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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바라보는 매화(梅花)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7. 28. 20:07

 

마음으로 바라보는 매화(梅花)

남도일보 입력: 2012.03.28 00:00

 

 

 

최혁<주필>

 

봄의 속내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산에는 병아리 부리 같은 연록의 새순이 가지마다 가득하다. 따사로운 햇살을 머금은 새순들은 하루가 다르게 부쩍 커 오른다. 신록의 향연이다. 생명의 충만함.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기쁘다.

 

봄기운에 꽃들은 아우성치며 기지개를 펴고 있다. 매화와 산수유는 산과 들을 희고 붉게 물들이고 있다. 찬란의 초입(初入)이다.

 

2주 전 광양 매화마을을 다녀왔다. 마을은 섬진강을 품에 안고 백운산 자락인 쫓비산을 등받이 삼아 자리하고 있다. 마을로 안내해주는 섬진의 물길은 여전히 의연했다. 섬진을 따라 한 시간 정도 굽어지고 쭉 펴진 길을 杆다보니 어느새 청매실 농원이다. 뜨락에는 수백 개의 장독이 봄볕을 맞고 있다. 큰물과 넉넉한 산, 그리고 매화가 지천이니 선경(仙境)이다.

 

꽃망울이 조금 열려있는 홍매화, 백매화, 청매화는 영락없이 웃음보를 참고 있는 어린 소녀들이다. 봄바람의 살랑거림이 가려운 듯, 온몸을 비틀고 있다. 얼마 뒤면 저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벚꽃과 유채꽃, 진달래, 배꽃, 복사꽃, 철쭉이 줄이어 잠을 깰 것이다. 그래서 긴 겨울 뒤 첫 꽃을 피워내는 매화는 인고의 상징이면서 한편으로는 희망의 전령이기도 하다.

 

이런 탓에 많은 이들이 매화를 빌려 인내(忍耐)와 연심(戀心)을 노래했다. 신석초는 매화가 지닌 희망을 매화송(梅花頌)을 통해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풍설(風雪) 잦은 차운 골짜기에 봄은 오는가/ 매화, 네가 아니 핀들/ 오는 춘절(春節)이 오지 않으랴마는// 온갖 잡꽃에 앞서/ 차게 피는 네 뜻을/ 내가 부러 하노라.

 

개인적으로는 나호열의 ‘매화’에 가장 마음이 끌린다.

 

천지에 꽃이 가득하다/젊어서 보이지 않던 꽃들이/이제야 폭죽처럼 눈에 보인다/ 향기가 짙어야 꽃이고/자태가 고와야 꽃이었던/그 시절 지나고/꽃이 아니어도/ 꽃으로 보이는 이 조화는/ 바람 스치는 인연에도/눈물 고이는 세월이 흘러갔음인가/피는 꽃만 꽃인 줄 알았더니/지는 꽃도 꽃이었으니/두 손 공손히 받쳐 들어/당신의 얼굴인 듯/혼자 마음 붉히는 /천지에 꽃이 가득하다

 

한용운과 조지훈, 서정주 등도 연모의 정을 매화를 빌려 표현했다. 가슴에 화인(火印)이 돼 남아있는 사랑을 매화를 빌려 토로했다. 그렇지만 매화를 놓고 마음의 부요함과 사랑의 설레임을 노래한 김용택 시인의 ‘봄날’은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든다.

 

나 찾다가/텃밭에/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섬진강 봄물을 따라/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사람들은 매화에서 고통을 이겨내는 끈기를,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평생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비련을 본다. 한편으로는 제 아무리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희망을 찾는다. 그러나 매화꽃 피어나는 계절과 맞물린 요즈음의 정치계절에는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희망을 잃고 좌절에 빠져있다.

 

그 사람들은 다름 아닌 정당으로부터 공천장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나보다 못한 이에게 공천을 준 이유가 뭐냐며, 내가 더 똑똑한 사람인데 왜 무시했냐며, 외쳐대고 드잡이를 하고 있다. 또 공천장을 받았더라도 어떤 이들은 민심이라는 ‘꽃샘 추위’를 만날지도 모른다. ‘민심바람’은 그들의 염원과는 달리 자신들의 ‘인생의 꽃’을 늦게 피게 할 것이다.

 

그런 정치판 속의 사람들에게 매화 곁에 서 있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시련과 고통을 이겨내고 봄의 웃음 같은 꽃을 피워내는 매화에게서 깨달음과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지만 정치해보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모습이 ‘하루살이’처럼 비춰져서이다. 일희일비(一喜一悲), 감탄고토(甘呑苦吐). 입장을 확 바꾸고 줄 다시서기가 너무 심하다.

 

쉽게 사랑하고 헤어지는 요즘 젊은이들에게도 매화와 같은 사랑을 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스마트폰 문자 대신 시간이 걸리고 성가시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담아 펜으로 편지를 써보았으면 싶다.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폭이 달라질 것이다. 잘생긴 외모는 아니지만 언젠가는 꽃을 피워낼, 내면의 아름다움을 잘 찾아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마음으로 매화를 즐기는 우리가 됐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