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기찻길 왜 끌려가나…29살 싯다르타의 ‘탈선’
카드 발행 일시2024.09.11
에디터
백성호
(31) 인생이라는 기차의 종착점
#풍경1
29살의 청년
싯다르타는
왜 출가했을까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생로병사에
절망했기 때문입니다.
젊은 시절의 싯다르타는 인간이 겪어야 하는 생로병사에 절망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깎고 출가했다. 인도 델리 박물관에 있는 싯다르타의 조각상. 백성호 기자
누구나 겪는
생로병사인데,
싯다르타는
왜
거기에 절망했을까요.
자신이 달려가는
철로의 끝을
미리
보았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인간의 삶은
기차와 같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역을 통과해야 하고,
정해진 철로를 따라서
앞만 보고
달려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철로의 끝에
서게 됩니다.
그때는
누구라도
이렇게 말하겠지요.
“인생이란
참으로 순간이구나.”
#풍경2
사람들은
칙칙폭폭,
앞만 보고 달리면서도
정작
자신이 달리고 있는
철로의 끝에 대해선
깊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삶은 기차와 닮았다. 앞만 보고 달려가다가 자신이 도달할 종착역을 종종 잊기도 한다. 챗GPT, 백성호 기자
그 철로의 끝에
‘죽음’이란
종착역이 있고,
어떠한 기차도
그 역을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입니다.
싯다르타는
달랐습니다.
그는
삶의 종착역에 대해서
깊이
사유했습니다.
결국 그는
태어날 때부터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철로를
과감하게
벗어 던졌습니다.
왕국을 상속받고
이끄는
왕의 삶이 아니라,
머리 깎고
얇은 가사 하나 걸치는
수도자의 삶을
택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는
너무도 명백한
철로의 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풍경3
기차가
주어진 철로를
벗어날 때
주위 사람들은
크게 걱정합니다.
그들의 눈에는
싯다르타의 선택이
‘탈선’으로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정해진 궤도를
벗어났으니까요.
인생은 어찌 보면 끝이 끊어진 철로와 같다. 그 철로 위를 달리는 게 우리의 삶이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그 너머를 꿈꾸는지도 모른다. 초월이라는 이름으로, 영원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챗GPT, 백성호 기자
싯다르타의 눈에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주어진 철로만
따라가다가
닿게 될 종착역이
그에게는
더 큰 낭패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철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철로의 방향은
달랐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향해
철로를 내기
시작했으니까요.
내면의 철로,
거기에는
정해진 궤도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유롭습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달릴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멈출 수도 있습니다.
내면으로 달리는
철로는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움직이는
공간적 이동이
아닙니다.
대신
나의 마음속으로
깊이,
더 깊이 내려가는
차원의 이동입니다.
출가자들의 명상과 수행은 내면으로 길을 내는 여행이다. 정해진 궤도도 없고, 따라야만 하는 도로도 없다. 내 안으로 깊이, 더 깊이 내려갈 뿐이다. 챗GPT, 백성호 기자
비유하자면
서울에서 부산으로
정해진 궤도를
달려야 하는
경부선 열차가 아니라,
이 우주를
마음 가는 데로 누비는
‘은하철도 999’가
되는 셈입니다.
#풍경4
싯다르타의 출가,
그리고
고행과 구도.
그 끝에 얻은
깨달음.
사실
이 모두의 출발점은
‘절망’이었습니다.
이미
끊어져 있는
철로의 끝을 향해
달려야 하는
기차의
절망이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절망이야말로
기차를 달리게 하는
가장 큰
엔진입니다.
그러니
써먹기 나름
아닐까요.
우리가 마주치는
삶의 온갖 절망들도
얼마든지
기차의 엔진이 될 수
있으니까요.
붓다에게 가장 큰 수행의 동력은 삶에 대한 절망이었다. 그걸 넘어서고자 붓다는 숱한 고행과 명상을 마다하지 않았다. 챗GPT, 백성호 기자
불교에서는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고
말합니다.
삶의 번뇌가
다름 아닌
깨달음의 지혜라는
뜻입니다.
번뇌 속에
깨달음의 씨앗이
있듯이,
절망 속에
희망의 씨앗이
이미
있기 때문입니다.
붓다의 한 마디
“번뇌가 곧 보리다.”
사람들은 쪼개기를
좋아합니다.
이쪽은 선(善),
이쪽은 악(惡) 하면서
말입니다.
불교는
그런
이원론이 아닙니다.
번뇌와 깨달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번뇌가
곧
깨달음이라고
말합니다.
그걸 알면
삶에서 마주치는
번뇌가
예전처럼
두렵지만은 않습니다.
왜냐고요?
번뇌 속에
깨달음이
잠자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6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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