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섣달에 피어나 하염없이 봄을 기다리는 특별한 꽃 향기
눈을 감아야 더 잘 보이는 꽃을 찾아 나섰습니다. 겨울에 피는 꽃, 납매가 그 꽃입니다. ‘눈을 감고 찾아야 한다’고 한 건, 은유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여느 나무의 꽃에 비해 좋은 향기가 무척 강한 탓에 굳이 눈으로 살펴보지 않아도 존재감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꽃이어서입니다. 그 겨울의 꽃, 납매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삼미터를 조금 넘게 자라난 납매가 겨울 새파란 하늘을 향해 뻗은 온 가지에 촘촘히 꽃송이를 돋워냈습니다. 자연히 그의 향기는 나무 관찰자의 후각 뿐 아니라, 잠든 모든 감각을 화들짝 깨웁니다. 매운 바람 뚫고 발맘발맘 꽃 핀 납매에게 다가섭니다.
납매 Chimonanthus praecox (L.) Link 에 쓰인 조금 어려운 한자인 섣달 납臘 자는 섣달인 십이월에 꽃이 피는 나무라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매실나무를 뜻하는 매梅 자를 쓴 것은 매실나무를 닮았다는 뜻이지만, 매실나무와 별다른 관계가 없습니다. 매실나무가 장미과의 잎떨어지는 넓은잎나무인 것과 달리, 납매는 받침꽃과의 낙엽성 넓은잎나무이거든요. 장미과와 받침꽃과라는 근본에서부터의 차이가 있는 식물이지요. 그의 고향인 중국에서 한겨울에 이 나무의 꽃을 본 옛 사람들이 겨울에 피는 꽃 가운데 매실나무의 매화를 떠올리고, 그리 이름을 붙이지 않았나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름처럼 납매는 섣달에 꽃망울을 터뜨립니다. 대개 섣달이라 하면, 음력 십이월을 떠올리게 되는데, 납매는 양력 십이월에 꽃을 피웁니다. 나뭇가지 위에 대략 일센티미터가 조금 넘는 길쭉한 노란 색의 꽃잎이 피어나고, 꽃 송이의 안쪽에는 짙은 자주색의 속잎이 있지요. 대개의 꽃송이는 아래 쪽을 향해 피어나는데 활짝 피어도 온전히 펼쳐지지 않고, 약간 오므라든 채, 혹은 축 늘어진 채입니다. 얼핏 보면 수줍어 하는 듯한 모습이거나 추위에 움츠린 듯한 모습입니다. 생김새만으로는 아름다운 꽃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원색을 잃은 겨울 숲에서 눈에 들어오는 꽃이라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또 거개의 꽃잎에 올라온 노란 색도 채도가 낮아서 그리 화려하지도 않은 편입니다.
‘겨울에 피는 꽃’이라는 말의 어감이 색다른 때문이기도 하지만, 납매는 사실 한번 보면 오래도록 잊지 못할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향기입니다. 하기야 향기 좋은 꽃을 피우는 나무가 많이 있지만, 납매 꽃의 향기는 여느 꽃 향기 못지 않게 강하고 좋습니다. 어쩌면 꽃이나 향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계절에 감지하게 되는 꽃향기인 때문 아닌가 생각하게도 되겠지요. 하지만 다른 계절에 피어나는 여느 꽃들의 향기와 비교해서도 그렇게 이야기할 만큼 강렬한 향기인 게 틀림없습니다. 오늘 《나무편지》의 맨 앞에 눈을 감아야 더 잘 보인다고 쓴 건 그래서입니다. 시각보다는 후각으로 인지하게 되는 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굳이 다른 향기에 비교하자면 파인애플이라든가 바닐라 향기와 같은 달콤한 향기가 납매 꽃의 향기입니다. 이 향기는 납매가 겨울에 꽃 피운 목적을 이루려는 생존전략의 결과입니다. 꽃은 분명 자손을 번식시키기 위한 첫 번째 과정입니다. 꽃을 피웠다면 나무는 그 안에 든 암술머리에 수술의 꽃가루를 연결시키는 꽃가루받이를 이뤄야 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옮겨다닐 수 없는 나무는 꽃가루받이를 다른 생물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습니다. 벌이나 나비와 같은 매개곤충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 계절에는 이렇다 할 매개곤충이 많지 않습니다. 납매는 이 혹독한 환경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꽃가루받이를 이뤄야 합니다. 누군가를 불러들이기 위해 납매가 선택한 건 바로 향기였습니다.
추위가 더 강해질수록 향기가 더 짙어질 수밖에요. 그게 끝이 아닙니다. 향기가 강한 건 첫 단계입니다. 다음 단계로 납매는 오래 버텨야 합니다. 향기가 멀리 퍼져나가도록 좋고 강한 향기를 뿜어내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개곤충이 곧바로 찾아오는 건 아닙니다. 워낙 곤충의 수가 적은 겨울이니까요. 그래서 납매는 강한 향기를 갖고 오랜 시간 동안 추위에도 얼지 않고 혼인할 수 있는 날을 시들지 말고 싱그러운 상태로 곤충을 기다려야 합니다. 십이월에 피어나기 시작한 꽃은 그래서 이듬해 이월 정도까지 무려 백일 정도 꽃을 달고 있어야 합니다. 소박한 겉모습 안에 감춘 눈에 띄지 않는 강인함이 신비롭습니다.
엄혹한 상황에 노출될수록 스스로를 더 강인하게 단련시켜나가야 하는 나무살이의 신비입니다. 겨울에 꽃 피우는 나무가 납매 뿐은 아닌데요, 역시 샛노란 빛깔로 피어나는 또 다른 나무에는 납매와 전혀 다른 생존전략이 담겨있습니다. 어쩌면 더 신비롭고 애처로울 수 있는 그 나무의 이야기는 다음 《나무편지》에서 전해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어려울수록 더 아름다워지고 더 강해지는 나무와 더불어 1월 16일 아침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