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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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세설신어 185

[171] 도하청장(淘河靑莊)

[정민의 세설신어] [171] 도하청장(淘河靑莊)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8.14. 23:31 박지원의 '담연정기(澹然亭記)'에 도하(淘河)와 청장(靑莊)이란 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둘 다 물가에서 고기를 잡아먹고 사는 새다. 먹이를 취하는 방식은 판이하다. 도하는 사다새다. 펠리컨의 종류다. 도(淘)는 일렁인다는 뜻이니, 도하는 진흙과 뻘을 부리로 헤집고, 부평과 마름 같은 물풀을 뒤적이며 쉴 새 없이 물고기를 찾아다닌다. 덕분에 깃털과 발톱은 물론, 부리까지 진흙과 온갖 더러운 것들을 뒤집어쓴다. 허둥지둥 잠시도 가만 있지 않고 부지런히 먹이를 찾아 헤매고 다니지만 종일 고기 한 마리 못 잡고 늘 굶주린다. 청장은 해오라기의 별명이다. 신천옹(信天翁)으로 불린다. 이 새는 맑..

[170] 감취비농 (甘脆肥濃)

[정민의 세설신어] [170] 감취비농 (甘脆肥濃) 정민 /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8.07. 23:31 송대 마단림(馬端臨)이 말했다. "우리의 도는 괴로운 뒤에 즐겁고, 중생은 즐거운 후에 괴롭다."(吾道苦而後樂, 衆生樂而後苦) 묵자(墨子)가 말했다.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고자 하는 바를 얻는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하기 싫은 것을 면한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爲其所難者, 必得其所欲. 未聞爲其所欲, 而能免其所惡者也) 간결한 말 속에 통찰이 빛난다. 고통 끝에 얻은 기쁨이라야 오래간다. 좋은 것만 하려 들면 나쁜 것이 찾아온다. 괴롭고 나서 즐거운 것은 운동이 그렇고, 학문이 그렇다. 처음엔 몸이 따라주지 않고, 공부가 버겁다. 피나는 노력이 쌓여야 안 되는 게 없..

[169] 심장불로 (深藏不露)

[정민의 세설신어] [169] 심장불로 (深藏不露) 정민 한양대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7.31. 23:28업데이트 2012.08.01. 01:59 초나라 장왕(莊王)이 즉위했다. 첫마디가 이랬다. "간언은 용서치 않는다." 즉시 국정은 내팽개치고 3년 넘게 주색잡기에 빠졌다. 보다 못한 오거(伍擧)가 돌려 물었다. "초나라 서울에 새 한 마리가 있습니다. 3년을 울지도 않고 날지도 않습니다. 무슨 새일까요?" "보통 새가 아니로구나. 3년을 안 날고 안 울었으니 한 번 날면 하늘로 솟고, 한 번 울면 사람을 놀라게 하리라." 오거가 빙긋 웃고 물러났다. 왕은 그 뒤로도 계속 방탕했다. 이번엔 대부 소종(蘇從)이 직간했다. 왕은 화를 내며 죽고 싶으냐고 소리 질렀다. 소종은 초나라가 이대로 멸망의 ..

[168] 상생패신(傷生敗身)

[정민의 세설신어] [168] 상생패신(傷生敗身)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7.24. 23:05 정내교(鄭來僑·1681~1757)가 '용존와기(用存窩記)'에서 말했다. "명아주잎과 콩잎 같은 거친 음식은 정신을 편안하게 하고 병을 적게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반드시 기름진 음식만 즐긴다. 바른길은 걷기도 편하고 엎어질 일이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굳이 지름길로만 가려든다. 끝내 삶을 손상시키고 몸이 망가지는 데 이르는 것은 모두 이것 때문이다. (藜藿可以寧神少病, 而必嗜膏腴. 正路可以安步無躓, 而必之捷徑. 卒至於傷生敗身者皆是.)" 남보다 앞서 가려니까 지름길만 골라 간다. 기름진 음식만 찾다가 각종 성인병에 시달린다. 상생패신(傷生敗身), 삶을 망가뜨리고 몸을 망치는 주범은 기름진 음..

[167] 교정교태(交情交態)

[정민의 세설신어] [167] 교정교태(交情交態)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7.17. 23:27업데이트 2012.07.31. 21:53 한(漢)나라 때 사람 하규(下邽) 적공(翟公)이 정위(廷尉) 벼슬에 있었다. 빈객이 문 앞을 늘 가득 메웠다. 자리에서 밀려나자, 그 많던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겨 대문 앞에 참새 그물을 칠 정도였다. 얼마 후 그가 원직에 복귀했다. 빈객의 발길이 다시 문 앞에 줄을 섰다. 적공은 말없이 대문 앞에 방문을 써 붙였다. "한 번 죽을 뻔하고 한 번 살아나자 사귐의 정을 알겠고, 한 번 가난하다가 한 번 부자가 되매 사귐의 태도를 알겠다. 한 번 귀하게 되고 한 번 천하게 되자, 사귐의 정이 드러났다. (一死一生, 乃知交情. 一貧一富, 乃知交態. 一貴一賤, ..

[166] 풍중낙엽 (風中落葉)

[정민의 세설신어] [166] 풍중낙엽 (風中落葉)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7.10. 23:29 윤원형(尹元衡·?~1565)은 명종 때 권신이었다. 중종의 비 문정왕후의 동생이다. 명종 즉위 후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을 틈타 권력을 독점했다. 서울에 큰 집만 10여 채였고, 금은보화가 넘쳐났다. 의복과 수레는 임금의 것과 같았다. 본처를 내쫓고 첩 난정(蘭貞)을 그 자리에 앉혔다. 20년간 권좌에 있으면서 못하는 짓이 없었다. 그가 탄핵을 받아 실각하자 백성들이 돌멩이와 기왓장을 던지며 침을 뱉고 욕을 했다. 그는 원한을 품은 자가 쫓아와 해칠까 봐 이곳저곳 숨어다니면서 분해서 첩을 붙들고 날마다 엉엉 울었다. 난정은 전처 김씨를 독살하기까지 했다. 고발이 있은 후 금부도사가 왔다는 잘못..

[165] 심원의마(心猿意馬)

[정민의 세설신어] [165] 심원의마(心猿意馬)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7.03. 23:31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사도세자의 문집 '능허관만고(凌虛關漫稿)'를 읽는데 '심(心)'이란 제목의 시에 눈이 멎는다. "날뛰는 맘 억누르기 어려워 괴롭거니, 들판 비워 기(旗)를 들면 적이 침범 못하리. 묵은 거울 다시 갊도 원래 방법 있나니, '경재잠(敬齋箴)'을 장중하게 일백 번 외움일세.(心猿意馬苦難禁, 淸野搴旗敵不侵. 古鏡重磨元有術, 百回莊誦敬齋箴.)" 그는 마음이 괴로운 사람이었다. 가눌 길 없는 마음을 추스르기에 힘이 겨웠던 모양이다. 먼저 1·2구. '날뛰는 맘'의 원문은 '심원의마(心猿意馬)'다. 마음은 원숭이처럼 제멋대로 돌아다니고, 생각은 미친 말인 양 길길이 날뛴다. ..

[164] 끽휴시복 (喫虧是福)

[정민의 세설신어] [164] 끽휴시복 (喫虧是福)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6.26. 23:33 정승 조현명(趙顯命·1690~1752)의 아내가 세상을 떴다. 영문(營門)과 외방에서 부의가 답지했다. 장례가 끝난 후 집사가 물었다. "부의가 많이 들어왔습니다. 돈으로 바꿔 땅을 사 두시지요." "큰아이는 뭐라던가?" "맏상주께서도 그게 좋겠다고 하십니다." 조현명이 술을 취하도록 마시고 여러 아들을 불러 꿇어 앉혔다. "못난 놈들! 부의로 들어온 재물로 토지를 사려 하다니, 부모의 상을 이익으로 아는 게로구나. 내가 명색이 정승인데 땅을 못 사 굶어 죽기야 하겠느냐? 내가 죽으면 제사 지낼 놈도 없겠다." 매를 몹시 때리고 통곡했다. 이튿날 부의로 들어온 재물을 궁한 일가와 가난한 벗..

[163] 난득호도 (難得糊塗)

오피니언전문가칼럼 [정민의 세설신어] [163] 난득호도 (難得糊塗)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6.19. 23:34 명나라 장호(張灝)가 고금의 경구(警句)를 새긴 '학산당인보(學山堂印譜)'에 '총명하지 않을수록 더 쾌활해진다(越不聰明越快活)'란 구절이 나온다. 똑똑한 사람들은 걱정이 많다. 한 번 더 가늠해 한 발 앞서 가려니 궁리가 늘 많다. 이겨도 마음이 개운치가 않다. 금세 누가 뒷덜미를 채갈 것만 같다. 좀 모자란 바보는 늘 웃는다. 이래도 웃고 저래도 웃는다. 얻고 잃음에 무심해야 쾌활이 찾아든다. 여기에 얽매이면 지옥이 따로 없다. 똑똑한 사람이 그 똑똑함을 버리고서 쾌활을 얻기란 실로 어렵다. 똑똑하면 꼭 똑똑한 티를 내야 하고, 조금 알면 아는 체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

[162] 재여부재 (材與不材)

[정민의 세설신어] [162] 재여부재 (材與不材)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6.12. 23:02업데이트 2012.06.13. 11:44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한영규씨의 '조희룡과 추사파 중인의 시대'(학자원)에 조희룡(趙熙龍·1789~ 1866)의 '향설관척독초존(香雪館尺牘鈔存)'이 실려 있다. 운치 있는 짧은 편지글 모듬이다. 그 중 한 편인 '계숙에게(與季叔)'란 글이다. '돌의 무늬나 나무의 옹이는 모두 그 물건의 병든 곳이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아낍니다. 사람이 재주를 지님은 나무나 돌의 병과 한가지입니다. 자신은 아끼지 않건만 다른 사람이 아끼는 바가 됩니다. 하지만 오래되면 싫증을 내니, 도리어 평범한 돌이나 보통의 나무가 편안하게 아무 탈 없는 것만 못하지요. ..

[161] 과언무환(寡言無患)

[정민의 세설신어] [161] 과언무환(寡言無患)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6.05. 23:08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급한 사람은 책을 읽거나 남이 말하는 것을 들을 때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질문을 던진다. 어떤 사람이 '맹자'의 공손추 장을 배우고 있었다. '맹자께서 평륙(平陸)에 가서 그곳의 대부에게 말했다'는 대목이 나오자, 대뜸 스승에게 물었다. "선생님! 평륙 대부는 이름이 전해지지 않나요?" 선생님이 말했다. "좀 더 읽어 보아라." 더 읽자 '이것은 거심(距心)이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가 다시 물었다. "이름은 알겠는데, 성은 뭡니까?" "그 밑의 글을 더 읽어 보렴." '그 죄를 아는 자는 오직 공거심(孔距心)이다.' 그가 그만 머쓱..

[160] 세간지락(世間至樂)

[정민의 세설신어] [160] 세간지락(世間至樂)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5.29. 23:00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고재식 선생이 구해 복사해준 『아고수집(雅古搜輯)』은 추사와 다산 등의 친필 필첩과 화론(畵論)을 옮겨 적은 소책자다. 소치(小癡) 허련(許鍊)의 인장이 찍혀있다. 읽다가 다음 글에서 눈길이 멎었다. “빈천이 부귀만 못하다는 것은 속된 말이다. 부귀 보다 빈천이 낫다는 것은 교만한 말이다. 가난하고 천하면 입고 먹는 마련에 분주하고, 아내와 자식이 번갈아 원망한다. 어버이를 봉양하지도 못하고, 자식을 가르칠 수도 없다. 무슨 즐거움이 있겠는가? 다만 전원이 그나마 넉넉하고, 언덕과 골짜기가 기뻐할만 하다. 물에서는 고기와 새우를 벗 삼고, 산에서는 고라니와 사슴을 ..

[159] 시비이해 (是非利害)

[정민의 세설신어] [159] 시비이해 (是非利害)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5.22. 23:02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다산이 아들 정학연에게 준 편지 중 한 대목. "천하에는 두 가지 큰 저울이 있다. 하나는 시비(是非), 즉 옳고 그름의 저울이고, 하나는 이해(利害), 곧 이로움과 해로움의 저울이다. 이 두 가지 큰 저울에서 네 가지 큰 등급이 생겨난다. 옳은 것을 지켜 이로움을 얻는 것이 가장 으뜸이다. 그 다음은 옳은 것을 지키다가 해로움을 입는 것이다. 그 다음은 그릇됨을 따라가서 이로움을 얻는 것이다. 가장 낮은 것은 그릇됨을 따르다가 해로움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시비(是非)의 축과 이해(利害)의 축이 만나 네 가지 경우를 낳는다. 첫 번째는 시이리(是而利)다. 좋은 일을 ..

[158] 낭분시돌 (狼奔豕突)

[정민의 세설신어] [158] 낭분시돌 (狼奔豕突)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5.15. 23:03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다산이 영남 선비 이인행(李仁行)에게 준 친필 글씨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긴 글을 간추려 읽는다. "편당(偏黨)이 나뉘면 반드시 기이한 재앙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일만 논해보겠다. 동인과 서인이 나뉘자 기축년의 옥사가 일어났고, 남인과 북인이 갈리매 북인은 마침내 큰 살육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노론과 소론이 나뉘고 청남(淸南)과 탁남(濁南)이 갈라서자, 죽이고 치는 계교를 펼쳐, 밀치고 배척하여 떨치지 못하였다. 말의 날카로움은 창보다 예리하고, 마음자리는 가시 돋친 납가새나 명아주보다 험하다. 뜻을 같이하는 자는 부추겨서 드넓은 길로 내보내 돕고,..

[157] 색은행괴 (索隱行怪)

[정민의 세설신어] [157] 색은행괴 (索隱行怪)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5.08. 23:04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정조가 묻는다. "어이해 세상의 격은 점점 낮아지고, 학술은 밝아지지 않는가? 색은행괴(索隱行怪), 즉 은미한 것을 찾고 괴상한 일을 행하는 자가 있고, 한데 휩쓸려 같이 더러워지는 자도 있다. 천인성명(天人性命)의 근원에 대해 말은 하늘 꽃처럼 어지러이 쏟아지지만, 행동을 살펴보면 책 속의 의리와 맞아떨어지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일이 생기기 전에는 존양(存養)할 줄 모르고, 숨어 혼자 지낼 때는 성찰할 줄 모른다. 고요할 때는 어두워져서 단단한 돌처럼 되고, 움직였다 하면 제멋대로 굴어 고삐 풀린 사나운 말의 기세가 된다. 심지어 아무 거리낌 없는 소인이 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