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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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별이 들려주는 이야기(마음글) 341

[최영미의 어떤 시] [17] 기억하는가

[최영미의 어떤 시] [17] 기억하는가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입력 2021.04.26 00:00 | 수정 2021.04.26 00:00 기억하는가 우리가 처음 만나던 그 날. 환희처럼 슬픔처럼 오래 큰물 내리던 그 날. 네가 전화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네가 다시는 전화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평생을 뒤척였다. -최승자 (崔勝子 1952∼) 가장 아름다운 사랑 노래는 처참하게 부서진 가슴에서 나온다. “환희처럼 슬픔처럼”이라고 최승자 시인이 썼듯이 사랑의 환희 속에 이별의 예감 혹은 두려움이 1g은 들어있지 않나? 최승자의 어떤 시는 내게 충격이었다.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개 같은 가을’)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일찌기 나는’) ..

생태, 동태, 먹태 등 이름만 60가지

[아하! 이 음식] 생태, 동태, 먹태 등 이름만 60가지… 바다 따뜻해져 이제는 잘 안 잡혀요 입력 : 2021.01.19 03:30 명태 북어, 동태, 황태, 코다리, 노가리…. 어디선가 들어본 생선이죠? 우리 식탁에 자주 오르는 물고기인 이들은 모두 한 생선입니다. 바로 명태(明太)예요. 명태는 '세상에서 가장 이름이 많은 생선'이라고 합니다. 국립민속박물관 조사에 따르면 명태 이름이 무려 60가지나 되죠. 갓 잡아 올린 명태는 생태, 꽝꽝 얼리면 동태, 낚시로 잡으면 조태, 그물로 건져 올리면 망태, 말리면 북어, 얼었다가 녹았다를 반복해 노랗게 말리면 황태, 날씨가 따뜻해 물러지면 찐태, 하얗게 마르면 백태, 검게 마르면 먹태, 딱딱하게 마르면 깡태, 대가리를 떼고 말리면 무두태, 물기가 약간 ..

외손녀가 시집을 안 가고 있다

[김형석의 100세 일기] 외손녀가 시집을 안 가고 있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입력 2020.10.31 03:00 일러스트=김영석 며칠 전 배달된 편지 봉투를 열었다. 내가 다녀온 적이 있는 한 교회의 여성 신도가 보내온 글이다. ‘여성이 결혼하면 고생을 하고 종종 자존심도 상하니까 결혼할 필요가 없고 독신주의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딸과 친구들이 나누더라는 이야기였다. 딸의 얘기를 들은 어머니는 ‘2남 4녀를 키웠는데 가난했지만 온 가족이 사랑으로 고생을 함께하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는 내 강연 내용을 들려주었다고 했다. 딸이 수긍을 하더라는 사연이었다. 요사이는 경제적 여유가 있고 교육 수준이 높은 가정일수록 딸들이 결혼을 안 해서 걱정이다. 작지 않은 사회문제가 될 정도다. 내 동료 교수 둘도 ..

나훈아가 노래를 안하면

나훈아가 노래를 안하면 [중앙선데이] 입력 2020.10.10 00:30 |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대기자 누구는 “그동안 트로트를 무시했던 게 미안할 정도로 개념이 있었다”고 했고, 누구는 혀를 차며 “영감이 난닝구 입고 애쓴다”고 했다. 추석 연휴를 달궜던 나훈아 공연을 보고 난 소감이다. 앞엣것은 우파 대학교수의 촌평이었고, 뒤엣것은 좌파 출판인의 감상이었다. 국민 위해 죽은 대통령 없다 나훈아 말에 여야 아전인수 역사의 간신 되지 않으려면 제 할 일 해야 한다는 본뜻 누구나 자신의 노래 취향이 있고 가수에 대한 호불호도 있지만, 이 같은 관전평은 꼭 그런 것만으로 갈라진 건 아닌 게 분명하다. 그보다는 시대를 잃고 떠도는 이데올로기가 오지랖 넓게 끼어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각자 자기 진영의..

토종 봉선화 물봉선의 계절

[김민철의 꽃이야기] 토종 봉선화 물봉선의 계절 산 개울가마다 홍자색 물봉선… 고깔 모양 꽃통 앙증맞게 매달려 씨앗 강하게 튕겨내는 건 좋은 환경에 정착 바라는 모정 어릴 적 손톱 물들인 봉선화는 오래전에 귀화한 형제 식물 조선일보 입력 2020.09.24 03:00 지난 주말 과천 서울대공원 둘레길을 걸었는데, 개울가마다 어김없이 홍자색 물봉선 천지였다. 꽃색이 가장 진한, 물봉선이 가장 예쁠 때였다. 꽃줄기가 위쪽에서 고깔 모양 꽃통을 매달고 있는 독특한 구조다. 사람 손을 타지 않는 곳에서 살기 때문에 등산하다 물봉선을 만나면 비로소 깨끗한 숲에 들어선 것 같다. 물봉선은 봉선화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이다. 주로 산골짜기의 계곡 주변이나 습지에서 무리 지어 자란다. 높이는 60㎝ 내외인데 큰 것은 1..

아내가 했다 vs 아 내가 했다

아내가 했다 vs 아 내가 했다 문화일보 20200915 이신우 논설고문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장인의 과거 경력이 문제 되자 “그럼 사랑하는 아내를 버려야 하겠습니까?”라고 되받았다. 그런데 이 한마디가 민심에 꽂히면서 대통령 당선에도 크게 기여한 요인이 됐다. 그런 노 대통령이 2009년 자신의 뇌물 수수 사건이 사회문제로 번지자 “저의 집에서 받아 사용했다”면서 부인인 권양숙 여사를 지목했다. ‘대만판 노무현’으로 불렸던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 또한 권력을 잡기 전과 후의 발언이 노 대통령과 흡사했다. 그가 선거 유세 과정에서 휠체어에 앉아 있는 부인을 극진히 보살피는 장면이 여러 번 매스컴을 탔다. 아내를 두 손으로 안아 옮기는 사진 장면이 많은 국민을 감..

지금 어떤 꿈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지금 어떤 꿈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조선일보 입력 2020.09.12 03:00 일러스트=김영석 지난달에 있었던 일이다. “30대 젊은이들의 모임이 있는데 강사로 와 달라”는 청이었다. 내 막내딸이 60대 중반이다. 청중과 60~70년 격차를 생각하면서 좀 망설였다. 회원의 절반이 여자들인데 남자들보다 더 열성적이라고 해서 응하기로 했다. 70분 정도 강의를 하고 대화시간을 가졌다. 첫 질문이 “지금도 선생님께서는 어떤 꿈이 있는가”였다. 뜻밖의 얘기여서 당황스러웠으나 다음과 같은 설명을 했다. “꿈은 세월의 여유가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가능할 때 갖게 된다. 그런데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고, 나 자신을 위한 희망은 다 끝난 것 같다. 그래도 10년이나 50년 후에..

공존의 숲

공존의 숲 [중앙일보] 입력 2020.08.12 00:15 | 문태준 시인 “나는 설악산으로 찾아온 손님에게 경치를 설명하지 않는다. 말(有言)이나 침묵(無言)으로 설명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같이 산중을 걸으며 푸른 뫼 뿌리를 같이 보고, 백담계곡의 물소리를 같이 듣고, 같이 솔향기도 맡고, 옹달샘 물을 같이 마셔 보고,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바람을 직접 느낀다. 달이 뜨면 달을 보고, 별이 뜨면 별도 본다. 다음 날 아침에는 상쾌한 산중 공기도 마시고 다시 산 위로 흘러가는 구름도 쳐다본다. 그러다 보면 손님은 ‘아, 설악산은 정말 좋습니다’ 하고 감탄한다.” 생명과 공존 강조한 만해 사상 ‘남의 곤란은 나의 곤란’ 일깨워 수해 피해 함께하는 마음 나눠야 이 문장은 조오현 스님이 쓰신 것이다. 최근..

용은 개천이 아니라 알에서 태어난다

용은 개천이 아니라 알에서 태어난다 [중앙일보] 입력 2019.10.08 00:25 이혁진 소설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난 정말이지 너무 당혹스럽다. 개천에서 나든, 하천이나 바다에서 나든 중요한 것은, 용은 알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이다. 교육이 태생을, 재능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가? 리오넬 메시는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 진학한 것이 아니다. 이강인도 발렌시아 유소년팀에 고시를 보고 들어간 것이 아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대치동 일타 강사를 만나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것도 아니고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가 고려대를 나와서 그런 연기를 보였던 것도 아니다. ‘교육 = 계층이동 수단’ 강조돼 이제는 윤리적 역할 수행해야 타인 올라서기 위한 발판 아닌 나란히 설 수 있는 지반돼야 더 일..

이 시대의 이데올로기

이 시대의 이데올로기 [중앙선데이] 입력 2020.05.30 00:30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미국의 사회학자 대니얼 벨이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말한 것은 일종의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였다. 벨이 그 유명한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출간한 게 1960년이었고, 그가 말한 이데올로기란 다름 아닌 마르크스주의였다. 스탈린 사후 ‘해빙’ 무드가 조성되고 있었다고는 하나,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냉전의 한 축을 굳건히 떠받치고 있던 때였다. 객관적 진리 아닌 이데올로기 사회문제 해결 위한 방법일뿐 독선과 자기연민에 빠진 보수·진보 ‘공정의 옷’ 누가 입는지로 승부를 그 시절에 마르크스주의의 종말을 선언하기란 어지간한 학문적 성과와 용기로는 가능한 일이 아..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박정호의 문화난장]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중앙일보] 입력 2020.04.16 01:35 박정호 논설위원 지난 주말이다. 아파트 현관 돌계단에 벚꽃 하나가 사뿐히 내려앉았다. 곱디곱다. 짧은 생명을 다하고 내년 봄에 다시 만나자고 말을 거는 것 같다. 고개를 들었다. 전나무 뾰족한 잎새에도 벚꽃이 하나 걸렸다. 새하얀 꽃잎과 새파란 잎새의 절묘한 접속, 세상이 환해 보였다. 초속 5㎝, 시속은 180m 느리지만 곱디곱게 낙화 팬데믹에 멀어진 사람들 언제쯤 다시 가까워질까 스마트폰을 꺼냈다. 두 장면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나이가 든 때문일까, 아니면 코로나19 우울증 탓일까, 올봄 여러 SNS에 올라온 울긋불긋 꽃대궐에 자주 눈길이 멈췄다. 착시일지 모르겠으나 최근 온라인엔 유독 꽃 사진이 넘실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