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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내 가방 /정은희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12. 1. 22:29

내 가방

 

             정은희

 

 

무거운 것이 싫어서

힘들어서

가방을 바꿔본다

들었다 놨다

내용물을 바꿔본다

어제 무거웠던 가방은

오늘은 매지 않았다

오늘 무거웠던 가방은

내일은 매지 않을 것이다

연일 궁리하며

가벼움을 바라나

늘 가방은 무거웠다

지나고 보면 쓸데없는

참으로 쓸데없는 근심걱정이

늘 들어 있었다

 

언제 들어갔는지

빼놓았던 그리움, 부끄러움

언제 녹아들었는지

새소리, 바람 소리

눈물 한 방울까지

빠짐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가방을 연일 바꿔도

바람은 늘 가방 안을 채운다

비운 만큼 늘 가방 안을 채운다

길을 가다 가방을 열어본다

버릴 것이 없어

왜소해진 나는 무거워서 가라앉는다

풍경 속으로 기울어진다

 

-『48인 풍경을 말하다』, 전원문학시선 7 , 바움북스 ,2015. 10

 

정은희

부산 출생, 수도여자사범대학 국문과, 세종대학원 졸업

1983년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 시집 『쓸쓸한 곰팡이를 아십니까』

 

무엇인가를 잡기 위해서는 비어 있어야 하는 손이 그러하듯, 가방도 쓸모를 다하기 위해서는 비어 있어야 한다. 가방에서 유추되는 우리의 삶도, 마음도 그러하지만 아쉽게도 삶과 마음의 내용물은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기쁨과 즐거움만 가득 담고 싶지만 점령군처럼 자리를 치지하는 괴로움과 슬픔을 내놓기도 쉽지 않다.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에게는 식솔이, 부모에게는 자식이 결코 놓아버릴 수 없는 가방이다. 그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최소공배수는 형체도 없는 뼈저린 바람! 살아갈수록 무거워지는 가방 속에 가득 찬 바람 때문에 지구는 좀 더 기울어져 있다

나호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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