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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사진,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1. 2. 8. 23:07

 

사진,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나호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 그것이 신이 인간에게 준 축복이고 재앙이다

 

오늘날 사진 분야의 기술적 발전은 눈부심 그리고 숨막힘의 연속이다. 예전에는 파악할 수 없었던 찰라를 포착하는 기술, 인간의 시각으로 파악할 수 없었던 사물과 육체의 내면을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은 사진의 아이템을 근간으로 하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바 크다. 망원경이나 현미경, 내시경 등의 기본 원리는 ‘보는 것’ 즉 ‘봄’에 있다. 이 ‘봄’은 인간 신체의 시각에 의존하던 형이상학적 존재의 물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진리라고 믿었던 고전적 진리관은 컴퓨터그래픽 등으로 구현된 매트릭스적 상황에 직면하면서 궁지에 몰리고 있다. 즉 具象的 實體를 구상적 실체로 재현하는 단계를 이미 넘어서서 환상이나, 환청, 관념과 이미지들을 具象化하는데 앞장 서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진리의 경계, 사실의 한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디지털의 마력은 단순한 시각적 체험의 진실을 의심하게 만든다. 아마도 이것은 사진이 탄생하면서부터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예고된 숙명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디지털 기술이 사진에 끼치고 있는 영향은 막대하다. 뿐만 아니라 사진, 디자인, 영화 등의 각 분야가 서로가 서로를 호혜적으로 포섭하는 혼혈주의를 거리낌없이 받아들이는데에도 그 핵심에는 디지털이라는 과학적 신념이 신으로 군림한다고 볼 수 있다. 디지털은 정보통신과 모든 예술 분야에 영토 확장을 꾀하면서 한 편으로는 각 예술의 정체성을 뒤흔들고 그에 따라 각 예술이 스스로의 존재를 재정립하게 하는 기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얼마 전 보았던 꽃 사진은 황홀 그 자체였다. 완벽한 구도와 색감 그 속에 자리잡고 있는 균형미는 이 지상에서 내가 보았던 그 어느 꽃보다도 절대적이었던 것이다. 아쉽게도 그 꽃은 지상에 자리잡고 있거나 바람에 흔들리는 그런 꽃이 아니었다. 그 꽃은 우리 몸의 일부이면서 눈으로 볼 수 없었던 세포를 촬영한 것이었다. 내 몸이 꽃나무라니!

어디 그뿐인가, 우리는 날이 새기 무섭게 기능이 향상되는 디지털 도구를 사용해서 무한대의 사진과 영상을 자유롭게 합성하고 삭제하는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아주 숙련되고 전문화된 작업자가 아니더라도 왠만한 컴퓨터 지식과 컴퓨터 도구 환경을 갖추고 있는 일반인들도 자신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를 구현해 낼 수 잇는 세상이 되었다.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컴퓨터에 전송하고 CD로 복사를 하고, 컬러 프린터로 인쇄를 하고, 마음에 드는 사진은 메모리 칩이나 CD를 사진현상소에 가져다 주면 1시간 이내로 필요한 사진이 출력되는 시대에 ‘사진’ 이라는 개념은 고전적 의미에서의 복사, 재현이 아니라 새로운 이미지의 창출에서 비롯되는 새로운 존재의 출현을 기대하게 만든다.

 

기존에 숙명적으로 가졌던 존재의 얼룩 또는 그림자는 디지털 기술에 의해서 왜곡되는 동시에 창조된다.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딜렘마는 그런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존재성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욕망과 새로운 것으로 변환시키려는 욕망, 자신 있고 아름다운 부분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과 부족하고 열등감에 빠지는 부분을 감추려는 욕망, 이런 것들이 혼재된 상황에서 보이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성적 잣대는 해체되어 버리는 것이다.

 

사진이 인간의 진리- 사실과 부합되는 모사적 관점에서 -를 염원하는 열망의 산물이라면 사진이 존재할 수 있었던 근거는 카메라의 발명이었다. 카메라는 엄밀히 말하면 과학의 산물이며 1820년대 니엡스에 의해 최초의 사진을 만들었던 그 때보다 더 오래 전 레오나르드 다빈치 등의 과학자들이 사진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니엡스가 사진을 만들어내기 훨씬 오래 전인 16세기 초반 무렵, " 암상자" 또는 " 어두운 방 " 의 뜻을 가진 " 카메라 옵스큐라 ( camera obscura ) " 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타남으로써 인간은 기계에 의한 이미지, 최초의 사진을 손에 쥘 수 있었던 것이다.

 

사진의 출현은 한 편으로는 철학적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되었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기계적 시스템에 의존함으로써 처음부터 예술의 영역에 입성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의 미술이나 음악처럼 봉건 영주나 귀족들의 향유물이 아니라 사진이 출현하자마자 일반 대중의 환호를 받았던 것은 사진의 비약적 발전에 원동력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은 그때까지 자신의 초상화를 갖지 못했던 대중들에게 카메라를 통한 초상화를 갖게 했던 의미에서 문화적, 예술적 자유와 평등을 실질적으로 경험케 했다. 그리하여 초상화에 대한 대중들의 강렬한 욕망은 사진을 하나의 산업으로 변모케 했으며 예술이 산업화 할 수 있다는 전조가 비춰졌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서 눈에 보이는 사물을 놀라울 정도로 똑같이 재현해 내는 사진의 묘사력은 곧 화가들의 경제권을 위협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오랫동안 향유했던 묘사에 대한 장인적 재주와 예술적 명성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했다.

이와 같은 초상사진의 시대는 사진과 미술의 두 영역 간의 팽팽한 긴장을 유발시키고 1850년대를 기점으로 하여 19세기 사진은 새로운 예술로서의 사진시대가 열리기 시작하는데, 그 당시에 추구되었던 사진을 우리는 " 회화적 사진 (Pictorial Photography )" 이라고 부른다. 회화적 사진은 실패한 화가들이 사진으로 전향했으면서도 일류 화가의 꿈을 저버리지 못하고 초상사진 사업으로 튼튼해진 재력을 바탕으로 예술가로서 명예를 획득하고자 전개한 사진의 모습으로써 그들이 수행했던 예술사진이란 주제는 물론이고 소재, 대상, 그 기법마저 철저히 회화를 답습한 회화 모방의 모습이었다. 사진을 포섭하는 화가들은 사진을 어떤 방식으로 회화의 대상이었던 신화나 설화를 이야기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에 관심을 두었다. 사실 초기 사진적 정황으로 볼 때 눈앞에 보이지 않는 상상적 이미지를 서술형식의 구체적인 이미지를 서술형식의 구체적인 이미지로 표현하기란 쉽지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림에서 사진으로 전향한 화가들은 예술사진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극적 내용들을 끌어들여야 할 지를 알았고, 또 그러한 극적 이야기를 대중에게 선보이기 위해서는 어떤 기법을 구사해야 하는지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한 기술적이고 전문적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상술하기로 하자.

 

하여튼 이와 같은 회화적 사진의 조류를 풍미했던 대표적 작가는 핸리 피치 로빈슨 H.P.Robinson 이다. 그는 자신을 당대 최고의 예술사진가로 불리게 만들었던 작품을 1858년에 제작하는데 그 작품이 유명한 「임종 Faing Away」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구상에서 촬영까지 무려 3년이 걸렸던 연출사진으로서 5장의 음화필름을 합성하여 만들어 졌다고 한다.

 

사진의 내용은 결핵에 걸린 청순한 여인이 가엾게도 세상을 떠난다는 빅토리아식 비극적 서사물인데, 당시 " 예술적 견지에서 본 유일한 사진 " 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화제의 작품이다.

 

그러나 그 당시 모든 사진가들이 예술이 되고자 회화적 내용, 회화적 분위기를 모방했던것은 아니다. 숫자는 많지 않지만 로빈슨이 주도했던 합성인화, 연초점 방식을 거부했던 사진가들도 있었다. 그들은 사진이 과학적 방식이기 때문에 사진만의 작화기법이 있음을 주장했고, 로빈슨의 방법은 결국 회화를 끝없이 추종하고, 회화와 우열을 다투는 방향으로 영원히 나아갈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처럼 초상사진의 시대에서 예술사진 시대로의 전환은 부정적 측면과 긍적적인 측면이 공존했다. 회화적 사진이 미술로부터 끊임없는 예술성 시비의 빌미를 제공하고 그로부터 시달림을 받았던 것이 부정적 측면이라면 , 도전과 응전 속에서도 사진이 차츰 독자적인 미학을 준비하고 착실히 다져 나갔던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었다. 1890년대는 회화적 사진의 절정기였다. 여전히 회화모방의 종속성을 지속시키는 작용은 사진의 대중화를 지연시키는 방해요인으로 자리잡게 되고 이후 영국의 피터 핸리 에머슨 Peter Henry Emerson , 1856-1936 이 ‘자연주의 사진 Naturalistic Photography ’ 을 제창하면서. 점차 일상의 모습들이 사진의 주제로 자리 잡았다. 점차 일상의 모습들이 사진의 주제로 자리 잡았다. 에머슨은 처음으로 다큐멘터리 양식을 선보이면서 8년 동안 노포크 Norfolk 지역 사람들의 일상을 찍었다. 사진의 주제를 삶의 모습에서 찾고, 그 소재도 사람이어야 함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은 사진이 주체가 되고 사물이 객체가 되어버리는 유물론적 입장에서 인간 중심의 예술로서 사진의 영역을 재정립한 중요한 접점이 되었던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 " 현대 사진의 아버지" 로 칭송되는 미국의 사진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Alfred Stiegltz , 1833-1946 는 스트레이트 사진 Straight Photography 즉, 에머슨이 제창했던 " 자연주의 사진 "을 모태로 하면서 일차적으로 사진의 기계적 종속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그의 사진의 기점을 삼았다. 즉 선명한 렌즈에 의한 선명한 이미지야말로 사진의 고유성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진은 항상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재현하기 때문에 현실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사진의 올바른 기능이자 참된 가치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조류는 제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기점으로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되어 갔다. 과학과 기술의 시대는 급격한 상업화, 도시화를 만들어 내고, 이에 따른 새로운 권력과 경제의 주체들이 등장하면서 대중은 사회로부터 점차 소외되어 갔다. 가속도가 붙은 기술의 발달은 동시대 인간들에게 정신적 공황을 불러왔고 전쟁을 겪었던 사람들의 인성도 말할 수 없이 황폐해 갔다. 사진은 이제 기록으로서의 예술이 아니라 현실과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사회와 시대가 안고 있는 상황에 참여하고 극복해 내는 역할을 부여받았던 것이다.

 

정보 통신과 교통수단의 발달은 세계를 지구촌화 시키고 세계시민의 자각을 심어 주었다, 예술적 취향의 회화 모방, 자연의 자연스러운 복사, 일상의 충실한 기록의 도구로서의 사진의 역할과 위상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사상적 조류와 조우하고, 현대문명이 지니고 있는 몰개성, 익명성, 과학적 도구주의, 환경파괴, 페미니즘 등의 다양하면서도 인간의 존재성을 되묻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갔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결별을 고했던 사진과 미술을 다시금 새로운 시각으로 화해시키고 서로를 이용하고 포섭하는 탈 장르의 시대를 열어갔던 것이다.

사진인지 미술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운 작품들은 사회적 차별, 제도적 권력과 같은 복합적인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다룬 결과물이었고, 그와 더불어 등장하는 뉴 웨이브 양식은 이러한 정치적이고도 사회적인 이념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분석하고 표현하기 위해 기존의 사진적 방식의 대안으로서 등장시킨 새로운 혼합 매체적 표현방식이었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과 뉴 웨이브 사진이란 이전과는 너무도 달라진 정치적, 사회적 체제와 경제적, 문화적 환경의 변화에 대응했던 현대사진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90년대에 들어 점차 확산되기 시작한 디지털 사진 역시 표현성에서 본다면 90년대의 뉴 웨이브의 한 형태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상에서 간략하게 살펴 본 바와 같이 사진의 역사는 기술적 측면에서의 진보와 역사적 사회적 변동에 대응하는 예술적 표현 방식의 모색이라는 두 기둥에 의해서 발전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의 확산과 혁신은 사회 전 분야에 영상 이미지를 추종하는 신인류를 만들어내고, 즉물적이고 감각적인 매스미디어의 상업화 전략이 기승을 부릴수록 사진의 철학적 고뇌 또한 깊어져 가는 것이 사실이다.

 

사진이 예술이냐? 예술이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하느냐? 순수 예술로서의 사진은 디지털의 기술을 어디까지 합법적으로 허용할 것이냐? 등등의 질문은 단지 사진 예술에 종사하는 작가들에게만 던져지는 질문이 아니다. 사진의 발견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진의 역사는 대중과 함께 호흡해 옴으로써 대중예술의 면모를 갖추는 한편, 또 한 편으로는 시대적, 사상적 변모에 그 어느 예술 분야보다도 발 빠르고 영향력 있게 자신의 자리를 확보해 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 그것이 신이 인간에게 준 축복이고 재앙이다’ 라는 화두는 예술로서의 사진의 향취를 더욱 짙게 만들 것이다.

 

 

⊙ 발표문예지 : 예술세계 2005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