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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지역 예술활동의 역할과 과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1. 15. 13:19

지역 예술활동의 역할과 과제

 

나호열(한국예총 정책연구위원장)

1. 예술활동의 외적 환경

 

문화체육관광부의 ‘2009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성인 독서량은 연 평균 10.9권 (월 평균 0.9권)독서 시간은 하루 평균 8 분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2010년 한국인의 주당 독서 시간은 인도인의 30%도 채 안되는 3.1 시간에 불과합니다. 세계 30개국 13세 이상 3만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한 결과라는데, 30개국 가운데 한국이 가장 낮은 30위를 기록했습니다. 1년 내내 책을 단 한 권도 안 읽는 성인이 10명 가운데 3명이나 된다고 합니다.(『정경뉴스』, 2010년 10월 15일자)

 

위의 인용문은 서울 동숭동 소재(대학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타 지역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가 【예술가의 집】으로 탈바꿈하면서 2010년 12월 9일 【예술가의 집 】3층 다목적홀에서 개관기념 대토론회 기조발제자 김주영 소설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가 발표한 글 중의 일부분이다. 발제의 제목은 「품격 높은 문화국가 구현을 위한 문화예술의 가능성과 역할」이었는데, 오늘날의 문화와 예술의 지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이었다고 기억한다. 필자 또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민간주도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바뀌면서 지역문화소위원회의 위원으로 3년 동안 활동하였던 까닭에 【예술가의 집】 개관기념 대토론회는 한국예총의 정책 방향을 짚어볼 수 있는 의미 깊은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위의 인용문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독서 실태에 국한된 조사를 바탕으로 한 일면이지만 그 일면을 통해서 우리의 문화 향수의 양상과 그에 따른 예술 활동의 지형을 유추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국민 소득 2만 3천 달러(2010 추정치)를 웃도는 경제적 풍요 속에서 빈약한 문화 활동과 예술 향유를 외면하는 세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처방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물질 획득을 욕망하고 성취하는데 열중한 나머지 무형의 정신적 가치를 도외시하는 것이 꼭 우리나라에만 국한되는 사례라고 볼 수 없을 뿐더러 경제적 풍요가 극소수의 選民에 비치는 햇빛이고 다수의 상대적 빈곤층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차가운 햇빛인 상황에서 국민적 성향이나 의식으로 몰아세우는 것도 타당하지 않아 보인다. 이런 문화 향수의 빈곤 양상은 복합적이고 쾌도난마할 수 없는 난제라고 숙명처럼 슬그머니 옆으로 밀어두는 것이 오히려 편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아무리 문화의 중심에 예술이 있다고 -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출범할 때의 슬로건이었다 - 해도 예술을 향수하기 위한 선행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고, 그런 까닭에 다수의 대중들이 예술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않을 뿐 만 아니라 예술 작품이나 현장에 접근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예술의 대중화는 요원한 신기루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자, 타칭 예술가는 계속 태어나고 있고 수요보다 공급이 넘쳐나는 상황이 계속되는 까닭에 예술가는 원활한 지원 정책과 대중들의 호응이라는 희망을 힘겹게 잡고 있고, 예술가를 지원하고 활동을 고무시켜야 할 관료들이나 정치인들은 그들만의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대중들의 기호에 발 맞춰야 하는 꼬리를 물고 있고- 극히 일부분에 해당되리라고 믿고 있지만 - 대중들은 예술에 대한 그들의 외면을 어렵고 따분한 예술가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이상한 현상에 고착되어 있는 것이다.

 

만일, 창작에 필요한 물적 자원이 충분히 공급될 수 있다면, 풍족한 지원을 받은 예술가는 왕성한 창작품을 쏟아낼 수 있을까?, 다수의 대중들이 경제적 풍요로 말미암은 시간적 여유를 누릴 수 있다면 밥 대신 예술을 먹고 마실 수 있을까? 필자는 거칠게 말해서 ‘돈’이 문화와 예술의 빈곤 현상을 해결하는 첩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풍부한 예산은 문화입국의 충분조건일 뿐이지 필요조건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품격 높은 문화국가 구현을 위한 문화예술의 가능성과 역할」을 설명하면서 김주영이 제기한 문제는 의미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즉, 대중들의 예술 향수의 기회를 확대하고 나아가서 문화의 빈곤을 해소하기 위한 키워드는 ‘소통’이라는 점을 기억하는 일인 것이다. 소통이란 무엇인가? 이해의 당사자들이 일방적이지 않고 他者의 의견과 입장을 이해하고 헤아리는 작업을 말한다. 그래서 예술가와 일반 대중의 소통, 예술가와 정책의 소통이 우리의 논의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된다는 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대중들과 만나야 한다는 것, 작품이 전제되어야 독자(청중, 관람자)가 소통할 수 있는 것이고, 작가의 진정성이 담긴 작품이 대중을 감동시킬 때만, 그 소통도 의미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가와 정책의 소통은 무엇을 말하는가? 실제로 예술가(창작자나 창작 행정 단체)들의 불만은 정책을 시행하는 주체들의 경직되고 예술현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행정의 고루함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품격 높은 문화국가 구현을 위한 문화예술의 가능성과 역할」에서 제안한 아래와 같은 내용은 문화예술행정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분야의 종사자들이 눈여겨 보아야할 것이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가장 시급하고 또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지, 어떤 정책을 필요로 하는지, 그들의 우선 순위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책 입안 단계에서부터 귀 기울여 듣고, 폭 넓게 연구조사하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 다각도로 논의하고,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재정이 한정된 만큼, 창작자들의 모든 요구를 무조건 수용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공공기금으로 운영된다면, 성과나 효율성을 간과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다소라도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창작 여건 개선을 우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술정책 시스템은 개인 단위의 창작자가 해결할 수 없는 광범위한 문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저작권 문제, 독서 인구 증가를 위한 캠페인, 문화 바우처 등 문화 복지 사업의 확대, 문화예술 체험 교육 확대를 위한 제도 도입과 개선, 찾아가는 공연처럼 지역과 창작자의 접점을 만들어 내는 일, 문화소비 활성화 방안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문화적 욕구와 향유의 기회를 동시에 높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창작 여건을 개선시킬 수 있습니다.

 

2. 지역 예술단체(예총)의 현실

 

한국예총은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이한다. 본격적으로 산업화가 이루어진 경제부흥의 역사와 한국예총의 역사는 그 궤軌를 같이하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예총이 우리나라의 문화 예술을 선도하고 이 땅에 그 향기를 활착시켰다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지역예총의 역할이 오늘날의 지역문화예술의 뿌리였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10년 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쳐오면서 한국예총은 안팍으로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왔음도 간과할 수만은 없다. 대중들의 기호를 간파하지 못하고 신진 예술가를 양성하는데 소홀했다는 점, 사회 발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므로서 대중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단체라는 외적인 공격에 시달려 왔던 것이다. 한 예를 들어,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민간기구화하면서 공모제로 선출된 위원에 거의 선임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도(1기부터 3기)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급격히 변화하는 문화 트렌드를 예감하고 선도적으로 창출하는 역동성의 상실은 현 정부에 들어서면서 상당 부분 역량을 찾아가고 있는 추세이지만 아직도 사회적 변화에 즉시적으로 대응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유연성의 회복은 여전히 우리의 문제로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각 예술장르 간의 소통과 융합, 더 나아가서 각 협회 간의 긴밀한 유대와 협동 작업은 한국예총의 위상을 높이는 관건이 되는 것임을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서 앞 서 잠시 언급했던 소통의 문제는 한국예총(본부)과 지역 예총의 협력과 지원 체제 구축, 지역 예총 간의 교류 - 물론 일부 지역예총 간의 정기적인 교류가 시행되고 있으나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 가 활성화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고 십 수 년 이 지난 지금, 중앙과 지방이라는 용어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지역’이라는 개념이 정착되었다. 각 지방정부는 문화기반시설을 확충하는데 힘을 기울였고, 지역의 특색을 살리고 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프로젝트 - 일반화된 지역축제나 국제영화제, 음악제 같은 대규모 사업- 이나 문화재단을 설립함으로써 독자적인 문화 체제를 만들어내는데 일정 부분 성과가 있었다. 한국 예총은 군 郡 행정단위 마다 지역예총이 설립되어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지역의 문화예술 진작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으나 최근에 들어 지방정부에서는 문화예술지원에 있어 지역예총에 직접 지원을 하지 않고 문화원이나 문화재단을 통해 배분하는 사례가 간간이 나타나고 있으며, 문화예술 사업 집행에 있어서도 공모제나 입찰 제도를 도입하므로서 지역예총 활동을 위축시키는 정황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기도하다. 한국예총(본부)도 그러하지만 지방정부에 재정의존도가 높은 지역 예총은 앞으로 타 단체와의 경쟁과 압력이 가중되는 상황을 피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이런 불길한 징조는 한국예총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시대에 조응하는 변화의 요소를 적시하고 과감히 개혁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3. 지역 예술단체(예총)의 앞으로의 역할과 과제

 

한국예총은 신진예술가의 배출과 양성이라는 과제에 대해 - 양적인 측면이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내어야 하는 - 즉시 응답해야 한다. 아무리 한국예총의 정강 政綱이 회원의 권익 보호에 있다 하더라도 문화예술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청을 무시할 수는 없다. 2030으로 대변되는 청년 예술가들에게 예총의 필요성과 예총에 소속되므로서 얻어질 수 있는 이익을 납득시킬 수 없다면 그들은 굳이 예총의 일원으로 남아있을 의미를 찾지 못할 것이다. 한 집단의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추세라 할지라도 신진예술가의 영입은 향후 예총의 역량 강화에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이에 덧붙여 예술정책을 입안하고 기획하며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문화행정 전문가 양성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한국예총과 대립하거나 경쟁하는 타 단체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문화행정 담당자들을 전문직화 하는 연수를 시행하고 있다. 몇 년 전 한국예총에서도 행정 연수를 시행한 바 있으나 행정 연수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납득시키는데 실패하므로서 지속되지 못한 바 있다. 어느 분야이든 오늘의 양상은 전문화와 특수화가 기본이다. 선거에 의해 수장을 뽑는 방식을 바꿀 수는 없으나 사무국의 행정요원들을 전문직화 하는 방안은 앞으로 한국예총의 지반을 튼튼히 하는 관건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 글의 서두에서 일반 대중의 예술 향수가 원활하지 못한 이유는 예술에 대한 소양이 학교 교육 제도 내에서 생활화되지 못하고 학습되지 못하는데서 기인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대중음악이나 영화와 같은 종합예술과는 달리 순수예술 영역은 장기간의 지식 습득과 향수능력을 고양하지 않으면 쉽사리 개선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예술가들이 대중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향해서, 대중을 찾아가는 실천의 자세를 보여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이른바 ‘재능기부’라는 새로운 기획이 호응을 일으키는 점을 주목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빈곤층이나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현장 공연, 각급 학교의 방과 후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 - 이에 대해서는 학교 측의 이해 부족과 참여 예술가에 대한 처우 불만 등으로 난관이 인지되고 있다 -무료 공연과 전시에 인내심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 술 밥에 배부를 수 없듯이 예술가와 대중과의 소통은 단기간에 성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일정 부분 예술가의 희생과 봉사가 요구된다는 것이 우리 예술인들에게는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

 

필자는 지역예총의 발전이 곧 한국예총의 발전이라는 굳게 견지하고 있다. 어느 단체보다도 상향식, 하향식의 구조가 아니라 수평적 의사교환이 자연스러운 한국예총의 전통은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한다. 지역예총이 뛰어난 역량을 갖춘 예술가들을 포용하고 있는 한, 예술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지방정부나 지역 주민들은 예총에 거는 기대와 애정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