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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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시킨 일 2011

제멋대로, 적당하게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4. 1. 19. 12:35

 

제멋대로, 적당하게

 

사방팔방으로 천 개의 팔을 가진 길도

밤이 되면 서서히 봉오리를 오무려

집으로 돌아간다

 

꼬리를 감추는 짐승처럼

잔뜩 어둠을 머금어 팽팽해진 산 속으로

차곡차곡 발자국 소리 쌓여가고

문득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적막한 그대 앞에 섰을 때

그믐으로 가는 달의 웃음이 스며오르고 있었다

 

부드럽고 창백한

흰 빛도 아니고 노오란 빛도 아닌

온 몸을 바위에 으깨며 소리치는 물의 그림자가

화병에 차오르면서

꽃으로 피어나는 것을 보았다

 

쑥부쟁이 달개비꽃 한 송이도

제멋대로

적당하게 파는 법은 없다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말하지 않은 긴 혀와 같은 길은

어제의 그 길이 아니라고

밤새 산은 산통으로 고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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