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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문학교육의 허와 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0. 8. 29. 11:35

문학교육의 허와 실

                                                            나호열

최근의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최대의 문학단체인 한국문인협회의 회원이 12,000명 정도라고 한다. 3 년 전 8,000여명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여 볼 때 적지 않은 수가 늘어난 셈인 것이다. 희망하기만 하면 자동 가입이 되는 것도 아니고 활동 실적과 입회에 필요한 경비를 납부해야만 하는 사정을 감안하여 볼 때 자칭타칭 문학인의 수는 이보다 상회하리라는 것을 추측하기에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대형 서점의 문학 코너가 축소되고 순수 문학인들의 작품집들이 사라지고 있고 그 자리에 외국 작가나 몇몇 유명 국내 작가의 책들이 자리하고 있는 현실은 여러모로 씁쓸한 기분을 자아내게 한다. 왜 시인, 작가는 넘쳐날 만큼 많은데 책 사는 사람, 책 읽는 독자는 감소할까? 이러한 현상에 대해 명쾌한 분석을 내리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한번 쯤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시대적 상황을 비추어 볼 때 활자매체의 퇴조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은 분명하다. 활자매체를 압도하는 영상매체의 위력은 상상을 뛰어 넘으며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해가는 삶의 방식도 이제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 까닭에 아날로그 세대에 속하는 시인, 작가들의 뒤늦은 등장은 정점을 찍고 점차 하향곡선을 그릴 것임은 明若觀火하다. 디지털 시대에 태어나고 성장한 미래의 시인, 작가들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게 될까? 지금과 같이 장르에 매몰된 것이 아니라 장르를 넘나들며 혼합과 세포분열을 거듭하는 그런 형상은 아닐까? 순수문학의 몰락을 예단하기에는 시기상조일지 몰라도 오늘날과 같은 시인, 작가들의 量産과 독자층의 감소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국가적 치원의 문화의 융성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먼저 시인, 작가들의 양산에는 기존 문인들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이 땅의 수많은 문학지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신인 등단에 있어 엄정한 역량의 측정과 작가정신의 투철함은 뒷전에 둔 채 함량미달의 신인들을 배출한다면 문단의 질적 저하를 초래할 것임은 뻔한 사실이 될 것이다. 예술의 특성상 정량적 측정이 불가능함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자기 울타리를 만들고 세력을 넓혀가는 수단으로 신인등단제도를 이용한다면 시인, 작가 지망생 뿐만 아니라 이들의 작품을 대하는 독자들에게도 편견과 오해를 불러 일으켜 종국에는 문학을 경시하거나 멀리하는 기제로 작동할 수 있음을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예술의 다양성과 分枝를 부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다양성과 분지 속에서도 결코 변해서는 안될 원칙은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신인은 말 그대로 새로운 생각, 새로운 기법으로 기성 문단에 도전장을 내미는 존재들이다. 한 마디로 프로페셔널이 된다는 것은 그들의 작가적 성패를 스스로 걸머쥐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등단 이후에도 이곳저곳 문학을 사숙하는 세태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아무래도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비록 설 익었으나 충분한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배출한 신인들에게 최소한 그들을 탄생시킨 母誌는 끊임없는 자기계발의 프로그램을 애프터 서비스할 필요가 있다. 시인, 작가들 간의 질적 경쟁을 마다하지 않고 지속적인 숙련이 이루질 수 있도록 무한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써 결과적으로 독자들은 수준 높은 작품을 감상하고 향유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두 번 째로 문학 독자층의 감소는 우리의 예술교육, 문학교육의 황폐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입시교육에 시달리고, 경쟁에 주눅든 청소년들은 정서를 신장하고 주어진 환경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기 어렵다. 특히 문학교육은 교과서 위주로 정답을 가르치는 수준으로 전락함으로서 청소년들에게 재미없고 따분한 과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세간에 몇 몇 시인,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이 교과서에 실리는 영예(?)를 거부한 것도 획일적이고 유연한 정서의 응축을 도외시하는 교육 방법에 반기를 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용적 가치와 현세적 성공만을 가르치는 우리의 교육제도는 많은 사람들을 영영 평생토록 문학과 담을 쌓게 만드는 일등공신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전 생애를 통해 독서를 가까이 하는 습관을 배양하도록 하고 인문학적 사유를 스스로 터득하게 하는 문학교육의 시행은 아무리 빨라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문학의 가치는 사유의 되새김질에 있다. 한 번 읽는 것으로 끝나는 소모품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새롭게 인식되고 깨달아가는 사유의 성장과 호흡한다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시집 한 권을 읽는데 반 시간이면 충분한 사람이 있고 평생 걸려 한 권의 시집을 다 읽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기꺼이 후자의 길을 선택한 사람과 이 가을를 소요하고 싶다.

 

 * 2010년 <<시와 산문>> 가을호 권두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