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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편지] 발맘발맘 다가온 봄꽃의 경이로움 … 지금 이 순간의 풍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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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76번째 《나무편지》 ★
중부지방에서도 고로쇠나무 수액 채취를 시작했다는 뉴스가 눈에 들어옵니다. 지난 한 주 내내 바람 차가웠어도, 봄은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왔습니다. 남녘에서는 벌써 복수초 노루귀 바람꽃, 그리고 매화까지 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왔어요. 봄입니다. 기온도 낮았고, 길 위의 바람이 차가웠지만, 봄을 기다리는 마음 때문이었는지 무언지 모를 봄 기운을 또렷이 느낄 수 있었던 지난 며칠이었지 싶습니다. 그렇게 봄은 우리 안에 서둘러 스며듭니다. 여름 길어지고 봄 짧아진다는 예보대로라면 풀과 나무들도 서둘러야 할 겁니다. 오늘의 《나무편지》에서는 지난 주에 다녀온 천리포수목원의 봄꽃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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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버전] https://bit.ly/4169z6r <== 미국 서부 답사 참가 신청 페이지
[Mobile버전] https://bit.ly/415CwiM <== 미국 서부 답사 참가 신청 페이지
아! 우선 ‘미국 서부 나무 답사’ 참가 신청 이야기를 먼저 말씀드리고 봄꽃 이야기 열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인 ‘제네럴 셔먼 트리’를 비롯해 신비로운 생태 환경이 놀라운 미 서부의 국립공원을 답사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올 6월23일부터 ‘조슈아트리 국립공원’ ‘요세미티 국립공원’ ‘킹스캐년’ ‘브라이스캐년’ 등을 더불어 찾아보는 9박11일의 일정인데요. 아직 시간은 꽤 있지만, 항공편 예약 등을 위해 3월 중순에는 참가 신청을 마감해야 합니다. 짧지않은 일정과 높은 비용 때문에 망설이는 분들이 많은 줄 압니다만, 서둘러 신청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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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지금 한창 피어나는 봄꽃 이야기입니다. 엊그제에는 복수초 크로커스 설강화가 몇 송이 피어났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습니다만, 고작 며칠 전이지만, 내가 찾아갔던 때에는 아직 그 앙증맞은 꽃들이 피어나지 않았습니다. 복수초 크로커스 설강화는 아직 일렀어도 지금 이 시기에 꼭 살펴볼 봄꽃이 있습니다. 바로 풍년화 꽃입니다. 풍년화 꽃도 지금이 만개한 상태는 아닙니다. 물론 종류가 여럿이어서, 어떤 종류는 이미 활짝 피어난 상태이지만, 대개의 풍년화는 이제 막 꽃봉오리를 열었는데요. 이건 어쩌면 주관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풍년화의 경이로움을 느끼려면 지금 이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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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화는 천리포수목원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꽃입니다. 조록나무과에 속하는 풍년화는 아시아 동부, 북아메리카 동부 지역이 고향인 나무로, 잘 자라야 5~6m 정도 높이로 자라는 나무입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1931년에 일본을 통해서인데요. 이 나무를 일본 사람들은 '망사꾸(まんさく, 万作)'라고 부르거든요. 여기서 ‘망사꾸’는 풍년을 뜻하는 일본어 '풍작(豊作)' 혹은 '만작(滿作)'인데, 그걸 그대로 옮겨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봄을 맞으며 풍년을 염원하는 농부들이 이 꽃을 보며 한해 농사를 잘 준비하자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지 싶습니다. 서양에서는 '마법의 개암나무 Witch Hazel' 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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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생김새를 가진 풍년화의 꽃은 예쁘다거나 아름답다기보다는 특별하다고 말해야 할 겁니다. 꽃송이마다 1~2밀리미터 폭의 가느다란 꽃잎 넉 장이 종류에 따라 1센티미터에서 3센티미터까지의 길이로 피어나는데요. 그게 꼭 어린 아이들의 미술 공작 시간에 활용하는 리본처럼 생겼거든요. 처음 보시는 분들이라면 “꽃잎이 왜 이 모양이야”라며 혼란스러워하실 만도 합니다. 여느 꽃잎과는 아주 다릅니다. 하지만 풍년화 꽃은 나뭇가지 전체에서 한꺼번에 피어나기 때문에 멀리에서도 눈에 잘 뜨입니다. 더구나 아직 다른 꽃이 풍성하지 않은 무채색의 겨울 정원에서 피어나는 꽃이니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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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풍년화 꽃을 제대로 느끼려면 지금 이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했는데요. 그건 바로 이 꽃잎이 피어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중에 꽃이 활짝 피어나면 리본처럼 가느다란 넉 장의 꽃잎이 쫙 펼쳐집니다. 지금이 바로 그렇게 서서히 리본이 풀리면서 꽃이 피어나는 중이거든요. 몇 송의 꽃은 활짝 펼쳐졌지만, 대부분의 꽃송이들은 꽃잎이 리본 두루말이에 말린 듯이 말려 있는 상태에서 조금씩 풀리는 중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닙니다. 마치 예전의 시계 태엽처럼 서서히 풀리는 모습과 꼭 같습니다. 가만히 오래 바라보노라면 꼬무락꼬무락 꽃잎 펼치는 움직임이 눈에 잡힐 듯합니다. 그 신비로운 모습을 볼 수 있는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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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화로 부르는 나무에도 종류가 많아서 조금 늦게 꽃 피는 종류도 있고 심지어 한겨울에 이미 꽃피고 진 종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는 2월부터 3월까지 꽃을 볼 수 있습니다. 꽃차례의 모양은 똑같습니다만, 종류마다 제가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가느다란 꽃잎의 길이도 조금씩 다르고, 돌돌 말리는 정도가 다르기도 합니다. 결정적으로 다른 건 빛깔이지요. 대개의 풍년화 꽃은 노랑에서 주황 빛깔이라 할 수 있지만, 연두 색이나 자홍 빛의 꽃을 피우는 풍년화 종류도 있습니다. 천리포수목원에서는 여러 종류의 풍년화를 ‘겨울정원’에 모아두었으니, 이 즈음에는 반드시 들러서 여러 풍년화를 비교해 관찰하시면 좋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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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화는 제가끔 서로 다른 모양과 빛깔이지만, 모두가 우리 사는 이 땅에 풍요의 기미를 알려온다는 건 똑같습니다. 그래서 이른 봄의 풍년화는 반갑습니다. 유난히 춥고 눈이 많았던 지난 겨울의 자취를 거둬내고 활기찬 새 봄이 우리 곁에 다가왔다는 좋은 징조입니다.
그러고보니, 그 동안 《나무편지》에서 풍년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했습니다. 이 즈음에 가장 눈에 띄는 꽃이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싶습니다. 희망과 약동의 계절을 맞이하며 제일 먼저 샛노랑 노래를 불러 젖히는 풍년화 꽃 이야기로 오늘의 《나무편지》, 마무리합니다.
고맙습니다.
2025년 2월 24일 아침에 1,276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 고규홍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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