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폐사지 한켠에서 수천의 봄을 맞이한 나무의 새 봄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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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중에 《나무편지》를 한번 더 띄우며 피곤하게 해 드렸습니다. 다른 원고 작업에 밀려 시간을 재우치는 중이었지만, 돌보는 이 없이 홀로 겨울 바람 맞으며 서 있는 오래 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참 서럽고 그리워서 그랬습니다. 큰 몸 안쪽에 쌓인 시간의 자취를 허공에 모두 날려버린 채 텅 빈 몸통으로 비워내면서까지 폐허로 남은 옛 절터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늙은 느티나무 말입니다. 나무가 눈에 어려 떠나지 않았습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쉬지 않고 보내오는 나무의 울림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기억에서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장한 나무, 원주 법천사지 느티나무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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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자취가 대부분 사라진 또 하나의 절터로 원주 부론면에 거돈사지가 있습니다. 거돈사지는 예의 법천사지에 비하면 그나마 좀더 많은 절집의 오랜 흔적이 남아있는 편입니다. 폐허만 남은 절터라고 하기보다는 이러저러한 옛 자취들을 확인할 수 있는 절터이지요. 거돈사라는 절 역시 법천사와 마찬가지로 한창 때에는 무척 큰 절이었습니다. 절집의 흔적으로 남은 돌담이라든가 몇 기의 탑, 그리고 그 넓은 터만 보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절터만 약 2만5천 제곱미터, 옛 단위로는 대략 7천5백 평 정도 되는 큰 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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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돈사居頓寺는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 사이에 세워진 절입니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절집의 형식이라든가 가람 배치 방식 등으로 시기를 짐작한 겁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고 하지만, 역시 정확한 기록은 없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에 〈거돈사는 현계산에 있는데, 고려의 최충이 지은 승묘탑비가 있다 (居頓寺在玄溪山有 高麗崔沖所撰僧勝妙碑)〉라는 기록이 있으니, 이 글이 쓰여진 조선 중기까지는 존재했던 절집 아닌가 싶고, 절집이 무너앉게 된 사건으로 임진왜란을 생각하게 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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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돈사지에 남아있는 사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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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하게 짚어볼 수 있는 옛 사람의 자취 한켠에 매우 큰 느티나무 한 그루가 살아 있습니다. 강원도 원주시 보호수 제9호로 지정된 이 느티나무는 높이 20미터, 둘레 7.2미터의 큰 나무입니다. 보호수 지정 기록을 그대로 따르면 나무의 수령은 무려 1,000년이나 됩니다. 절터의 가장자리인 석축에 매달린 듯 위태롭지만 근사하게 서 있는 느티나무입니다. 뿌리 부분에서부터 줄기가 둘로 나뉘어 있어서 나무의 둘레는 사람 가슴 높이가 아니라, 뿌리 부분의 둘레를 측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의 《나무편지》에 담은 사진들이 그 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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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자리가 위태롭기는 하지만, 나무의 생육 상태는 나이에 비해 그리 나쁘다고 할 수 없는 편입니다. 석축 바깥쪽으로 뻗었던 굵은 가지가 잘린 흔적이 있고, 확인할 수는 없지만 적지 않은 가지가 쇠잔해 스러진 듯 전체적으로 허전한 느낌이기는 합니다만, 지난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렸던 법천사지 느티나무에 비하면 훨씬 건강합니다. 원주시에서 측량한 1천 년의 수령이 믿어지기 힘들 만큼입니다. 돌담 아래 쪽으로 조금 떨어진 자리에 서 있는 또 하나의 젊은 느티나무의 풍요에 비할 수는 없지만 늙은 나무만 보여줄 수 있는 세월의 켜가 듬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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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천사지에서도 그랬듯이 늙은 느티나무가 없다면 이 폐사지는 얼마나 쓸쓸할까 돌아봅니다. 다시 또 ‘사람 떠난 자리를 오래도록 홀로 서서 사람의 자취를 지키며 남은 나무’를 생각할 수밖에요. 모든 나무가 그렇듯이 참으로 장하고 고마운 나무입니다. 돌틈에 끼인 채 나무는 지금 이 땅에 봄이 오는 소리를 가만가만 탐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천의 봄, 언제나 그랬듯이 다시 또 이 땅의 모든 생명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땅으로부터 물을 끌어올리고, 안간힘을 다해 새 잎을 돋워서, 햇살을 그러모아 양분을 짓겠지요. 텅빈 가지 한가득 푸른 잎이 무성해질 때 다시 찾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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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지역의 나무 답사는 이어졌습니다. 바로 원주 학곡리라는 오붓한 마을 뒷동산에 우뚝 서 있는 소나무입니다. 넉넉해 보이는 한 살림집의 뒤편 둔덕 가장자리에 서 있는 이 소나무는 원주시 보호수 제69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높이 13미터, 가슴높이 줄기둘레 3.8미터의 큰 소나무입니다. 나이는 3백 살 정도로 추정하는 나무입니다. 오래 전부터 ‘용소나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나무입니다. 아주 옛날에 치악산의 용소라는 못에 아홉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 여덟 마리는 하늘에 오르고 한마리만 남았어요. 그 한 마리의 용이 용소에서 흐르는 물을 따라 이곳까지 내려와서는 바로 이 소나무 줄기를 타고 하늘에 올랐다는 전설을 가진 나무입니다. 땅거미가 뉘엿뉘엿 깔릴 즈음에 찾은 이 소나무는 크기보다는 생김새가 압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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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나무편지》를 마치기 전에 느티나무 한 그루 더 보여드립니다. 한 자리에서 천년을 살아온 것으로 기록된 또 하나의 나무입니다. 바로 위의 나무입니다. 원주시 행구동 마을 어귀의 개울가에 서 있는 느티나무인데, 전체적인 생김새나 생육 상태가 모두 좋습니다. 마을 길이 바짝 붙어 있는 바람에 나무 뿌리 부분에 돌 축대를 쌓아 나무를 보호했는데, 나무가 워낙 장하다 보니, 화단은 비좁아 보입니다. 그래도 나무는 융융하고 생생합니다. 앞에서 보나 뒤에서 보나 혹은 서서 보나 앉아서 바라보나 매우 훌륭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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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최소한 제게는 봄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인 설강화 한 촉을 보여드리며 오늘의 긴 《나무편지》 마치겠습니다. 새하얀 꽃봉오리 드러내며 설강화 한 촉이 봄 소식 전하려 꼬물거립니다. 숲은 그렇게 봄의 교향악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아직 원주 지역을 대표하는 나무인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소식을 전해드리지 못했습니다. 다시 또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네요. 언제나 변함없이 《나무편지》를 아껴주시고 성원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고마움의 인사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 수천의 봄을 언제나 생기있게 맞이하는 폐사지 느티나무와 함께 2월 20일 아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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