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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문화 자치구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0. 12. 19. 13:22

문화 자치구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나호열(시인, 문화평론가)

 

 21세기가 문화의 시대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측하기 힘든 세계질서와 불안정한 경제 상황 속에서도 사람답게 살 권리, 즉 문화 향유 享有에 대한 대중들의 욕구는 더욱 강열해지고 증대되어 갈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와 같은 상황은 우리에게도 예외는 아니어서 자신감이 붙은 사회의 민주화와 경제성장에 힘입어 문화 전반에 걸친 새로운 패러다임과 시스템의 구축은 이미 안정 궤도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낙관적 전망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으로 두 말 할 나위 없이 지방자치제도의 도입과 연착륙을 드는 것은

자연스럽다. 국가 단위의 정책 입안과 집행이 보다 세분화된 지방정부로 이관된다는 것은 보다 주민의 삶의 결을 포착할 수 있고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고무적이지만 이에 비례해서 부작용이 따라온다는 점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방정부 수장을 선거로 선출하다 보니 유권자를 의식한 선심성, 과시용 사업이 줄을 잇고, 장기적이고 단계적 정책을 벗어난 성급한 집행은 심각한 재정의 낭비를 가져왔던 것도 사실이다.

 

 문화 분야로 한정해서 이야기한다면 1980년대 이후 정치, 사회적 민주화와 경제성장에 힘입어 ‘문화의 민주화’democratization of culture 정책이 주류를 이루면서 외형적 성장을 이룩하게 되었다. 박영정(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은 「문화 다양성을 위한 거버넌스」란 글에서 ‘‘문화의 민주화’ 정책을 다음과 같이 요약 정리하고 있다. 즉 정책집행 초기에는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문예회관 등 문화기반시설을 전국적으로 설치․운영하는 등 ‘문화의 공급’을 전국적으로 원활하게 전개하는 하드웨어 정책에 중점을 두었지만, 최근에는 문화소외지역에 대한 ‘찾아가는 문화활동’, 국립박물관․미술관 ‘무료 입장’,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문화바우처’ 공급 등 소프트 웨어 정책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문화’의 전달 체계(제도, 시설, 기관 등)의 구축과 운영에 중점이 두어지게 되는데, 그렇지만 ‘문화의 민주화’는 사회․역사적으로 평가 받고 있는 ‘단일한 고급문화’를 출발점으로 대중에게 광범위하게 전달(보급)하는 일방향적 문화정책이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극단적 관점에서 보면 전사회적으로 ‘문화의 단일화’가 추구되는 정책으로 볼 수 있어 ‘문화의 민주화’는 ‘사회의 문화화’에는 기여할 수 있지만 ‘문화 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서는 제한적 역할에 머무르게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 도봉구 또한 위와 같은 맥락에서 문화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해 왔다고 본다. 관내에 설치되거나 건립된 외형적 인프라는 어느 자치구에 비해서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우선 문화의 민주화에서 ‘문화 민주주의(cultural democracy)’로 이행되어가는 즉,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문화들의 민주주의’를 지향해가는 추세를 따라가야하는 지방정부내에 전문가집단이 존재하지 않거나 전문가집단을 양성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나 광역지방정부에서는 '신공공관리론’(new public management)을 도입하여 ① 경쟁원리의 도입, 민간경영기법의 도입, 민영화, ②권한의 하부 위양이나 관리상의 신축성 부여와 같은 분권화, ③성과 중시와 품질 향상을 강조하고 행정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의 요구에 지속적 관심을 기울이는 소비자중심주의로 정책 방향을 전환할 수 있으나 도봉구와 같은 작은 자치구에서는 이를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난점이 발생하는 것이다.

 

  두 번 째로 생각해 보아야할 점은 주민의 생활 패턴과 성향, 문화 향유에 대한 의식조사와 같은 표본 도출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문화예술회관, 체육관, 공공도서관, 보육시설과 같은 타 구와 별 다를 것이 없는 수평적 기구 구성은 만족할만한 수준이라 하더라도 가구의 구성 내용, 인구 연령별 구성, 성비, 학력, 소득의 편차 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문화정책을 수행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본다.

그런 까닭에 문화 거버넌스(cultural governance)에 대한 관심과 활용은 매우 효과적인 문화정책을 안착시키는 관건이 될 것이라고 본다. 거버넌스는 이른바 협치 協治의 개념으로서 지방정부가 수립해야할 정책 입안 과정부터 실행, 평가에 이르기까지 민-관 협동체제를 갖추는 것이다. 이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십 수 년 전 부터 도입된 패러다임으로서 아직 충분히 활성화되거나 정착되지 못한 모형이라는 점에서 더욱 강화되어야 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문화 창달에 있어서 예술인들의 역할은 지대하다. " 예술이 문화의 중심"이라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창작자로서가 아니라 문화의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인식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한 점은 시급히 불식해야할 점이다. 재정적 지원 대상으로만 예술인들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문화창달의 주체로서의 역할을 부여해주는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은 외형적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재원을 억제하고 이미 구축된 문화시설과 제도를 공고히 하는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볼 때 우리 구에 거주하고 있는 덕망과 학식 그리고 예술적 성취를 이룬 예술인들을 모아 문화정책 자문단을 꾸려보는 것도 주민 밀착형, 생활 속의 예술문화를 정착시키는 시도가 될 것이라고 본다.

 

 이와 더불어 현재 관내에 거주하고 있거나 도봉구에서 생활했던 예술인, 정치인, 사상가들의 가옥, 작품들을 한데 모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여 교육의 자료로 활용할 뿐만 아니라 타 지역에서도 탐방할 수 있는 명소로 부각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이는 재원의 갹출 없이, 별도의 건물을 신축할 필요없이 관내의 유휴시설을 찾아 원로 예술인들의 소장품이나 작품을 전시하고 관리 주체를 예술인들에게 위임하면 경비 절감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도봉구에도 자타가 공인하는 예술인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고, 도봉구 주민으로서 더불어 사는 기쁨과 자긍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예술인들을 우대하는 것은 도봉구가 문화지치구로 거듭 태어나는 디딤돌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10년 <<도봉뭉화>.에 게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