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추프라카지마 우추프라카지마 박세연 1. 황씨는 책을 덮는다. 눈이 침침해진 탓도 있지만 왠지 모를 쓸쓸한 기분이 밀려들어서다. 전날 아파트 분리수거함에서 가져다 두었던 소설책 두 권을 들고 황씨는 밖으로 나온다. 더 이상 소설책을 읽지 않을 생각이다. 읽고 나면 이상하게도 머릿속에 온갖 잔.. 산문 읽기(소설과 수필) 2014.01.21
빈집 - 백정승 [창간 46주년 2011 중앙신인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작 [중앙일보] 입력 2011.09.19 01:28 / 수정 2011.09.19 08:02 아침 여덟시라고 못박았다, ‘정확히’를 강조하는 그의 콧수염은 움찔거렸다 빈집 - 백정승 [일러스트=김태헌]관리인은 내일 아침 여덟 시 정각이라고 못을 박았다. 움 아흐트 우어 6.. 산문 읽기(소설과 수필) 2013.11.23
우추프라카지마 단편소설 우추프라카지마 박세연 1. 황씨는 책을 덮는다. 눈이 침침해진 탓도 있지만 왠지 모를 쓸쓸한 기분이 밀려들어서다. 전날 아파트 분리수거함에서 가져다 두었던 소설책 두 권을 들고 황씨는 밖으로 나온다. 더 이상 소설책을 읽지 않을 생각이다. 읽고 나면 이상하게도 머릿속에.. 산문 읽기(소설과 수필) 2013.10.13
도베르만 도베르만 배성환 대부분의 애견가들은 파시스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파시스트라는 사실을 모른다. 수술대에 마취되어 있는 개들을 대할 때면 어김없이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집도하는 나는 범죄의 공모자쯤 될 것이다. 마취되어 누워있는 검은 개의 주인은 수술실 블라인드 틈으로 .. 산문 읽기(소설과 수필) 2013.06.29
난초 난초 조경선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20년 전, 난초가 내게 준 낡은 비단 지갑이었다.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수놓은 배꽃이 오래되어 보풀이 일었다. 그 보풀은 복숭아털처럼 반짝였다. 이제 지갑을 버려야 할 때가 왔다. 나와 그녀와의 특별한 관계, 그것 때문에 그녀가 준 지갑을 버리.. 산문 읽기(소설과 수필) 2013.06.06
따뜻한 봄날 /이재백 따뜻한 봄날 이재백 적막강산이란 게 따로 없는 모양이다. 내가 사는 이 골짝을 두고 한 말이 분명한 모양이다. 예부터 골짝나라 사람들이라고 심심할 적마다 농담조로 조롱되기 일쑤인 이 곳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이런 생각에 잠기게 되면 곧장 의기소침해진다. 한 마디로 맥조차 풀려.. 산문 읽기(소설과 수필) 2013.02.24
우연론과 인과론 우연론과 인과론 김연경 1. 삼촌의 귀향에 대한 얘기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집을 아주 예술적으로 지어 놨더라.” 이런 말로 아빠는 운을 뗐다. 그 예술적인 집을 짓느라 6천만 원의 거금이 들어갔단다. 아이러니는커녕 동경이 십분 배어나오는 어조였다. “사는 것도, 뭐라 카꼬, 억수.. 산문 읽기(소설과 수필) 2013.02.11
hello! stranger hello! stranger 백영옥 1 집은 삼중으로 잠겨 있었다. 그녀가 내게 준 집 열쇠는 모두 세 개였다. 첫 번째 열쇠를 돌려 흰색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문을 열면, 문고리가 망가진 문이 눈앞에 나타났다. 130년이나 됐다는 집의 문고리를 열면 삭은 나무 냄새가 코끝을 누르듯 스쳤다. 3층까.. 산문 읽기(소설과 수필) 2013.02.09
藝 藝 NO 59 심상대 “마녀는 다섯이었습니다. 알록달록한 고깔모자를 쓴 키 작고 오동통한 마녀가 초록색 페인트칠 한 나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 잠깐 숨을 멈추고 말끔하게 면도한 인중과 턱을 매만지던 산딸기는 다시 입술을 열었다. “황금색 머리칼을 가슴까지 드리운 채 구.. 산문 읽기(소설과 수필) 2013.01.20
인간 교육 인간 교육 윤보인 밤의 놀이터는 고요하다.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다. 밤의 놀이터는 불온하다. 지나가는 개조차 보이지 않는다. 놀이터에서 시소를 탄다. 그네를 탄다. 철봉에 매달린다. 거꾸로 매달려 세계를 바라본다. 멀리 교회의 불빛이 보인다. 놀이터 건너편에는 교회가 있다. 간.. 산문 읽기(소설과 수필) 2012.12.25
국가의 왼손 국가의 왼손 주원규 1 나의 하나뿐인 작은아버지, 그가 다시 돌아온 건 정확히 일주일 만이었다. 작은아버지, 그는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직접 현관문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요란법석한 소리에 못 이겨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문 밖의 그가 작은아버지일 거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 산문 읽기(소설과 수필) 2012.12.15
스물두 개의 침대 스물두 개의 침대 스물두 개의 침대 방현희 K의 연인이었던 그녀와 그렉안나가 만난 것은 K의 장례식장에서였다. 누군가 죽기엔 어울리지 않는 날씨였다. 더구나 두 여자가 들어서서는 안 되는 곳임을 알아채고 장례식장을 빠져나와 이마에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걷기엔, 더욱 어울리지 .. 산문 읽기(소설과 수필) 2012.11.24
불법주차 불법주차 김숨 벌써 20분 가까이 상훈은 골목을 헤매고 있었다. 차를 세워 둘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서였다. 골목들이 원체 불길에 오그라든 먹장어처럼 좁고 구불거리는 데다, 평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곳에는 차가 대 있었다. 어쩌다 차가 대 있지 않은 곳에는 큰 화분이나 ‘주.. 산문 읽기(소설과 수필) 2012.10.28
하루의 축 하루의 축 김애란 * 새벽.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깬 기옥 씨는 줄기차게 천장만 바라보다 부엌을 향해 모로 누웠다. 그러곤 다시 꼼짝 않고 어둠 속 한 점(点)을 응시했다. 동틀 무렵이라곤 하나 대낮에도 볕이 들지 않는 기옥 씨네 집은 여전히 깜깜했다. 이 시각 기옥 씨네 집에서 형체를 .. 산문 읽기(소설과 수필) 2012.10.21
민둥산 민둥산 김도연 그녀는 불쑥 나타났다. “약속을 지켜야지요?” “……무슨 약속?” “오 년 뒤에 애인이 없으면 나랑 결혼한다고 했잖아요!” “내가? 언제?” “우리가 헤어질 때.” “대체 무슨 소리야?” “나중에 발뺌할 거 같아서 녹음해 뒀어요. 들려 드릴게요.” 그는 녹음기에서 .. 산문 읽기(소설과 수필) 2012.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