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복길 선창 /손수진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9. 1. 19:08

복길 선창

 

손수진

 

선창가 횟집 창가에 앉아

지는 노을을 바라보고 있으면

까닭 없이 눈물이 난다

울며 나는 바닷새 울음에

아릿한 슬픔 같은 것이 배어 있고

함께 온 사람들은 창밖으로 지는 해를 보며 탄성을 지르는데

목울대를 타고 올라오는 덩어리 같은 것이 있어

자꾸 쓴 소주를 목으로 넘긴다

사람들을 굴비처럼 엮어

차디찬 물속으로 밀어 버린 곳*

살고자 올라오는 사람들을 죽창으로 찍어내던

바다 위에 처연히도 붉은 노을이 걸리고

입술파란 사람들이 바다에서 걸어 나와

양지쪽에 모여 앉아 햇볕을 쬐고 있는 환영을 본다

술기운 탓인가 바닷새 울음 탓인가

갈매기는 바다에서 죽은 영혼을 물고 뭍으로 날아온다는

당신의 그 말 때문인가

- 『문학의식』 2017년 여름호 게재

 

위락 慰樂의 땅에 스민 아픔을 기억하다

나호열

그리 넓지도 않은 이 땅에 아름다운 곳이 얼마나 많은지, 길은 또 얼마나 편하게 뚫려 있는지 닿는 곳마다 사람들은 그들만의 추억을 만든다. 절경에 감탄하고 도처에 깔린 맛집에서 식도락을 만끽한다. 그런데 휴식과 힐링의 그 공간, 그들이 밟고 있는 이 땅에 스며들어있는 역사의 굴곡을 깨닫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시간을 끌고 가는 인간은 역사를 만들지만, 역사의 주인공인 민중은 역사책 속에 보이지 않는 민중으로만 남아 있을 뿐임을 반추하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남도 어드메쯤의 복길 선창은 낙조가 아름답고 해산물이 풍부하여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일 것이다. 그 곳 어느 횟집에서 화자 話者는 역사 책 속에 드러나지 않은 오래 전 이야기를 기억해 낸다. 인류 역사상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인간에 의해 자행된 전쟁은 보잘 것 없는 증오와 분노를 일으키며 살육을 서슴치 않았다. 왼쪽과 오른 쪽으로 갈라서서, 사랑을 내세운 종교를 내세우며, 보수와 진보의 헛 깃발아래서 서로가 선 善임을 내세우며 야만의 행태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었다. 화자 話者는 문득 반 세기 전에 이 땅에서 벌어졌던 불행했던 과거를 기억한다. 바다에 붉게 물든 노을을 바라보며 마시는 한 잔의 술이 화자의 슬픔을 고조시킨다. 민중은 예나 지금이나 고달프고 하찮은 존재에 불과한 것인가? 이 평화로운 어촌이 품고 있는 비극 悲劇이 또 다시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괴연 온당한 것인가? 그래서 다시 상기한다.

한국 전쟁 당시 주민 86명을 바다에 생매장 한 곳!

-『문학의식』 2017년 가을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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