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가 담겨지지 않은 풍경은 없다
쌍계 雙磎
조영심
쌍계사 종소리 우네 덩, 덩
한 소리 밀어낼 때마다
당신에게 보낼 우표 같은
벚꽃 한 잎씩 떨어지는데
선창도 없고 매김소리도 없어
소리길 따라가며 디딜 울음마저 없는데
목쉰 새처럼 우네
나무는 곁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그 빈 자리를 보네 그러니
쌍계에 서 있으면 나도 나무네
오늘은 화무백일홍 꽃 잔치에
먼 날갯짓 새 같은 당신을 불렀으니
우리는 구름판을 건너서 삼십삼천을 돌아온 것이네
돌아와
파문도 없는 꽃바람 속에서
서로의 건너편만 자꾸 바라보는 것이네
서로의 건너편에서 사는 것이네
- 『소리의 정원』, 시산맥, 2015
때는 봄이고, 지리산 하동 언저리이겠다. 내가 아는 쌍계사는 논산에도 있고 저 남녘 진도 珍島에도 있다. 논산의 쌍계사엔 대웅전의 네 기둥의 자연스러움과 꽃살 창이 눈에 가득하고 진도의 쌍계사는 대웅전 앞의 동백나무와 요사체 뒷마당의 배롱나무가 기억에 남는다. 하동의 쌍계사는 조계종 25 본사중의 하나로 거찰인 까닭에 화개장터와 더불어 볼거리가 많은 절이다. 더불어 화개 십리 길은 벚꽃터널을 이루어 상춘객들의 발길이 넘쳐나는 곳이다.
화자 話者는 그 번잡의 틈 어디쯤에서 종소리를 듣고 있다. 하루에 두 번 타종이니 지금 듣는 종소리는 저녁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에 틀림이 없다. 지리산 그늘이 슬그머니 내려앉고 인적이 잦아드는 시간, 속절없이 화르르 떨어지는 벚꽃을 바라보니 그 떨어짐은 나무의 울음인지, 꽃잎의 울음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주체가 상실된 ‘디딜 울음’, 즉 생명이 뿜어내는 숨길 같은 제어되지 않는 슬픔일 뿐이다.
그렇다면 한 연으로 뚝 떼어놓은 ‘목쉰 새처럼 우네’의 주인은 누구인 것인가? 나무, 꽃잎, 종소리......이 문장으로 말미암아 앞의 연들은 화자의 심적 전경 全景인 동시에 전경 前景이 되고 이 문장을 이어받은 나머지 연들은 전경 속에 숨어들고 스며든, 기억의 편린이다. 함께 서 있었는데 어느새 사라져버린 빈 자리의 나무는 화자의 과거 속에서는 여전히 살아있는 나무이며 ‘먼 날갯짓 새 같은 당신’이다. 이승과 저승 사이, 과거와 현재 사이는 존재의 의미를 묻는 이에게 시공간을 초월한 또 하나의 세계이다.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실존 속에 ‘무 無’가 들어 있음을 ‘서로의 건너편에서 사는 것’이라고 읊조릴 때 봄은 또 저만치 발걸음을 옮겨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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