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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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집 1993

상계동 . 16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1. 9. 22. 23:51

 

상계동 . 16 / 나호열

 

 

 

공단에서 흘러나온 매연이
수면제처럼 뿌려지는 상계동의 밤
한결같이 남쪽을 향하여 가슴을 연
아파트의 불빛이
용이 되어 승천하고 있다
하늘에도 빽빽한 별들의 집,
그래도 텃밭같은 나의 희망은
아직 넉넉하다
꽃이 되든지
나무를 심든지
아니면 좀 더 기다려야 할
씨앗을 뿌리듯이
나의 밥은 희망이며
희망은 나의 목숨,
난파당한 유령의 섬으로 흘러가고
흘러오는 도시의 밤
유리를 잔뜩 먹여 얼레를 풀어
나는 가장 순한
양들을 방목한다
사랑이며 믿음
심지어 고통까지도
스스로 자라 열매를 맺어
왕관을 쓰듯 황홀한 별자리가 된다
바람은 하염없이 구름을 밀어가고
구름은 깨끗이,깨끗이 닦아내는 하늘
파라슈트를 타고 하강하는
단내나는 꽃빛,
평화와 안도
나는 가슴 속에 가득한 그것들을
다시 하늘 위로 헌화하듯 날려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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