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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의 꽃 이야기

뇌종양 판정 받고 흔들리는 50대, 리시안셔스 꽃다발 주문했지만...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9. 3. 14:01

뇌종양 판정 받고 흔들리는 50대, 리시안셔스 꽃다발 주문했지만...

[김민철의 꽃이야기]

<219회>

입력 2024.09.03. 00:00
 
 
 

서유미 작가의 단편 ‘토요일 아침의 로건’은 갑자기 뇌종양 판정을 받은 50대 중년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그는 벌써 4년째 토요일 아침마다 영어선생님 젤다와 2시간씩 비즈니스 영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로건은 그의 영어 이름입니다.

◇중년의 위기에서 보이기 시작한 꽃

영어도 늘고 회사에서도 승진해 미국 지사 발령을 앞두고 있는데 위기가 찾아옵니다. 건강검진에서 뇌종양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의 삶이 예전과 같을 수 없겠지요. 미국행도 힘들 것 같습니다. 우선 젤다에게 영어 공부를 그만두겠다고 통보해야하는데 선뜻 말하지 못하고 망설입니다. 소설은 로건이 결국 통보하기까지 4주 동안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는 일들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로건은 왜 통보를 망설였을까요. 수업하는 카페에선 한강에 있는 오리배들이 밧줄에 묶여 흔들리는 것이 보입니다. ‘묶고 있는 밧줄을 풀면 오리배들은 어디로 떠내려갈까. 영어 수업을 그만두게 되면 삶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그는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로건이 회사 임원 식사자리에 참석했을 때 장미 비슷한 꽃이 화병에 꽂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흰색과 분홍색, 라벤다색, 노란색 등 다양한 색을 가진 꽃이었습니다. 여러 번 온 레스토랑인데 꽃이 있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꽃들은 장미처럼 여러 겹의 꽃잎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름은 알 수 없었’습니다.

로건은 휴대폰으로 꽃 사진을 찍어둡니다. ‘장미와 비슷하지만 장미가 아닌 꽃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토요일 아침, 그는 알람 소리에 눈을 떴고 평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후드 집업을 걸치고 지하철역 근처의 플라워샵에 가서 미리 부탁해놓은 꽃다발을 찾았다. 이틀 전 퇴근길에 꽃집에 들렀을 때 꽃집 주인은 그가 찍은 사진을 보더니 리시안셔스네요, 하며 연한 분홍색의 꽃 한 단을 꺼내 보여주었다. 레스토랑의 테이블에 있던 꽃보다 더 건강해보였다. 주인이 리시안셔스는 자른 상태에서 더 피지 않는 꽃이라며 수명이 긴 게 장점이라고 했다. 그는 얇고 부드러운 꽃잎을 보다가 꽃다발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리시안셔스.

 

로건은 리시안셔스 꽃다발을 젤다에게 줄 생각이었지만 끝내 주지 못합니다. 4주째 토요일에야 로건은 젤다에게 수업 중단을 통보한 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고 자신이 무엇을 선택했는지 알게’ 됐고 비로소 마음이 아픈 것을 느낍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한 소설이었습니다. 너무 깔끔해 다소 아쉬울 정도입니다. 이 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가가 토요일에 소설작법 수업을 3건이나 한다는 것을 알았는데, 수강생들에게 전범(典範)을 보여주듯 흠잡을데 없는 소설을 쓴 것 같습니다. 4주간 영어 수업을 하면서 주인공이 본 장면과 느낀 감정들을 세밀하게 묘사하는데, 이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주인공 감정과 일치해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주인공과 동년배여서 더 쉽게 소설에 몰입해 읽은 것 같습니다.

 
장미와 리시안셔스(오른쪽).

 

리시안셔스는 주인공이 몸의 이상을 안 다음 보이기 시작한 것 중 하나입니다. 소설에서 중요한 소재 또는 상징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한 비중을 가진 소품인 것은 분명합니다. 아마도 중년의 위기에서 그제야 꽃이라는 생명 또는 아름다움이 보이기 시작한 것을, 이전과 다른 관심과 애정이 생긴 것을 보여주는 장치 아닐까 싶습니다.

서유미(49)는 2007년 데뷔한, 작가 생활 17년차인 중견 작가입니다. 단편 ‘토요일 아침의 로건’은 지난해 김승옥문학상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작가는 최근 이 단편이 든 소설집 ‘밤이 영원할 것처럼’을 펴내면서 “이 책으로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이 작가 소설을 주목해 읽어봐야겠습니다.

 

◇장미처럼 생긴 꽃, 리시안셔스·라넌큘러스

 

소설에 나오는대로 리시안셔스(Lisianthus)는 얼핏 보면 장미로 착각할 정도로 장미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장미와 카네이션의 중간 정도 느낌을 주는 꽃입니다. 변치 않는 사랑이라는 좋은 꽃말을 가져 결혼식 부케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오름이 좋고 절화(折花) 수명도 길어 최근 수요가 급증하는 꽃이라고 합니다.

리시안셔스는 용담과의 한해살이풀로 원산지는 북아메리카입니다. 장미와는 꽃은 물론 줄기와 잎 모양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줄기에 가시가 없고, 잎은 마주나면서 타원형인 것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국가표준식물목록 추천명은 ‘꽃도라지’이지만 리시안서스·리시안사스, 속명인 유스토마(Eustoma) 등으로 다양하게 부르고 있습니다. 홑꽃과 겹꽃이 있는데 겹꽃은 꽃잎이 겹쳐져 있는 모습이 터키 터번을 떠올린다고 터키꽃도라지라고도 부릅니다.

꽃집에서 볼 수 있는 장미 비슷한 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라넌큘러스(Ranunculus)인데 이 꽃은 이른 봄에 피는 꽃이라 요즘엔 꽃집에 없습니다. 원종은 선명한 황색으로 꽃잎이 5장인데 원예종들은 겹꽃이 대부분으로, 빨간색·노란색·주황색·분홍색·흰색 등 다양한 색이 있습니다. 꽃이 비교적 오래가고 꽃잎이 많고 풍성해 젊은 층에 인기 있는 꽃이라고 합니다. 역시 부케용으로도 사랑받는 꽃입니다.

라넌큘러스.

 

미나리아재비과 미나리아재비속에 속하는 식물이니 국내에서 자라는 미나리아재비와 닮은 데가 많겠지요? 한마디로 라넌큘러스는 미나리 같은 줄기에 장미처럼 화려한 꽃이 피는 식물입니다. 라넌큘러스라는 이름은 라틴어 ‘Rana’에서 유래했는데 ‘개구리’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주로 연못이나 습지 등 습한 지역에서 잘 자라는 특성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라넌큘러스를 가장 쉽게 식별하는 방법은 많은 꽃잎입니다. 얇은 꽃잎이 겹겹이 겹쳐 피는데 꽃잎 수가 300장이 넘는다고 합니다. 주로 알뿌리로 번식하는 구근 식물이라는 것도 기억해둘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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