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마당
나호열
하늘을 구름이 쓸고 닦는다
한 구름이 지나가면
다른 구름이
아무도 가지 않은
아무도 가지 못한
무량한 하늘마당을쟁기질한다
이윽고 가을 하늘은푸르고 깊어져서
어느 사람은 몇 필씩 끊어내어
가슴 속에 향낭을 만들고
긴 편지를 쓰기도 한다
나는 안다
저 하늘마당에 밤이 오면
고이 뿌린 그 누군가의 눈물이
별로 돋아오르는 것을
한 뜸 두 뜸 모이고 모여
빛나는 화관을 비단 손길로 고이 얹어주는 것을
- 계간 시에 2017년 봄호 발표작
하늘마당은 지상에는 없다. 사람들은 땅에 곡식을 심고, 집을 짓고, 더 많은 땅을 갖기 위해 평생을 몸부림치며 산다. 그래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기도하는 사람은 드물고,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사랑이 무엇인지를 아는 존재일 것이다. 하늘은 텅 비어 있는 듯 하지만 새와 구름과 별과 달과 태양이 오가는 자유의 공간이다. 하늘은 텅 비어 있는 듯 하지만 '텅 빔'이 가득하여 경외의 공간인 것이다. 깊은 산자락에 '하늘마당'이라는 예쁜 카페가 있다. 아주 추운 겨울날 나는 나그네가 되어 넓은 창 밖 너머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왔는지 알 길 없는 흰 구름이 지나가고, 어둠이 깊어갈수록 반짝이는 별들이 모이는 광경을 목격하는 순간, 나는 가슴을 열고 긴 편지를 쓰고 싶었다. 오늘도 나는 無爲의 필체로 하늘마당에 피는 꽃들에 대해 완성되지 않는 긴 편지를 쓰고 있는 중이다.
<2017년 여름 『힐링문학』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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