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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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4. 7. 19:12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

 

최근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행복체감지수가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하위권이라고 한다. 절대빈곤에서 벗어나 예전에 비해 모든 여건이 나아졌음에도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보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 가야한다는 조급함이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루지 못할 욕심에 허덕이게 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와 같은 생각이 우리 모두가 꿈을 갖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꿈은 터무니없이 꾸는 것이 아니라 어둔 바닷길을 비추는 등대와 같이 앞 길이 보이지 않는 현실 저 너머에 있는 안내판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꿈은 길을 찾는 일이지 터무니없는 환상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배고플 때에는 무엇을 먹어도 맛있다. 추위에 떨 때, 종이 한 장을 태워도 따뜻하다. 불행이 길고 많아 행복과 행운은 값어치가 있다. 행복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우리의 뒤에 있다. 모든 것은 우리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아래 글은 2012년 4월 8일자 중앙일보에 게제된 경허와 만공선사의 일화이다.

 

 

#장면1 1886년 5월 충청도 홍성. 1m85㎝가 넘는 큰 키의 스님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바랑을 진 젊은 탁발승이 뒤를 따르며 투덜댔다. “스님, 좀 천천히 가시죠. 다리도 아프고, 짐도 무겁고.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스님은 아랑곳없이 걸었다. “아이고, 스님. 바랑이 무거워서 걷기가 힘듭니다.” 스님이 대답했다. “저기, 마을 우물가에 가면 내가 무겁지 않게 해줄 테니 어여 가자.” 두 사람은 우물가에 도착했다. 시골 아낙네가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걸어왔다. 스님이 말했다. “잠깐, 실례하겠소이다.” 아낙네가 돌아보는 순간, 스님은 여인의 얼굴을 감싸고 입을 맞추었다. “아이고, 이 무슨 망측한 짓이오!” 물동이가 떨어져 박살이 났다. 이걸 본 동네 남정네들이 몽둥이를 들고 달려왔다. 두 사람은 줄행랑을 쳤다. 동네 사람들을 완전히 따돌린 다음에야 둘은 숨을 돌렸다. 젊은 탁발승이 따졌다. “아니, 스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스님이 답했다. “자네, 죽어라 하고 도망칠 때도 짊어진 바랑이 무겁던가?” 일화 속의 주인공이 경허(鏡虛·1849~1912) 선사다. 뒤를 따르던 탁발승은 만공(滿空·1871~1946) 스님이다. ‘바랑이 무겁다는 생각도 자네 마음이 만든다. 다른 곳에 마음을 쓰면 그 생각도 사라진다. 마음이 모든 걸 짓고, 모든 걸 부순다’는 설법을 경허 선사는 직접 행동으로 한 것이다.

 

 

 

#장면2 산문 밖에서 볼일을 보고 들어오던 경허 선사는 한 여인을 데리고 왔다. 그리고 방으로 함께 들어갔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제자들은 밥상만 안으로 들였다. 경허 선사는 그 여인을 자신의 방에서 먹이고, 씻기고, 재웠다. 절에는 난리가 났다. “조실 스님이 여인을 데리고 잔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제자들은 안절부절못했다. 몽둥이를 들고서 “저따위가 조실이냐”며 쫓아내려는 이들도 있었다. 사흘 후 그 여인이 방을 나섰다. 제자들이 쫓아가 봤더니 몸에서 고름이 뚝뚝 떨어지는 한센병 환자였다. 헐벗고, 굶주리고, 세상에서 손가락질 당하던 그 여인을 경허 선사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돌봤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