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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손녀가 시집을 안 가고 있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0. 10. 31. 21:38

[김형석의 100세 일기]

외손녀가 시집을 안 가고 있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입력 2020.10.31 03:00

 

 

 

 

 

 

 

일러스트=김영석

며칠 전 배달된 편지 봉투를 열었다. 내가 다녀온 적이 있는 한 교회의 여성 신도가 보내온 글이다. ‘여성이 결혼하면 고생을 하고 종종 자존심도 상하니까 결혼할 필요가 없고 독신주의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딸과 친구들이 나누더라는 이야기였다. 딸의 얘기를 들은 어머니는 ‘2남 4녀를 키웠는데 가난했지만 온 가족이 사랑으로 고생을 함께하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는 내 강연 내용을 들려주었다고 했다. 딸이 수긍을 하더라는 사연이었다.

요사이는 경제적 여유가 있고 교육 수준이 높은 가정일수록 딸들이 결혼을 안 해서 걱정이다. 작지 않은 사회문제가 될 정도다. 내 동료 교수 둘도 막내딸에게 결혼을 그렇게 권하고 기대했는데 결국 결혼을 못 보고 세상을 떠났다. 그 딸들이 지금은 60대에 가까워지고 있으나 여전히 독신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 친구는 “대학원까지 다니게 한 것을 후회한다”고까지 말했다.

결혼에 관해서는 내 딸들도 같은 고민을 한다. 외손녀 하나는 의사가 되었는데 병원 일이 바쁘고 연구 과제가 있으니까 결혼할 생각이나 여유가 없는 것 같다. 다른 애는 명문 공대를 졸업하고 애플에 취직해 중견 간부가 되었다. 자기보다 낮은 직급의 남자 직원과 결혼하기도 그렇고 상급직 선배들은 모두가 유부남이라고 한다. 결혼 상대가 없다는 것이다.

내 딸들의 걱정과 초조한 마음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얼마 전 한 딸이 전화를 걸어왔다. “아버지! 우리 네 딸은 모두 30 전에 결혼을 했는데, 이보다 더 큰 효도가 없다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세요”라고 했다. 저희들이 좋아서 결혼을 하곤 나더러 칭찬을 하라는 속내 같아서 속으로 웃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부모에게는 딸들의 결혼이 효도이기는 했다.

 

 

어느 심리학자는 ‘정서적 안정이나 우아한 마음씨가 부족한 어머니의 성격 때문에 아버지가 겪는 고통을 보면서 자란 아들들은 자신도 모르게 여자 친구를 사귀기 힘들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아버지의 폭력이나 억압으로 어머니가 애태우는 것을 본 딸들은 아버지에 대한 공포심이 모든 남자들에게 전이되어 결혼을 주저할 뿐 아니라 동성애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어린 자녀들 앞에서는 부부 싸움도 삼가야 하고 다 자란 후에는 약간씩 공개해도 좋다는 것이다.

여러 가정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있다. 이기주의자는 가정이나 사회생활에 행복해지지 못한다. 사랑을 받아보지도 해보지도 못한 청소년들은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지 못한다. 어렸을 때는 사랑이 있는 가정에서 자라도록 부모와 어른들이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 자녀들이 결혼을 꺼리는 것은 사랑이 행복의 원천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서 사랑이 있는 고생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더 많은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살고 싶다. 불교는 ‘고해와 같은 인생’이라 하지만 사랑이 없는 인생이야말로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