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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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화진포 바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8. 5. 24. 01:00
 

화진포 바다


그곳에 가서 알았다

눈 뜨고도 보지 못하고

입을 열어도 말할 수 없는

그래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내가 있다는 것을

객창에 기대어 저 두껍고 어두운

한 권의 책을 언제 다 읽을 수 있을까

잠깐 생각하는 동안 날은 다시 어두워졌다

수 만개의 북을 울리는,

마치 스스로 만든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어떤 이처럼

이윽고 출구를 막아버리고서 돌아서 누운

그 사람이

어느 순간 긴 팔을 내밀어 나를 데려갈 지도 모르지

겁에 질려 잔뜩 웅크린 채로 밤을 새우는

그리워하는 것만큼 멀리 도망가야 하는

섬은 이 바다에는 없다

하품을 하다 날카롭게 삐져나온 송곳니가 부러졌다

야광의 눈은 정작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나는 밤새 한 통의 편지를 쓰고

그 속에서 혼자 흐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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