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 / 정은희
그냥
비어 있는 집이었습니다
가구 하나 없이 텅 빈 ......
그러자 기다림이 왔습니다
방안 가득 매미 소리가
들어왔습니다.
물결처럼 파도처럼 출렁이다가
잠시 고요해지면
창 밖의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집 안 가득 쏟아져 들어옵니다.
아하, 어쩌면 좋아요.
바람이 집안을 가득 채우네요.
무릎 세우고 벽에 기대어
그냥 그렇게, 그냥 있으니
비어있는 순간이
단 한순간도 없는 집이 보입니다.
텅 비어있어 꽈악 차 있는
- 『42인 첫사랑을 말하다』 (전원문학시선 3, 바움북스 2013)
소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예상할 수 없었기에 어떤 준비도 필요하지 않은 그 순간 몸과 마음은 전율하는 것이다. 영혼이라는 집에 찾아온 파도와 바람은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배운 적도 없기에 연습도 할 수 없는 첫사랑이 찾아온 순간을! 텅 비어 있지 않으면 그 무엇도 틈입할 수 없지 않은가? '나'외의 또 하나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필요했던 꿈과 같았던 당신의 기다림은 아직도 유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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