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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선거인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0. 12. 28. 18:50

누구를 위한 선거인가?

 

 

  심심치 않게 전화를 받는다. 문자메시지가 불청객처럼 다가오고 우편으로 책도 달려온다. 선거철인 것이다. 그것도 글 쓰는 사람들, 즉 문인들의 수장을 뽑는 선거가 코 앞에 닥친 모양이다.

 

 

  선거는 민주사회를 상징하는 대의제도 중의 하나이다. 직접 참여할 수 없는 까닭에, 나의 이익과 주장을 대변할 수 있는 대리자를 뽑는 것이다. 선거는 다수결이 큰 원칙이다. 대부분 한 표라도 더 얻는 사람이 수장이 되는 것이다. 수장 首長이란 누구인가? 머슴인가? 아니면 통치자인가? 누구든 "너희들 위에 군림하겠어!"라고 하지는 않는다 "여러분들의 의사를 받들어 머슴노릇을 하겠습니다!" 가 정답이다. 그러나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일단 당선이 되고 나면 안면을 바꾸는 것이 다반사이다.

 

 

  우리 문단도 참 많이 변했다. 우선 문단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일 년에 책 한권을 읽지 않는 나라에서 문인들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자식들에게 글쟁이가 되라고 권유하는 부모들을 보지 못했다. 가난하고, 힘들고 외로운 길이기 때문이다. 좀 과장되게 말해서 1000명 중의 하나 정도가 세인의 주목을 받고 이름을 낼 수 있는 험난한 길을 권유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사람들이 늦깍이의 이름표를 달고 문단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늦깎이면 어떤가? 물질이 정신의 가치를 내팽겨치는 세상에서 서정과 비판의 비수를 자신의 가슴에 겨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정말 그럴까? 이 질문에 선뜻 대답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뒤늦게 문단에 얼굴을 내민 사람들 중에도 청년의 기개와 참신함,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도 간혹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주변엔 신변잡기나 상식화된 음풍농월에 우월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소도 蘇塗가 사라진데 있다. 입법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만든 법을 믿지 않고 다수결의 원칙에 동의했으면서도 소수의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문제이다.

 

  예술가의 모임이라면 구질구질한 전략이나 공약 空約을 남발하는 정치인들과는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수장을 추대로 모시는 일이 되겠지만 이미 그것은 물 건너간 얘기이다. 수 천 명, 수 만 명이 되는 그 각양각색의 목소리를 어떻게 하나로 모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공약이라도 제대로 한 번 만들어 보자. 문인들의 수입이 형편 없으니 기금을 만들고 법으로 제도화 하자고? 끼리끼리 권력을 만드는 세력들을 혁파하자고? 정말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예술가의 위의 威儀는 세속적 풍요와 명예를 정중하게 거절할 수 있는 용기에 있다. 풍요와 명예는 뜻밖에 찾아온 행운이라고 생각할 때 예술가의 명성은 저절로 높아진다. 아무도 가지 않은 세계를 열망하며, 그 세계를 만인에게 기쁘게 보여주고자 열망하는 자가 예술가가가 아니겠는가?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려면, 먼저 그들에게 강열한 몸짓을 보여주어야 할 책무가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대저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은 세속사에 관심이 없다. 아마도 충분한 물질적 충족감을 느끼거나, 자기 정련하기에도 시간이 아깝거나 - 예술의 본질이 혼자 놀기 아닌가? - 어느 시대에도 문인이 떵떵거리며 사는 태평성대는 없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정말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으로 머슴이 되겠다면 자신의 재산을 공개하고 적빈 赤貧이 되어 머슴노릇 제대로 한 번 해보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사람이 없을까 하고....

 

 

  문인 대접을 제대로 받으려면 정치인들의 행태와 다르고, 이익을 좇을 수 밖에 없는 약삭빠름을 경계하고, 묵묵히 험로를 걸어가는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에 앞서서 대중들의 가슴과 눈물 주머니와 혼을 송두리째 뽑아낼 수 있는 명작을 만들어야 하는 소명을 저버리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그 때 대중들은 자신들과 다른 이상한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경계하다가 머리를 숙이게 되고 결국은 그들보다 고상한 인격을 갖추고 그 고상한 인격을 수련하기 위해 일생을 바치는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게 되지 않을까?

 

 

  다,.. 부질없는 나의 일장춘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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