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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함께 사는 사람들 - 나호열 시인께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9. 2. 4. 17:43

 

 

우리 함께 사는 사람들

                                                                                                        - 나호열 시인께

 

어디 쯤 잘 가고 계신지요? 무이산(武夷山) ‘작은 문학관’에서 우주를 향해 편지를 씁니다. ‘저녁에 닿기 위하여 새벽에 길을 떠난다 ’ 선배의 단 한줄 시 <집과 무덤>으로 마음의 실마리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1974년 어느 가을 날 손에 들어온 73학번 양경덕 이철민 나호열 3인 시집 『활(活)』 과 건국문단 사화집 『표상(表象)』 의 활자들이 오늘 긴 잠에서 깨어나 눈을 반짝입니다. 친목으로 만나는 게 아니고, 좋은 글을 써야 문인이다. 늘 그렇게 말씀하셨고 1980년도 민주화의 봄, 채찍질의 결의를 다지며 ‘울림시’ 동인을 결성 첫 작품집으로 『우리 함께 사는 사람들』 (영학)에서 배문성 시인의 배려로 출간하였지요 . 감동이면 무겁고 ‘메아리’ 라면 감성적이다. 그런저런 까닭에 서문을 대신하여 독자들에게 썼던 편지를 다시 읽어봅니다

 

편지를 쓴다. 時間의 흐름을 타고 먼 外界로 날아갔다가 수취인 不明의 빨간 딱지를 가슴에 달고 되돌아오는 그런 편지를 쓴다.// 오늘도 우리는 탐욕스런 돼지가 되지 못하였으며 종로 거리에 쓰러진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될 수 없었으며 빵이나 사랑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였으며,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주지 않았으며, 가불이 허용되지 않았다. // 그러나 오늘도 뚫린 천장 아래서 우리는 꿈꾼다. 한 순간에 터져 버리는 화약을 꿈꾸며 우리의 힘줄은 힘차게 타오르고 있다// 외롭기 때문에, 즐겁기 때문에 詩를 쓴다. 우리의 시선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으며 자유로운 시각의 이동을 통하여 자연을 조망하고 이름 없는 事件들에 生命을 불어넣고 싶어한다.// 이 한 권의 책이 바람처럼 그대들의 손에 잡혀질 그때부터 우리와 함께 눈 앞에 보이지 않는 목적지를 향하여 걷기를 원한다// 여기 모인 글들은 노래가 아니며 촛불이 아니며 슬픔이 아니며 詩 그 자체도 아니다// 슬픔을 슬픔답게 기쁨을 기쁨이게 할 날개를 우리 스스로 달수는 없다// 앞으로도 하염없는 편지는 우리가 人間으로 남을 때 까지 계속 될 것이고 그때까지 우리의 어색한 자세도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중략)

 

그렇습니다. 에꼴화하기에는 시풍과 지향하는 세계가 다르고 섣부른 통합이나 조화를 생각하기보다 각자의 그 자리에서 격려하고 감사하였습니다. 두 번째 세 번 째 책에 판화로 함께 했던 홍선웅 작가의 『민중교육』 지 필화(筆禍)의 여파로 학교를 옮겨야 할 때, 경제적 어려움과 교통사고 건강 등의 어려움으로 굴곡진 삶에서 문학을 놓으려 할 때 격려와 믿음으로 일으켜 주셨습니다. 만해 한용운 시집 『님의 침묵』을 1년 여 함께 읽으며 시집 전체가 한 편의 長詩라는 것에 공감한 것도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 뿐이겠습니까?

 

선배님! 고맙습니다. 좋지 않은 소식도 있는 대로 적어봅니다. 산업화와 함께 사라진 백호(白虎) 자락, 개(dog)산, 호산(虎山)의 푸르름은 모래 먼지가 되어, 목을 더욱 아프게 하는데 고라니와 멧돼지는 마을로 내려와 긴장을 주며 올해는 눈이 귀해서 봄 가뭄을 걱정합니다. 위안이 되는 것은 어려서 재미없다고 물속에 내던졌던 <격몽요결> <동몽선습> <소학>을 다시 사다가 소리내어 읽고 붓으로 써보는데 깨달음이 있고 즐겁습니다. 『시학입문』 『실존주의』 이런 책들도 가깝게 두며. 좋아는 말은 ‘우리’ 그리고 ‘學生’ 선비의 자세를 지키려 합니다.

 

어머니를 동네에서 잘 보살펴 주셔서 전원의 행복을 누립니다. 좋은 삶을 이어가고자 올부터 경로당 총무를 맡았습니다. 산신(山神)께 엎드려 마을의 안녕과 우리 집 들깨 고추 농사가 풍년 들기를 빌었습니다. 이제 작은 일에도 우리 함께 사는 사람들 ( 김상우, 나호열, 박상훈, 양경덕,오창제, 조일영, 류환 ) 귀한 이름을 부르며 사람의 정을 나누려 합니다. 늘 강건하시며 삶 속에 햇볕이 담겨있기를 바랍니다. 여기는 진천군 광혜원면 會竹里 무이산(武夷山) 아래 국가대표 선수촌 옆 會安 마을, 堯舜峰이 책을 읽고 나뭇가지에서 실로폰 소리, 반석에 물이 흐르고 산꿩이 바람을 날립니다. 꽃 피는 봄 산책 삼아 진천에 오십시오. 꼬옥! .

 

* 『문학의 집 서울』: 문학인에게 띄우는 편지 2019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