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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빙어 / 김명림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12. 29. 20:27

빙어 / 김명림

 

우아한 모습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저 연꽃 좀 보아

시궁창 판잣집에 사는지 누가 알았겠어?

 

창자 쓸개 다 보여주고 후회하는 꼬락서니라니!

 

 

 연꽃은 불교에서는 물론이고 유교에서도 화중군자 花中君子라 하여 높이 받들어지는 꽃이다. 진흙 속에 몸을 묻고도 꽃도 향기도 우아하기만 하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시에 드러난 '연꽃'은 '겉멋'과 '체면'에 함몰되어, 이른바 외모지상주의로 달려가는 초라한 오늘날 우리들의 얼굴이다.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는 까닭은 "이 '연꽃'이 바로 내 모습이 아닌가?"하는 자괴감이 일어서이다. 그런데 이 시는 빙어 氷魚 의 제목을 달고 있다. 빙어는 강원도 어느 지역에 겨울이면 축제를 열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물고기이다. 빙(어름)이 들어가 있으니 얼마나 깨끗할까! 그래서 잡자마자 초고추장을 듬뿍 찍어 한 입에 넣으면 입안이 청정해지는 장면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최근의 풍설에 따르면 이 빙어가 유해물질로 오염된 물에서 자라나 축제장으로 팔려나간다고 한다. 더러운 물에서 산다고 몸까지 더럽다고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지만 섭생하는 이들에게는 찜찜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시인은 '연꽃'과 '빙어'의 통념을 깨고 우리의 맨 얼굴이 어디서 왔는가를 되묻고 있다. 결코 그 진흙탕과 더러운 물로 우리가 되돌아가자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자신의 태생이 진흙탕이고 더러운 물이었음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온갖 차별과 허위의식이 난무하는 삶 속에서 고민하는 연꽃, 작지만 떳떳한 빙어가 되는 꿈은 과연 허무맹랑한가?

 

 - 김명림 시집 어머니의 실타래( 『열린시학』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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