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정민의 세설신어 185

[156] 수오탄비 (羞惡歎悲)

[정민의 세설신어] [156] 수오탄비 (羞惡歎悲)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5.01. 23:14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어떤 사람이 강백년(姜栢年)에게 제 빈한한 처지를 투덜댔다. "자네! 춥거든 추운 겨울 밤 순찰 도는 야경꾼을 생각하게. 춥지 않게 될 걸세. 배가 고픈가? 길가에서 밥을 구걸하는 아이를 떠올리게.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네." 옛말에도 "뜻 같지 않은 일을 만나거든 그보다 더 심한 일에 견주어 보라. 마음이 차차 절로 시원해지리라"고 했다. '언행휘찬(言行彙纂)'에 수오탄비(羞惡歎悲), 즉 인생에 부끄럽고 미워하고 탄식하며 슬퍼해야 할 네 가지 일을 꼽은 대목이 있다. 그 글은 이렇다. '가난은 부끄러울 것이 없다. 부끄러운 것은 가난하면서도 뜻이 없는 것이다. ..

[155] 승영시식 (蠅營豕息)

[정민의 세설신어] [155] 승영시식 (蠅營豕息)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4.24. 23:03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귀양 살던 다산에게 이웃에 사는 황군(黃君)이 찾아왔다. 그는 술꾼이었다. 술 냄새를 풍기며 그가 말했다. "선생님! 저는 취해 살다 꿈속에 죽을랍니다(醉生夢死). 욕심부려 뭣 합니까? 그리 살다 가는 게지요. 집 이름을 아예 취몽재(醉夢齋)로 지을까 합니다. 글 하나 써주십시오." 다산의 성정에 마땅할 리 없었겠지만 꾹 참고 말했다. "자네, 제 입으로 술 취했다고 하는 걸 보니 아직 취하지 않은 것일세. 진짜 취한 사람은 절대로 제가 취했단 말을 안 하는 법이지. 꿈꾸는 사람이 꿈인 줄 아는 것은 꿈 깬 뒤의 일이라네. 제가 취한 줄을 알면 오히려 술에서 깨어..

[154] 일언방담 (一言芳談)

[정민의 세설신어] [154] 일언방담 (一言芳談)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4.17. 23:04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일본 고전 명수필집 '도연초(徒然草)'를 읽는데, 고승의 명언을 모은 '일언방담(一言芳談)'이란 책에서 옮겨 적은 몇 구절이 나온다. "할까 말까 망설이는 일은 대개의 경우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우리는 매일 할까 말까 싶은 일을 이번만, 한 번만 하며 해놓고 돌아서서 후회한다. "내세의 안락을 원하는 자는 훌륭한 물건을 지니지 않는 편이 낫다." 실상은 하나라도 더 갖고 다 가지려고 아등바등한다. "속세를 떠난 수도자는 지닌 것 없이도 괜찮다는 마음가짐으로 해나가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행여 무시당할까봐 남의 것까지 욕심 사납게 그러쥔다. "신분이 높은 사..

[153] 윤물무성(潤物無聲)

[정민의 세설신어] [153] 윤물무성(潤物無聲)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4.10. 23:12 며칠 봄비에 꽃들이 다투어 피어난다. 두보의 '봄 밤의 기쁜 비(春夜喜雨)'를 읽는다. "좋은 비 시절 알아, 봄을 맞아 내리누나. 바람 따라 밤에 들어, 소리 없이 적시네. 들길 구름 어둡고, 강 배 불빛 홀로 밝다. 새벽 젖은 곳을 보니, 금관성에 꽃이 가득.(好雨知時節,當春乃發生. 随風潜入夜, 潤物細無聲. 野徑雲俱黑, 江船火獨明. 曉看紅濕處,花重錦官城.)" 봄비가 시절을 제 먼저 알아 때맞춰 내린다. 바람을 따라 살금살금 밤중에 스며들어 대지 위의 잠든 사물을 적신다(潤物). 하도 가늘어 소리조차 없다(無聲). 세상길은 구름에 가려 캄캄한데, 강물 위 한 척 배에 등불이 외롭다. 모두 ..

[151] 점철미봉(點綴彌縫)

[정민의 세설신어] [151] 점철미봉(點綴彌縫)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3.27. 23:21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서양 정장 차림에서 가장 쓸데없는 것이 넥타이다. 목에 드는 바람을 막자는 것도 아니면서, 여름에도 답답하게 목을 조른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넥타이의 색상과 디자인이 양복의 품위를 결정한다. 30년 전쟁(1618~1648) 당시 터키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크로아티아 용병들이 파리에서 개선행진을 했다. 이때 루이 14세에게 충성 맹세의 상징으로 앞가슴에 매단 크라바트(Cravate)라는 천에서 시작되었다는 넥타이. 오늘도 직장인들은 상사에게 충성하고 고객에게 잘 보이려고 쓸모라곤 전혀 없는 이 물건으로 제 목을 죈다. 쓸모로 치면 얼굴에서 눈썹처럼 쓸데없는..

[150] 다시수죄(茶時數罪)

[정민의 세설신어] [150] 다시수죄(茶時數罪)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3.20. 23:01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다시(茶時)는 예전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 들이 날마다 한 차례씩 차를 마시며 업무를 조율하던 자리를 일컫는 말이다. 감찰은 공직자의 비리를 단속한다. 남을 단속하려면 무엇보다 처신이 검소해야 했다. 거친 베로 지은 누추한 빛깔의 옷을 입고, 좋지 않은 말에 낡은 안장을 얹어 출입했다. 사람들은 행색만 보고도 그가 감찰인 줄 알았다. 감찰들이 다시라고 적힌 패를 가지고 갈 때는 대관과 만나도 말에서 내리지 않았다. 다산의 '흠흠신서'에 나온다. 다시 중에서도 특별히 무서운 것이 밤중에 이뤄지는 야다시(夜茶時)다. 야다시는 사안이 급박할 때 불시에 열렸다. 재상..

[149] 부신구화(負薪救火)

[정민의 세설신어] [149] 부신구화(負薪救火)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3.13. 23:01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세조 때 홍윤성(洪允成)이 포악한 짓을 많이 했다. '시정기(時政記)'를 보니 자기 죄목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격분해서 말했다. "고급 일본 종이에 찍은 '통감강목'도 안 읽는데, 우리 역사를 적은 '동국통감(東國通鑑)'을 누가 읽겠느냐. 너희 마음대로 써라." '월정만필(月亭漫筆)'에 실려 있다. 명종 때 이기(李芑)가 정승이 되어 선비를 죄로 얽어 많이 죽였다. 어떤 사람이 나무랐다. "사필(史筆)이 두렵지 않은가?" 이기가 대답했다. "까짓 '동국통감'을 누가 본단 말인가?"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나온다. 둘의 대답이 짜맞춘 듯 같다. 오늘날 '동국통감'..

슬픈 곡조의 동요를 떠올리며 돌아보게 된 슬픈 전설의 ‘눈꽃나무’

[나무편지] 슬픈 곡조의 동요를 떠올리며 돌아보게 된 슬픈 전설의 ‘눈꽃나무’ ★ 1,179번째 《나무편지》 ★ 어린이날에서 시작해 어버이날 스승의날이 이어지는 '가족의 달' 오월입니다. 라디오에서도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이 이어집니다. 엊그제 어린이날도 그랬습니다. 어린이날에 맞추어 어린 시절에 부르던 노래들이 흘러나왔습니다. 굳이 집중하지 않고 귓등으로 흘려 들었지만, 우리가 어릴 때 불렀던 노래들은 대부분 슬픈 가락을 가졌다는 걸 새삼 돌아보게 됐습니다. 모든 일이 즐겁고 희망으로 가득차야 할 어린 시절에 우리는 저리 슬픈 노래를 불렀던 겁니다. 가락은 단조로 이어지고, 노랫말은 ‘돌아온다던 오라버니’는 돌아오지 않고, ‘굴 따러 나간 어머니’를 홀로 기다리던 아이는 지쳐 잠드는 걸로 돼 있습니..

[147] 시비재중(是非在中)

[정민의 세설신어] [147] 시비재중(是非在中)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3.01. 23:48 쾌남아 임제(林悌, 1549~1587)가 술에 담뿍 취했다. 가죽신과 나막신을 짝짝이로 신고 술집 문을 나선다. 하인이 말한다. "나으리! 취하셨습니다요. 신을 짝짝이로 신으셨어요." 임제가 대답한다. "이눔아! 내가 말을 타고 가면 길 왼편에서 본 자는 가죽신을 신었군 할 테고, 오른편에서 본 자는 나막신을 신었구먼 할 테니 뭐가 문제냐? 어서 가자." 박지원의 '낭환집서(蜋丸集序)'에 나오는 얘기다. 짝짝이 신발은 누구든 한눈에 알아본다. 그런데 말 위에 올라타면 한순간에 모호해진다. 사람들은 제가 본 한쪽만으로 반대편도 그러려니 한다. 반대편도 마찬가지다. 결국 진실 게임으로 번진다. ..

[146] 사행호시(蛇行虎視)

[정민의 세설신어] [146] 사행호시(蛇行虎視)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2.23. 23:30 청나라 황균재(黃鈞宰)가 남긴 '술애정(述哀情)'31칙은 인생을 살아가며 스쳐간 슬픈 광경을 해학을 섞어 나열한 글이다. 몇 항목을 소개한다. "게를 삶는데 솥 안에서 게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낼 때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煮蟹聽釜中郭索聲, 豈不哀哉!)" 안타깝다. "처마 밑에 거미줄이 분명하게 있건만 파리와 모기는 어리석게도 여기로 뛰어들어,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가 없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P前蛛網, 自在分明, 蠅蚊昧昧投之, 欲脫不得, 豈不哀哉!)" 민망하다. "뱃속에 든 아기나 강보에 싸인 아이나 백년도 못 되어 같이 흙으로 돌아갈 터이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胞胎中物, 襁褓..

[145] 사벌등안(捨筏登岸)

[정민의 세설신어] [145] 사벌등안(捨筏登岸)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2.16. 23:25 시골 아전의 자식이었던 다산의 제자 황상은 만년에 서울로 올라와 시로 추사 형제와 권돈인, 정학연 형제 등 당대 쟁쟁한 문사들의 높은 인정을 받았다. 그들이 차례로 세상을 뜨자 그는 막막해진 심경을 벗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었다. "종유했던 여러 분이 차례로 세상을 뜨매, 비유컨대 다락에 올라갔는데 사다리가 치워지고(登樓而梯去), 산에 들어가자 다리가 끊어진 격(入山而橋斷)이라 하겠습니다. 저 많은 물과 산에 지팡이와 신발을 어디로 향해야 하리까." 다락에 올라간 사람은 그 사다리로 다시 내려와야 하고, 산에 든 사람은 다리를 되건너야 속세로 돌아올 수가 있다. 하지만 진리를 향한 걸음..

[144] 양묘회신(良苗懷新)

[정민의 세설신어] [144] 양묘회신(良苗懷新)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2.09. 23:18 도연명의 '계묘년 초봄 옛 집을 그리며(癸卯歲始春懷古田舍)'란 시는 이렇다. "스승께서 가르침 남기셨으니, 도를 근심할 뿐 가난은 근심 말라 하셨네. 우러러도 아마득해 못 미치지만, 뜻만은 늘 부지런히 하려 한다네. 쟁기 잡고 시절 일을 즐거워하며, 환한 낯으로 농부들을 권면하누나. 너른 들엔 먼 바람이 엇갈려 불고, 좋은 싹은 새 기운을 머금었구나. 한해의 소출은 가늠 못해도, 일마다 즐거움이 많기도 하다. 밭 갈고 씨 뿌리다 이따금 쉬나, 길 가던 이 나루터를 묻지를 않네. 저물어 서로 함께 돌아와서는, 술 마시며 이웃을 위로하누나. 길게 읊조리며 사립 닫으니, 애오라지 밭두둑의 백성 되..

[143] 허정무위(虛靜無爲)

[정민의 세설신어] [143] 허정무위(虛靜無爲)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2.02. 23:08 이식(李植)이 아들에게 써준 편지의 한 대목이다. "근래 고요한 중에 깊이 생각해보니, 몸을 지녀 세상을 사는 데는 다른 방법이 없다. 천금의 재물은 흙으로 돌아가고, 삼공(三公)의 벼슬도 종놈과 한가지다. 몸 안의 물건만 나의 소유일 뿐, 몸 밖의 것은 머리칼조차도 군더더기일 뿐이다. 모든 일은 애초에 이해를 따지지 않고 바른길을 따라 행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실패해도 후회하는 마음이 없다. 이것이 이른바 순순히 바름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만약 이해를 꼼꼼히 따지고 계교를 절묘하게 적중시켜 얻으면 속으로는 부끄러움을 면치 못하고, 실패하면 후회를 못 견딜 것이다. 그때 가서 무슨 낯으..

[142] 취문성뢰(聚蚊成雷)

[정민의 세설신어] [142] 취문성뢰(聚蚊成雷)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1.26. 23:18업데이트 2020.07.31. 16:41 형제는 이름난 벼슬아치였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남의 벼슬길을 막는 문제를 두고 논의했다. 곁에서 말없이 듣던 어머니가 연유를 물었다. "그 선대에 과부가 있었는데 바깥 말이 많았습니다." "규방의 일을 어찌 알았느냐?" "풍문이 그렇습니다." 어머니가 정색을 했다. "바람은 소리만 있지 형체가 없다. 눈으로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다. 허공에서 일어나 능히 만물을 떠서 움직이게 한다. 어찌 형상 없는 일로 떠서 움직이는 가운데서 남을 논하느냐? 하물며 너희도 과부의 자식이 아니냐? 과부의 자식이 과부를 논한단 말이냐?..

[141] 심한신왕(心閒神旺)

[정민의 세설신어] [141] 심한신왕(心閒神旺)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1.19. 23:27업데이트 2020.07.31. 17:07 청말의 전각가 등석여(鄧石如)의 인보(印譜)를 들춰보는데 '심한신왕(心閒神旺)'이란 네 글자를 새긴 것이 보인다. 마음이 한가하니 정신의 활동이 오히려 왕성해진다는 말이다. 묘한 맛이 있다. 내가 "천자문"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네 구절은 이렇다. "성품이 고요하면 정서가 편안하고, 마음이 움직이면 정신은 피곤하다. 참됨을 지켜야만 뜻이 온통 가득 차고, 외물을 따라가자 뜻이 함께 옮겨간다.(性靜情逸, 心動神疲. 守眞志滿, 逐物意移.)" 고요해야 평화가 깃든다. 마음이 이리저리 휘둘리면 정신이 쉬 지친다. 참됨을 간직하니 뜻이 충만해진다. 바깥 사물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