽃망울

나호열

 

 

 

 

 

2월이 오면 나는 창 하나를 갖는다. 신기루와 같이 멀리서 다가와서는 겨우내내 앓고 있던 시력을 점차 회복하게 하는 창. 그 창은 맑은 하늘처럼 투명하지도 넓지도 않다, 오히려 안개보다 더 희미하고 불가시적이다. 창 앞에 서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아직도 삭막하고 을씨년스럽다. 모든 사물들은 아직도 회색 외투를 입고 있고 모닥불조차 피울 수 없는, 무기질의 얼굴을 하고 있다. 길가의 활엽수들,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 칼날같은 바람이 점령군처럼 지배하는 겨울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우리들을 한없이 깊은 내부로 움츠리게 만들고 무엇에든 더듬거리게 하는 습관에 맛을 들이게 한다.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았으므로 우리의 은유는 깊고 차다. 우리들의 대화는 능동형보다 수동형에 가깝고, 기쁨보다는 슬픔의 빛깔이 더욱 짙다. 그럼에도 2월이면 나는 기꺼이 창 앞에 서기를 바라고 또 2월은 시간과 시간을 가로막는 얇은 막 같은 창 하나로 다가오고 있다.

어김없이 두리번거리며 사선을 외부로 돌린다. 생명 가진 그 어느 것도 뿌리를 내릴 성 싶지 않은 텃밭, 그 너머로 언덕길을 지나 교회당, 양철지붕위의 종탑, 꾸불꾸불한 포장되지 않은 길을 벗어나면 앝으막한 집들, 그 뒤로 둑이 펼쳐져 있고 둑을 가로질러 철교와 또 하나의 다리, 시선은 그곳에서 멈춰 선다. 다리 너머로는 이곳보다 더 경이롭고 큰 세상이 있을테지만 나의 시력은 그 너머를 넘어설 수 없다.

나는 그 다리가 건너가고 싶다. 나는 천천히 초점을 끌어당겨 오던 길을 되돌아본다. 숨결은 가빠지고 해는 재빨리 땅 밑으로 스며든다. 완강한 절망처럼 창에는 성에가 내려앉고 동면을 거부하는 몸짓을 긴 그림자로 흔들리게 하는 겨울의 긴 밤이 다시 찾아온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주위를 낯설게 바라보고 두리번거리며 살아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타인이 되어 좀처럼 서로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겨울을 느끼면서 다시 창을 찾아 서성거리는 반복행위, 언젠가 2월이 끝나고 봄이 오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일까, 서로에게 아무렇지 않게 무심히 벽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영영 창의 의미를 잊어버릴 수 없는 것처럼.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서 비로소 영원을 찾아내듯이 단절된 두텁고, 높다란 벽 한구석에 창 하나를 그려 넣는 삶의 아름다움,

그래서 우리는 긴 겨울의 혹한을 건너뛰고 2월을 견뎌낸다. 끊임없이 창 앞에 서서바깥 세상에 대한 연민으로, 자물쇠 채워진 사물과 사물의 운동 속으로 숨결과 시선을 불어넣는 일을 지속한다. 생명의 경이로움은 이와 같은 끊임없는 숨결 불어넣기 그리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일에서 시작하고 끝난다. 자신을, 타인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일, 아리고 쓰린 삶의 질곡을 잊어가는 일, 배반과 증오, 화해와 사랑의 씨앗은 모두 같은 핵을 가진 똑같은 얼굴을 지닌 생명임을 깨닫기 때문이다.

 

꿈이 깨이면 2월의 창은 눈물로 맑게 조금씩 닦여져 나간다. 투명하게 창을 닦기 위하여 더욱 더 많은 눈물을 필요로 하는 우리들의 삶, 절망을 이겨낸 의지의 눈물, 생명 있음에 감사하는 눈물, 희망의 불씨와 같은 눈물, 눈믈 방울들이 모여 2월의 창을 닦아내고 또 닦아낸다.

 

바라보라!

세상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고 안개와 같은 사물이 비밀의 껍질을 한꺼풀씩 벗어내려고 한다. 텃밭이 본래의 흙빛을 되찾아 가고 앙상했던 언덕에는 힘찬 근육이 붙어가고 인적없던 골목길에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종탑에서는 종이 울리기 시작하고 얕은 집들을 향하여 까마득한 하늘로부터 점 점 새떼가 날아오고 있다.

슬로비디오의 화면처럼 느리게 2월의 창에는 환청과 환각으로 뒤섞인 튼튼한 하나의 상이 모여들고 있다. 천애 절벽으로 가로 막혔던 소외의 시간에 태엽이 힘차게 감기기 시작하고 사람이 다른 사람을 찾아가는 길에도 신리의 핏줄이 서서히, 맑은 피돌기를 기억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2월은 참회와 기다림을 위한 기도회 같은 것인지 모른다. 세상 사는 일에, 주어진 환경 속에 불신감에 지친 심신을 완전한 절망과 완전한 희망으로 혼인시키기 위한 시간.

 

자신에게 소중한 따뜻한 시선, 따뜻한 불씨가 없다면 어떤 세상도 아떤 참다운 세계도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깨달음의 시간, 맑은 시력을 통헤서만 명징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다는 예지의 시간.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길목과는 달리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다리는 경이와 오랜 인내를 통하여 건너가는 오작교와 같은 것 아닐까.

 

이윽고 기도회가 끝나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경쾌하고 단단해 보이는 발걸음처럼 봄은 오고 있다. 긴 동면 끝에 허물을 벗어내듯이, 털갈이를 하듯이 하나의 세상은 전혀 다른 세상 하나를 내보이고 있다.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이 전체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어느 한군데 소홀함이 없이 공평하게 손길로 나눠주고 있다.

꽃망울 하나가 터지고 있다.

2월의 창이, 그리고 내가 환해지고 있다.

 

-『한국가스』』 1989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