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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들의 행복한 반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7. 17. 09:59

루저들의 행복한 반란

[중앙일보] 입력 2012.07.17 01:25 / 수정 2012.07.17 01:36

이원규
시인
요즘 지리산에서 빈집 구하기란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복권 당첨’보다 더 어려울 정도다. 그만큼 많은 도시인들이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귀농·귀촌 바람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마침내 자본주의의 꽃인 도시가 과부하로 ‘불타는 집’인지, 이미 오래전에 바닥을 친 공동화의 농촌이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는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또한 오랫동안 꿈꾸던 이들의 평화로운 전원생활인지, 세계화의 거센 폭풍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루저(loser)들의 반란인지 도피인지, 진정한 행복을 위한 인생지사 대결단인지 무엇 하나 단언할 수가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현상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나라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최하위 수준이라는 것과 자살률 1위라는 참으로 부끄러운 현실과 직결돼 있다는 점이다. 민족과 국가, 정치·경제·사회적 책임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미 국민 개개인의 불행은 갈수록 증폭되고, 그만큼 루저의 길은 거미줄처럼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여파가 지리산까지 깊숙이 미치고 있는 것이다.

 나 또한 이미 15년 전에 박봉우 시인의 ‘서울 하야식’처럼 그럴싸하게 지리산으로 입산한 듯하지만 사실은 그 자체가 이미 스스로 선택한 루저의 길이었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학벌이나 생김새나 키 또한 그랬으니, 돌이켜보면 무한질주 욕망의 기관차에서 내밀려 떨어진 것인지, 스스로 뛰어내린 것인지 분명치 않지만 낙오자는 낙오자였다.

나름대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등의 생태주의 논리와 다양성의 시대를 예감했다지만 당시 그것은 미몽에 가까웠다. 사실은 겨우 ‘자발적 가난’과 ‘타발적(부득불) 가난’의 경계 위로 온몸을 구겨 넣었을 뿐이다. 일단은 안 벌고 안 쓰고 덜 벌고 덜 쓰며 산짐승처럼 살아남는 데 겨우 성공했으니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도시를 벗어나 지리산에서 살고 싶어 하는 이들 대다수는 나같이 경제적, 육체적, 심리적인 루저들이 대부분이다. 암이나 아토피 등으로 몸이 아프거나 자녀들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실직을 당하거나 사업이 망하거나, 자본주의적 조직이나 대인관계에 상처를 받거나 실연을 하거나 이혼을 하는 등 계기는 참으로 많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들에 대처하는 자세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가 아니라 정면에 서서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언젠가 이런 편지를 쓴 적이 있다. “잠시 가던 길을 잃었다고 무어 그리 조급할 게 있는지요. 잃은 길도 길입니다. 살다 보면 눈앞이 캄캄할 때가 있겠지요. 그럴 때는 그저 눈앞이 캄캄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바로 그것이 길이 아니겠는지요.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언제나 너무 일찍 도착했으나 여태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원통할 뿐입니다.”

 인생은 때때로 실패를 실패로 인정할 때 다시 길이 열리는 법이다. 지리산까지 와서도 스스로 루저가 아닌 척하느라 오히려 몸과 마음이 땀을 뻘뻘 흘리다 보니, 사람의 향기보다는 악취가 나는 것이다. 가지 않은 길, 가지 못한 길에 너무 많이 마음을 주면 내내 불행할 뿐이다. 후회도 꼭 필요할 때만 의미를 갖는다. 날마다 후회만 하는 사람은 내일 또 안절부절못하며 후회만 한다. 어느 곳에서든 자신이 주인이며, 그곳이 가장 중요한 곳(隨處作主 立處皆眞)이 아닌가.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는 뜻의 카르페 디엠과 상통하는 길이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루저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공지영의 산문집 『지리산 행복학교』가 널리 회자되고, 최근에 나온 책 『루저의 심리학』이 동시대의 루저로 분류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눈길을 끄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스스로 처한 상황을 인정하면서 당당하게 “그래, 나는 루저다!” 소리치는 순간부터 ‘행복한 반란’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이원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