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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나무의 몸에는 이미 봄의 기미가 약동하고 있습니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2. 8. 13:12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나무의 몸에는 이미 봄의 기미가 약동하고 있습니다

  지나온 계절의 나무를 돌아보면서, 나무의 겨울채비를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나무의 겨울채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나무가 자신의 몸 안에 들어있는 물을 덜어내는 일입니다. 물이 어는 정도로 기온이 떨어지면 나무의 몸에 든 물도 얼겠지요. 뿌리에서 잎까지 물이 오르내리는 통로인 수관은 얼어 터질 수 있습니다. 수관에 생긴 상처는 때로는 회복 불가능할 수 있고, 그건 결국 나무의 생명에 치명적 영향을 남기게 됩니다. 동해凍害라고 이야기하는 추위의 피해로 나무는 새 봄이 오기 전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무는 가을이면 서둘러 자신의 몸에 남은 물을 덜어내야 합니다. 그 첫 번째 신호가 단풍과 낙엽입니다. 그리고 겨울 바람 불어오면 고요히 겨울잠을 잡니다.

  겨울 지나면서 나무는 봄을 채비해야 합니다. 이 즈음이면 나무는 재우쳐 겨울잠에서 깨어나야 하지요.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나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겨울을 보내온 자신의 몸을 돌아보는 일입니다. 땅 속 깊은 곳에서 잠들었던 뿌리에 생기를 일으켜야 합니다. 아직 찬 바람 맞고 있는 땅 위의 줄기에서 가지까지를 하나 하나 짚어봐야 하겠지요. 온 몸 구석구석까지 물을 끌어올려야 하는 건 그래서입니다. 생명의 기미가 되살아나는 순간입니다. 온전히 겨울을 이겨낸 제 몸의 끝자락에 새 잎을 틔워야 할 차례입니다. 뿌리에서 끌어올리는 물의 양을 늘려야 하지요. 콸콸…… 쿨럭쿨럭……. 나무는 텅 비었던 줄기 속 수관에 물을 채우고 가지 끝으로 힘차게 밀어올립니다. 봄의 뚜렷한 신호입니다.

  입춘 보내며 고로쇠나무가 떠오른 건 그래서입니다. 남도에서 고로쇠나무의 물을 채취하느라 분주해졌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나무가 물을 왕성하게 끌어올린다는 이야기겠지요. 지역마다 시기에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대개 이 시기는 남부지방 대부분의 숲에서 고로쇠나무의 수액을 채취에 한창입니다. 수액을 채취한다는 이야기는 나무가 수액을 줄기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는 이야기이고, 이는 곧 나무가 봄을 채비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이 땅에 봄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지난 주 중반 쯤부터 날씨가 많이 풀렸지만, 아직 사람의 몸은 봄을 체감하기 이르지만, 나무는 벌써 봄마중에 나섰다는 이야기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고로쇠나무 수액은 사람의 몸에 좋다고 합니다. 뼈에 이로운 수액을 주는 나무라고 해서 옛날에 뼈 골骨, 이로울 리利, 나무 수樹를 써서 골리수라고 불리다가 고로쇠나무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오래 전부터 전해오는 전설같은 이야기 역시 고로쇠나무 수액이 뼈에 좋다는 데에서 비롯합니다. 신라 때의 스님 도선국사가 오랫동안 가부좌를 하고 참선을 하다 일어났는데, 무릎을 펼 수 없어 휘청거렸다고 합니다. 이때 바로 옆에 있던 나무를 붙잡고 겨우 일어섰는데, 마침 나무 줄기 껍질에서 물이 흐르기에 그 물을 받아 마셨다고 합니다. 그러자 욱신거리던 무릎이 펴지면서 편안하게 걸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고로쇠나무의 수액은 무기물질을 포함한 영양소를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사람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아예 만병통치약으로 불릴 정도였고, 특히 골다공중에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별다른 약이 많지 않던 시절에는 아마도 골다공증에 효험을 갖는 약으로 고로쇠나무 수액만큼 효과를 가진 게 없었던 게죠. 하지만 요즘이야 워낙 효과 좋은 많은 약들이 있으니, 고로쇠나무 수액이 신약新藥들을 따를 수 없겠지요. 그렇다고 해도 고로쇠나무 수액에 대한 관심은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어떤 가공도 거치지 않은 천연물질이며, 신선한 숲에서 나온 물질이라는 점은 여전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즈음의 고로쇠나무를 이야기할 때마다 나무에 갖게 되는 관심이 그렇게 사람의 관점에서만 이루어진다는 게 조금은 아쉬운 일입니다. 나무의 생김새나 가을단풍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은 젖혀놓고, 나무에서 빼내는 수액이 사람의 몸에 좋다는 데에만 초점을 맞춘 관심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고로쇠나무는 이 즈음 뿐 아니라, 여름에도 가을에도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단풍나무과에 속하는 고로쇠나무는 가을에 단풍 들 때에도 그 넓은 잎이 붉게 물들어 아름다운 가을 풍광의 앞자리에 놓입니다. 그같은 아름다운 생명에 대한 관심을 수액에 대한 관심이 훨씬 앞선다는 게 좀 아쉽다는 말씀입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지만, 나무도 엄연한 생명체임을 떠올리자면 이기적인 관심 아닌가 싶습니다.

  고로쇠나무는 제 몸에 품은 물이 비교적 많은 편에 속합니다. 봄에 물을 한창 끌어올릴 때에는 너무 많은 물을 끌어올리는 통에 줄기 껍질에 저절로 생긴 틈으로 수액을 흘려내리기까지 할 정도이지요. 단풍나무과의 나무들이 대개 그렇습니다. 일테면 북아메리카 지역에서 많이 생산해 활용하는 메이플 시럽이 그것입니다. 당도가 높아서 달착지근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로쇠나무 수액도 달큰한 맛이 있습니다. 그건 단순한 물이 아니라, 나무에게 꼭 필요한 영양소를 포함한 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한발 더 들어가면, 그 물은 나무의 봄 살림에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라는 증거입니다. 그러니까 고로쇠나무 수액은 나무에게 꼭 필요한 영양분, 굳이 사람에 비하자면 피와 같은 요소라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워낙 많은 물을 품은 탓에 일정 량의 물을 받아낸다고 해서 고로쇠나무의 생명에 치명적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양의 수액을 빨아낼 경우에는 나무가 잎을 낸 뒤에도 영양이 부족해 잎이 누렇게 되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고로쇠나무 숲을 관리하는 관리단체에서는 수액 채취의 휴식년제를 도입해서 적당한 때에는 수액 채취를 금하고 있습니다. 농가의 중요한 소득원 가운데 하나인 고로쇠나무 수액 채취를 무조건 나쁘다고 하는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나무는 자신이 가진 것을 이 땅 위의 다른 생명체와 나누며 살아가는 생명체이니까요. 다만 우리의 지나친 욕심으로 나무의 생명까지 해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는, 그게 나무와 더 오래 함께 살 수 있는 길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올리는 말씀입니다.

  오늘 《나무편지》의 사진들은 고로쇠나무 가운데에 울릉도 지역에서 자생하는 우산고로쇠 Acer okamotoanum Nakai 입니다. 우산고로쇠는 최근 내륙에서도 재배가 가능해졌다고 하며, 무기물질의 함유량도 고로쇠나무보다 훨씬 많다고 합니다.

- 사람과 더불어 나무도 더 건강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2월 5일 아침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