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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의 꽃 이야기

추석 즈음 피는 물매화가 주연인 소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9. 19. 14:22

추석 즈음 피는 물매화가 주연인 소설

[김민철의 꽃이야기]

<220회>

입력 2024.09.17. 00:00
 
 

물매화는 추석 즈음에 피는 꽃입니다. 그래서 요즘 블로그나 페이스북 등에 물매화 사진이 많이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상국의 단편 ‘물매화 사랑’은 물매화로 시작해 물매화로 끝나는 소설입니다. 작가의 소설집 ‘온 생애의 한순간’에 첫번째로 실려 있는 소설인데, 물매화 싹이 막 나오는 무렵부터 마침내 꽃이 피기까지 과정이 다 담겨 있습니다. 물매화가 주인공인 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물매화, 이름 알면 유난히 좋아하는 꽃

 

소설은 시어머니·남편과 갈등으로 가지울이라는 산촌에 칩거하는 한 여성 시각으로 쓰여 있습니다. 집 근처엔 요양을 온 한 남자가 있습니다. 이 남자는 집에 들렀다가 물매화라는 이름을 듣고 큰 관심을 보입니다.

두 사람이 어떤 사이인지는 흐릿하게 그려 놓았습니다. 남자는 자주 찾아와 물매화가 피었는지 확인하지만 물매화는 늦여름까지 꽃망울만 맺혔을 뿐 피지 않습니다. 그 사이 남자는 병이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마침내 추석 즈음 물매화 꽃이 피었는데 남자는 꽃을 보았을까요?

물매화. 정선 덕산기계곡.

 

물매화가 주연인 소설인만큼 물매화의 특징, 물매화가 피는 과정 등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 물매화도 ‘아주 짧지만 오전 한때 가루분 냄새’가 난다는 것, 꽃망울이 ‘7월 초에 올라오기 시작해 거의 두달이 넘어서야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는 것 등을 알았습니다. 작가가 물매화를 가까이 두고 세심하게 관찰하지 않았으면 나올 수 없는 표현들입니다.

물매화가 여러 번 나와 어디를 인용해야할지 고민해야할 정도였습니다. 아래는 마지막 부분, 드디어 물매화가 피는 대목입니다.

<백여 송이 물매화 꽃망울이 앞 다투어 한꺼번에 꽃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꽃망울이 모두 꽃으로 피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물이 충충하게 고인 도랑가 산기슭에 해맑은 우윳빛 유방운 한자락이 내려와 깔렸다. 그가 애타게 기다리던 물매화가 핀 것이다. (중략) 등 뒤에서 내 어깨에 올린 그의 손을 느낄 수 있다. 그와 함께 물매화를 보고 있다. 그가 물매화와 나눈 말들이 은밀하고 따스하게 내 안으로 들어온다.>

무리 지어 핀 물매화.

 

인용한 부분이 현실인지 상상인지 모호합니다. 작가는 에세이집 ‘작가의 뜰’에서 “이름을 알면서부터 유난히 더 좋아한 꽃이 물매화”라며 “’물매화 사랑’은 내가 좋아하는 들꽃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쓴 소설”이라고 했습니다. 소설 무대는 춘천의 덕만이고개 너머 한 농장이고, 그곳에 물매화를 좋아하는 ‘꽃님이’라는 분이 있는데 이 분이 소설 속 여성의 모델이라고 합니다.

 

◇물매화에 반해 야생화 입문한 사람들 많아

 

물매화는 우리나라 전국에서 자라는 범의귀과 여러해살이풀입니다. 낮은 곳에선 살지 않고 주로 깊은 숲의 양지바른 습지에서 자랍니다. 우리나라만 아니라 일본, 중국, 북아메리카, 유럽, 몽고 등지에도 분포합니다.

보통 키가 한 뼘쯤(길이 7-30cm)인데, 한 개체에서 서너 개씩 줄기가 올라와 하얀 꽃잎이 5장인 꽃이 핍니다. 꽃잎의 수, 흰색 꽃 그리고 수술이 많이 달린 모습까지 매화를 닮아서 그리고 물 가까이를 좋아해 물매화라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물매화 꽃대엔 줄기를 반 정도 감싸는 잎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수술 외곽을 헛수술 5개가 둘러싸고 있는데 그 끝이 12~22갈래로 갈라져 있습니다. 이 기관이 오드리 헵번이 ‘로마의 휴일’에서 쓰고 나온 작은 왕관처럼 귀엽게 생겼습니다. 이 헛수술 끝에 노란색 꿀샘이 보이는데 이 꿀샘이 잘 보이도록 담은 것이 물매화 사진을 잘 찍는 포인트입니다.

물매화 중에서 가장 예쁜 것은 ‘립스틱 물매화’입니다. 립스틱 물매화는 정식 이름은 아니고 물매화 중에서 꽃밥 부분이 붉은색이어서 빨간 립스틱을 바른 것 같다고 꽃쟁이들이 붙인 이름입니다.

립스틱물매화. 평창 대덕사계곡.

 

야생화에 빠진 분들을 만나다보면 물매화에 반해 야생화에 입문했다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만큼 물매화가 팜므파탈(Femme fatale)처럼 치명적인 매력을 가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꽃이 예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이름도 매력적이고, 깊은 산에 가야 볼 수 있고, 헛수술과 붉은 꽃밥 등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는 등 관심을 끌만한 요소들을 두루 갖춘 야생화이기도 합니다. 아직 물매화를 만나지 못한 분이라면 요즘 주변 산에 피어 있다는 점을 참고하세요.

소설엔 물매화만 아니라 상사화, 금꿩의다리, 고광나무, 윤판나물, 각시괴불나무, 애기똥풀, 옥잠화, 토란, 잔대, 타래난초, 망초, 환삼덩굴, 마타리, 물봉선, 벌개미취, 기생여뀌, 술패랭이꽃에서 은분취까지 정말 다양한 꽃들이 차례로 나오고 있습니다. 꽃공부하기에도 좋은 소설인 것 같습니다.

 

평창 대덕사계곡 립스틱물매화와 정선 덕산기계곡 물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