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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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이발소에 갔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7. 2. 21:51

이발소에 갔다

-아무도 말이 없다. 1

  김항배

장맛비는 계속 내리고 이발소에 갔다

징징쟁쟁재깍재깍징징

전기카터기 소리는 항상 힘이 있고

벽속에 붙은 TV가 혼자 시끄럽다

선풍기는 기둥처럼 서서 열심히 바람을 만들었다

 

아무도 말이 없다

벽 속에 또 벽이 있다

잘못된 관계를 입에 물고

냉소와 위선을 한 개비씩

말이 없다 말을 할 수가 없다

 

멀리 있는 사람들

뭉그러진 손가락과 부은 다리를

입에 물고 빈주머니를

상실과 자괴를 입에 물고

말을 할 수가 없다

아무도 말이 없다

 

장맛비는 계속 내리고

전기카터기소리는 항상 힘이 있다

징징쟁쟁재깍재깍징징

 

안녕히 가세요

전기카터기 소리

 

 

이 시대는, 아니 이 나라는 말의 목장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막말과 쌍욕, 책임지지도 못하는 허황된 약속,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자극적인 언사가 난무하는 이 세상에 그만 귀를 닫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한쪽에는 말문을 닫고 귀를 닫은 사람들이 산다. 무관심이라고, 방관이라고 비난 받을지 모르지만 먹먹한 침묵의 벽을 쌓고 사는 일이 오히려 편한 방편인 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발소에 갔다」 는 따뜻한 정이 단절된 채 실용적(?)으로 살아가는 풍경을 그리고 있다. 이발소에서 할 일이란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이나 흰 머리를 검게 염색하는 일, 이발사는 손님을 앉혀놓고 머리카락을 자르고 손님들은 각자 자리에 앉아 이발 순서를 기다릴 뿐이다. 저 혼자 떠드는 텔레비전, 맥없이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는 선풍기와 가위 대신 머리를 자르는 전기 카터기 소리가 적막하기 이를 데 없다. '징징쟁쟁재깍재깍징징' 불길한 주문 呪文 같기도 하고 헛소리 같기도 한 전기 카터기 돌아가는 소리는 저 혼자 '힘이 있다'. 말이 사라지고 대화가 상실된 이발소 풍경이 만장처럼 휘날리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