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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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자연의 응시와 작은 깨달음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7. 29. 16:38

 

물의 나이

 

 

         황경순( 1960 ~ )

나이테는

나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산모롱이 웅크린

저수지에도 새겨진다

그러나 누구도

그의 나이를 알 수는 없었다

이따금

누군가 그의 가슴팍을

퐁당,하고 건드리면

그제야

살아온 날들을 풀어놓고

징처럼 울었다

모난 돌멩이를 던졌다고

거친 파문으로 응답하지않는 그

산 그림자, 쏟아지는 빗방울

망울망울 삭혀내었을 그에게선

겹겹의 물비린내가 뿜어져 나왔다

쉬임없는 바람에 물주름 찰랑거려도

늘 푸르게 일렁이는

그의 품속

오늘도 크고 작은 물길

묵묵히 받아들이며

헤아릴 수 없는 나이테

새겼다 지워내는 속울음

 

하늘이 들어와도 넘치지 않을

천 년의그 가슴

 

 

 

자연의 응시와 작은 깨달음

 

황경순 시인의 「물의 나이」를 읽는다. 시집 『물의 나이』 (시선 시인선. 078,2011.11)에 수록된 이 시는 서두르지 않고 시적 대상(오브제)을 바라보고, 섣불리 삶의 지혜를 예단하지 않으려는 시인의 낮은 전언이 충만해 있어 읽을 때마다 마음이 절로 풍성해진다. 늙음은 어쩔 수 없는 순리이지만 늙어가면서 증오와 원망이 커진다면 그 인생은 볼품 없고 가여운 것이리라.

아마 「물의 나이」의 배경인 저수지는 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노자나 장자 일지 모르겠다. 위학일익 위도일손 爲學日益 爲道日損 ( 배움은 덧붙여지는 것, 도를 깨침은 덜어내는것)의 ‘그것’이 삶이든, 사랑이든 ‘텅 빔:태허 太虛’는 저 물로 가득 찬 저수지의 묵언에 있다.

 

가던 길을 잃어 평상에 걸터앉은 이빨 빠진 노인에게 읍내 가는 길을 물었을 때 천진하게 웃던 그가 노자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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