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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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세설신어 185

[11] '호질(虎叱)'의 행간

[정민의 세설신어] [11] '호질(虎叱)'의 행간 조선일보 입력 2009.07.10 02:40 '호질'은 '열하일기'에 실려 있다. 북경으로 향하는 길목인 옥전현(玉田縣)을 지날 때, 심유붕(沈有朋)이란 이의 점포 벽에 걸려 있던 것을 베꼈다는 글이다. 작품 서두에서 범은 영특하고 거룩하고 문무를 갖추었으며, 자애와 효성, 지혜와 어짊을 지닌 용맹하고 웅장한 천하무적의 존재로 그려진다. 그런데 바로 뒤이어 그 범조차 꼼짝 못하고 쩔쩔매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비위와 죽우(竹牛), 자백(玆白)과 맹용 같은 짐승들이 그것이다. 범이 사람을 잡아먹으면 그 넋이 창귀가 되어 범의 하수인 노릇을 한다. 그들의 이름은 굴각(屈閣), 이올(彛兀), 육혼 등이다. 무슨 말인가? 범의 앞에 붙은 수식어는 청나라 황제의 ..

[10]열하일기 완성본

[정민의 세설신어] [10]열하일기 완성본 조선일보 입력 2009.07.02 23:20 | 수정 2009.07.06 10:56 여행은 낯선 풍물 속에서 자신과 맞대면하는 일이다. 1780년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은 삼종형인 박명원을 따라 연행길에 동행했다. 그는 여정 도중 곳곳에서 당시 조선의 맨얼굴을 보았다. 망한 지 130년이 더 된 명나라의 연호를 아직도 고집하는 나라. 백이 숙제의 사당을 지날 때면 우정 싸 가지고 간 고사리나물을 먹고 사당에 참배하며 그 절의를 기리는 사람들. 우리를 돕다가 망했으니, 청을 무찔러 명나라에 대한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얼핏 보아 당당한 북벌(北伐)의 논리. 사람들은 그들의 발전한 문물은 오랑캐 냄새가 난다며 굳이 외면한다. 대신 전국시대 연나..

책 읽는 소리

[정민의 세설신어] 책 읽는 소리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09.06.25 22:02 | 수정 2009.06.25 23:32 사랑채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자던 소년은 새벽마다 목청을 돋워 읽으시던 고문의 가락을 들었다. 눈을 감으면 그 소리는 어제 들은 듯 새록새록 평생을 따라다녔다. 구순의 한학자 손종섭 선생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다. "'백이열전' 읽은 것을 직접 녹음해두고, 밥 먹을 때도 듣고 책 보면서도 들었지. 자꾸 듣다 보면 글이 저절로 외워졌어. 의미는 늘 소리를 뒤따라왔네. 소리를 내서 읽어보면 대번에 좋은 글인지 나쁜 글인지 알 수가 있지. 좋은 글은 글자 하나하나가 빳빳이 살아 있고, 나쁜 글은 비실비실 힘이 없어 읽어도 소리가 붙질 않는다네." 지금은 병상에 누워 계신 김도련 선..

[8] 기(機)

[정민의 세설신어] [8] 기(機) 정민 한양대교수·고전문학 입력 2009.06.18 23:32 | 수정 2009.06.23 09:48 기(機)는 목(木)과 기(幾)를 합한 글자다. 복잡한 장치로 된 기구를 말한다. 원래는 쇠뇌를 발사하는 방아쇠를 뜻했는데, 나중에는 이런저런 기계장치를 가리키는 말로 썼다. 이 글자가 들어간 어휘를 보면 대부분 이것과 저것이 나뉘는 지점과 관련된다. 기계장치에 방아쇠를 당기면 순간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변화는 예측이 어렵다.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판단을 하느냐가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 기(機)는 미세해서 기미(機微)요, 비밀스러워서 기밀(機密)이다. 하늘의 기밀은 천기(天機)니 이것은 함부로 누설하면 안 된다. 기를 잘못 다루면 위험해서 위기(危機)가 온다. 하..

[85] 수문심인(修文深仁)

[정민의 세설신어] [85] 수문심인(修文深仁)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0.12.16 23:31 650년, 재위 4년째를 맞은 신라의 진덕여왕은 당나라 고종 황제의 성덕(聖德)을 칭송하고 당나라의 태평을 송축하는 시를 지어 직접 비단에 수놓아 바쳤다. 이른바 '치당태평송(致唐太平頌)'이다. 649년부터는 아예 중국의 의관문물을 그대로 따랐다. 북쪽 고구려와 서쪽 백제의 위협 아래 놓인 신라로서는 당과의 협력관계가 절실했다. 시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한다. "대당(大唐)이 큰 왕업 활짝 여시니, 우뚝하다 황제의 꾀 성대하구나. 전쟁 그쳐 군사는 안정이 되고, 문(文)을 닦아 백왕(百王)을 계승하셨네. 천하 통일 은택 베풂 우뚝도 하고, 다스림은 법도를 체득하셨지. 어짊 깊어 해와 달과 조화 이..

[39] 한겨울의 공부방

[정민의 세설신어] [39] 한겨울의 공부방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0.01.21 23:03 매운 추위에 잔뜩 움츠려 있다가, 벽에 언 얼음에 얼굴이 비치던 이덕무(李德懋·1741~1793)의 겨울 공부방 풍경을 문득 생각했다. 방구들의 그을음에 눈이 시고, 바닥의 물그릇은 꽁꽁 얼기 일쑤였다. 입김을 불면 성에가 되어 이불깃이 늘 버석거렸다. 창틈으로 흩날린 눈가루가 벼루 위로 떨어졌다. 너무 추워 '한서(漢書)' 한 질을 비늘처럼 이불 위에 늘어놓고, '논어'를 병풍처럼 세워 동사(凍死)를 면하기도 했다.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웃고 떠드는 소리에 자신의 가난한 삶이 너무도 참담해서, 미쳐 발광하여 뛰쳐나갈 뻔한 순간도 있었다. 그러다 문득 자세를 가다듬고 들보를 우러러보며 다짐했다. "명..

[7] 다산의 학술논쟁

[정민의 세설신어] [7] 다산의 학술논쟁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09.06.11 22:19 | 수정 2009.06.18 11:16 서울 종로구 인사동 공화랑에서 10일부터 조선시대 서화감상전 〈안목(眼目)과 안복(眼福)〉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에 다산 정약용 선생의 친필 서화 다섯 점이 처음 공개되었다. 필자는 전시에 앞서 이들 작품을 검토하는 안복을 누렸다. 이 중 16장 32쪽에 달하는 〈송이익위논남북학술설(送李翊衛論南北學術說)〉이란 글이 흥미로웠다. 옷감과 종이를 잘라 써내려 간 다산 특유의 필치도 압권이지만, 내용이 더 인상적이었다. 1822년 다산이 61세 때 쓴 글이다.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의 관원을 지낸 이익위(李翊衛)는 영남의 남인이었다. 그는 65세 때 낙향하는 길에 ..

[6] 부풍향차보(扶風鄕茶譜)

[정민의 세설신어] [6] 부풍향차보(扶風鄕茶譜)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09.06.04 23:38 | 수정 2009.06.05 09:23 18세기 실학자 황윤석(黃胤錫·1729~ 1791)은 자신의 일기 《이재난고(��齋亂藁)》에서 당시 부안현감으로 있던 이운해(李運海·1710~?)가 1755년경에 지은 《부풍향차보(扶風鄕茶譜)》란 책을 소개했다. 이운해는 그때까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이웃 고창 선운사의 야생차를 따와서, 증세에 따라 향약(香藥)을 가미해 모두 7종의 약용 향차(香茶)를 개발했다. 부풍은 전북 부안의 옛 이름이다. 《부풍향차보》는 흔히 차에 관한 최초의 저술로 꼽히는 초의의 《동다송》보다 무려 70여년이나 앞선 의미 있는 저작이다. 〈다본(茶本)〉·〈다명(茶名)〉·〈제법..

[20] 중국판 동의보감

[정민의 세설신어] [20] 중국판 동의보감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09.09.10 22:18 | 수정 2009.09.10 23:30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중국에서 출판된 '동의보감(東醫寶鑑)' 이야기가 나온다. 25책으로 간행된 이 책은 판본이 몹시 아름다웠다. '동의보감'은 의서로서 콘텐츠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중국에서도 오랫동안 큰 인기를 끌었다. 연암은 책이 몹시 탐나서 꼭 사고 싶었지만 5냥이나 되는 책값 마련이 어려워, 결국 능어(凌魚)란 이가 중국판 앞에 쓴 서문만 베껴 써오고 만 것을 두고두고 애석해했다. 능어는 서문에서, 구석진 외국 책이 중국에서 행세하게 되었으니 담긴 이치가 훌륭하다면 땅이 먼 것이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했다. '동의보감'은 내경(內景)을 먼저 서..

[5] 사천왕사와 문두루(文豆婁) 비법

[정민의 세설신어] [5] 사천왕사와 문두루(文豆婁) 비법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09.05.29 03:21 | 수정 2009.06.05 09:23 668년(문무왕 8년), 신라의 운명은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었다. 고구려를 멸망시킨 기쁨도 잠깐, 당나라 군대는 전쟁이 끝나고도 돌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내친김에 신라까지 쳐서 아예 한반도 전체를 복속시킬 기세였다. 문무왕은 기습적인 선제공격으로 이를 막았다. 당나라가 배은망덕이라며 발끈했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670년 당 고종은 장수 설방(薛邦)에게 50만 대군을 주어 신라를 침공케 했다. 대군의 침공을 앞두고 전전긍긍하던 왕에게 명랑(明朗) 법사는 낭산(狼山) 남쪽 신유림(神遊林)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창건하고 법도량을 베풀 것을..

[4] 백운동 원림(園林)

[정민의 세설신어] [4] 백운동 원림(園林) 정민 한양대교수·고전문학 입력 2009.05.21 23:04 | 수정 2009.05.26 10:48 다산은 1812년 가을, 유배지의 답답한 마음도 풀 겸 해서 제자 초의(草衣)와 윤동(尹�h)을 데리고 월출산 나들이를 한다. 옥판봉 아래 백운동 이씨의 집에서 하루 묵고 돌아와, 그곳의 12승경을 시로 읊었다. 그림 잘 그리는 초의를 시켜 '백운동도(白雲洞圖)'를 그리게 했다. 이 시와 그림을 묶은 '백운첩(白雲帖)'이 남아 있다. 다산은 이 서첩의 끝에 역시 초의를 시켜 '다산초당도'를 남겼다. 담양의 소쇄원과 함께 강진의 백운동은 우리 전통 원림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몇 안 되는 별서(別墅)다. 민간 정원으로는 특이하게 집 옆을 흐르는 시냇물을 인위적으..

[3] 과골삼천(骨果骨三穿)

[정민의 세설신어] [3] 과골삼천(骨果骨三穿)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09.05.14 22:17 | 수정 2009.05.22 16:50 다산 정약용이 흑산도의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 "여기에도 내왕하는 소년이 몇 있고 배움을 청하는 어린아이도 몇 됩니다. 모두 양미간에 잡털이 무성하고, 온몸에 뒤집어쓴 것은 온통 쇠잔한 기운뿐입니다." 다산은 이런 지리멸렬한 코흘리개들을 가르쳐 중앙 학계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대단한 학자로 성장시켰다. 다산과 그의 제자들은 달리 예를 찾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한 드림팀이었다. 다산의 진정한 위대성은 유배 18년간 이룩한 500권의 저술보다, 그가 제자들의 성격에 맞게 장점을 길러주고 용기를 북돋워 스스로 떨쳐 일어나게 만든 참스승이었다는 점에 있다. 다산..

[2] '공공의 적' 비둘기

[정민의 세설신어] [2] '공공의 적' 비둘기 한양대교수·고전문학 입력 2009.05.07 22:38 | 수정 2009.05.22 09:57 18세기 이후 조선에 불어닥친 웰빙 붐을 타고 한동안 관상용 비둘기 사육이 성행했다.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몇년 전 발견된 유득공(柳得恭·1748~1807)의 '발합경'은 비둘기 사육에 필요한 정보를 갈래별로 정리해둔 책이다. 생김새에 따라 이름도 갖가지다. 전신이 흰 전백(全白)이, 승려의 가사 빛깔 같은 중[僧], 목에 염주를 두른 듯한 전항백(纏項白), 까막점이 있는 점오(點烏) 등 23종이나 되는 이름을 소개했다. 비둘기 사육은 당시 재테크의 한 방편으로 인기가 있었던 듯하다. 최근 번역 출간된 이옥(李鈺·1760~1815)의 '백운필(白雲筆)'에도 새장 ..

[1] 남계우와 석주명

[정민의 세설신어] [1] 남계우와 석주명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09.04.30 22:57 | 수정 2009.05.22 16:51 조선 후기의 서화가인 남계우(南啓宇·1811~1888)는 나비 그림을 잘 그려 '남나비'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졌다. 그의 집은 한양 도성 안 당가지골(현 한국은행 뒤편)에 있었다. 집에 날아든 나비를 평상복 차림으로 동대문 밖까지 쫓아가 기어이 잡아서 돌아왔다는 일화도 있다. 남계우는 수백 수천 마리의 나비를 잡아 책갈피에 끼워놓고 그림을 그렸다. 실물을 창에다 대고, 그 위에 종이를 얹어 유지탄(柳枝炭)으로 윤곽을 그린 후 채색을 더했다. 노란색은 금가루를 쓰고, 흰색은 진주가루를 사용했다. 그의 그림은 워낙 정확해서 근대의 생물학자 석주명(1908~1950)은 무..

[528] 성일역취 (醒日亦醉)

[정민의 世說新語] [528] 성일역취 (醒日亦醉)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9.07.18 03:10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예전 한 원님이 늘 술에 절어 지냈다. 감사가 인사고과에 이렇게 썼다. ‘술 깬 날도 취해 있다(醒日亦醉).’ 해마다 6월과 12월에 팔도 감사가 산하 고을 원의 성적을 글로 지어 보고하는데, 술로 인한 실정이 유독 많았다. “세금 징수는 공평한데, 술 마시는 것은 경계해야 마땅하다(斛濫雖平, 觴政宜戒).” “잘 다스리길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이 술버릇을 어이하리(非不願治, 奈此引滿).” 정약용이 ‘다산필담(茶山筆談)’에서 한 말이다. '상산록(象山錄)'에서는 또 이렇게 썼다. '술을 즐기는 것은 모두 객기다. 세상 사람들이 잘못 알아 맑은 운치로 여긴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