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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했다 vs 아 내가 했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0. 9. 15. 17:47

아내가 했다 vs 아 내가 했다

문화일보 20200915

이신우 논설고문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장인의 과거 경력이 문제 되자 그럼 사랑하는 아내를 버려야 하겠습니까?”라고 되받았다. 그런데 이 한마디가 민심에 꽂히면서 대통령 당선에도 크게 기여한 요인이 됐다. 그런 노 대통령이 2009년 자신의 뇌물 수수 사건이 사회문제로 번지자 저의 집에서 받아 사용했다면서 부인인 권양숙 여사를 지목했다.

 

대만판 노무현으로 불렸던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 또한 권력을 잡기 전과 후의 발언이 노 대통령과 흡사했다. 그가 선거 유세 과정에서 휠체어에 앉아 있는 부인을 극진히 보살피는 장면이 여러 번 매스컴을 탔다. 아내를 두 손으로 안아 옮기는 사진 장면이 많은 국민을 감동하게 했다. 그의 당선 과정에 플러스가 됐음은 물론이다. 그랬던 천수이볜이 같은 해인 2009년 총통 재임 시절의 뇌물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이렇게 말했다. “뇌물도 아내가 받았고, 돈 관리도 아내가 해서 나는 모른다.”

 

대통령은 아니지만 한때 진보 좌파 진영에서 대통령감으로 추앙받던 조국 전 법무장관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장관 취임 직전에 가진 8시간에 걸친 기자간담회에서 이과 쪽 논문이라 몰랐다” “사모펀드 자체를 몰랐다는 등 모르쇠로 일관했다. 여기서 그쳤으면 다행이나, 그 역시 아내가 해서 몰랐다는 말로 간담회를 장식했다. 조국과 함께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김의겸 전 대변인은 어떤가. 지난해 3월 흑석동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대변인직에서 사퇴하면서 아내가 저와 상의하지 않고 투자한 것이라며 시류(時流)에 올라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으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이 된 김홍걸 의원이 지난 총선 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신고에서 10억 원가량의 서울 강동구 고덕동 아파트 분양권을 뺀 채 신고한 것으로 밝혀지자 역시 난 몰랐다는 투로 나오고 있다. ‘김 의원 측(?)’에 따르면 아내 임모 씨가 재산을 관리하기 때문에 김 의원은 분양권이 있는 줄 몰랐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뇌물 변명 이후 세간에서는 한때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를 패러디한 아내가했다라는 글이 유행했다. ‘아내가 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아 내가 했다는 것인지 헷갈리는 표현으로 일종의 야유였다. 갈수록 남자의 향기를 느끼기 어려운 세상이 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