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첫사랑을 기억하는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12. 23. 10:24

 

소름  / 정은희

 

그냥

비어 있는 집이었습니다

가구 하나 없이 텅 빈 ......

그러자 기다림이 왔습니다

 

방안 가득 매미 소리가

들어왔습니다.

 

물결처럼 파도처럼 출렁이다가

잠시 고요해지면

창 밖의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집 안 가득 쏟아져 들어옵니다.

 

아하, 어쩌면 좋아요.

 

바람이 집안을 가득 채우네요.

 

무릎 세우고 벽에 기대어

그냥 그렇게, 그냥 있으니

비어있는 순간이

단 한순간도 없는 집이 보입니다.

 

텅 비어있어 꽈악 차 있는

 

                                               -  『42인 첫사랑을 말하다』 (전원문학시선 3, 바움북스 2013)

 

 

소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예상할 수 없었기에 어떤 준비도 필요하지 않은 그 순간 몸과 마음은 전율하는 것이다. 영혼이라는 집에 찾아온 파도와 바람은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배운 적도 없기에 연습도 할 수 없는 첫사랑이 찾아온 순간을! 텅 비어 있지 않으면 그 무엇도 틈입할 수 없지 않은가? '나'외의 또 하나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필요했던 꿈과 같았던 당신의 기다림은 아직도 유효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