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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세설신어

[175] 오교삼흔 (五交三釁)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1. 26. 14:58

[정민의 세설신어]

[175] 오교삼흔 (五交三釁)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9.11. 23:30
 
 
 
 
 

갑자기 오랜 우정의 절교가 세간의 화제가 되는 모양이다. 중국 남조(南朝) 때 유준(劉峻·463~522)의 광절교론(廣絶交論)이 생각난다. 세리(勢利)를 좇아 우정을 사고파는 당시 지식인들의 장사치만도 못한 세태를 풍자한 글이다.

먼저 우정에는 소교(素交)와 이교(利交) 두 종류가 있다. 비바람 눈보라의 역경에도 조금의 흔들림이 없는 것은 현인달사(賢人達士)의 소교, 즉 변함없는 우정이다. 속임수와 탐욕을 바탕에 깔아 험악하기 짝이 없고 변화무쌍한 것은 제 이익만 추구하는 이교다. 소교가 사라지고 이교가 일어나면서 천하는 어지러워지고 천지의 운행이 조화를 잃게 되었다.

이교는 장사치의 우정이다. 여기에도 다른 듯 같은 다섯 가지 유형이 있다. 첫 째가 세교(勢交)다. 권세 있는 사람에게 바싹 붙어서 못 하는 짓이 없고 안 하는 짓이 없는 사귐이다. 사람이 아니라 그의 권세를 노린다. 둘째는 회교(賄交)다. 재물 있는 자에게 찰싹 빌붙어 온갖 감언이설로 그 떡고물을 주워 먹으려는 우정이다.

셋째가 담교(談交)다. 권력자의 주변을 맴돌면서 입으로 한몫 보려는 행태다. 그 혀끝에서 무더위와 한파가 극을 달린다. 입으로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넷째는 궁교(窮交)다. 궁할 때 동병상련으로 서로 위해주는 듯하다가 한순간에 등 돌려 제 잇속을 차리는 배은망덕의 사귐이다. 다섯째는 양교(量交)다. 말 그대로 근량(斤量)을 달아서 재는 우정이다. 무게를 달아 괜찮겠다 싶으면 그 앞에서 설설 기고, 아니다 싶으면 미련 없이 본색을 드러낸다. 저마다 달라 보여도 속심은 한가지다.

이 다섯 가지 이교에서 다시 삼흔(三釁), 즉 세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는 '패덕진의(敗德殄義), 금수상약(禽獸相若)'이니 덕과 의리를 무너뜨려 금수(禽獸)와 같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난고이휴(難固易攜), 수송소취(讎訟所聚)'로 우정을 굳게 하기는커녕 쉬 떨어져 마침내 원수가 되어 서로 소송질이나 하는 것이다. 셋째는 '명함도철(名陷饕餮), 정개소수(貞介所羞)'다. 탐욕의 수렁에 빠져 뜻 있는 사람의 손가락질을 받게 됨이다. 애초에 이교로 만난 사이였다면 무슨 우정과 절교를 말하며 상대 탓을 하겠는가? 다만 끝까지 제 이익에 충실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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